설교 겸손히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 (마 19: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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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히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 (16-22절)
예수님을 따라와서 영생을 얻으려고 했던 청년은 율법을 지키는데는 어리아이보다 나았을지 모르지만, 어린 아이의 마음을 소유하지 못해서 하나님 나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왔고 계명을 지키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겸손이 결여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결국 그는 이러한 인간적인 교만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재물 때문에 겸손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 이 세상의 또 다른 것들 때문에 비슷한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만이며 욕심이며 자기집착입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또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나 자신의 것에 집착해서 안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내게 포기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실재물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23-26절)
청년을 보낸 예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아주 파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이 가르침은 재물자체, 풍요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물질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에서는 정말 적합한 교훈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의 물질적인 풍요를 부러워하거나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 풍조를 따라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되새기게 합니다 요즈음 나를 자극하는 물질적인 유혹은 없습니까 주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에 우선이 되기 위해 나의 생활에 필요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장래의 영광을 소망하는 사람 (27-30절)
현재 이 땅에서 재물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내세의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옛날부터 자주 들어서 식상할 정도가 된 말씀이지만 자꾸만 현실적으로 되어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전히 필요한 말씀입니다. 주님을 믿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내가 지금 여기서 누리고 갖고 또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서 발견됩니다. 나 자신이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가. 그러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그날의 영광을 그리면서 지금 나의 마음 자세나 생활하는 모습이 그 영광에 합당한지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나는 현세에서는 의미있는 것 같지만, 세상이 새롭게 될 때는 의미가 없어질 것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을 쓰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관심을 쓰고 있는 일은 영원한 나라에서도 의미가 있는 일입니까
예수님을 따라와서 영생을 얻으려고 했던 청년은 율법을 지키는데는 어리아이보다 나았을지 모르지만, 어린 아이의 마음을 소유하지 못해서 하나님 나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왔고 계명을 지키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겸손이 결여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결국 그는 이러한 인간적인 교만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재물 때문에 겸손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 이 세상의 또 다른 것들 때문에 비슷한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만이며 욕심이며 자기집착입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또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나 자신의 것에 집착해서 안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내게 포기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실재물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23-26절)
청년을 보낸 예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아주 파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이 가르침은 재물자체, 풍요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물질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에서는 정말 적합한 교훈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의 물질적인 풍요를 부러워하거나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 풍조를 따라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되새기게 합니다 요즈음 나를 자극하는 물질적인 유혹은 없습니까 주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에 우선이 되기 위해 나의 생활에 필요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장래의 영광을 소망하는 사람 (27-30절)
현재 이 땅에서 재물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내세의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옛날부터 자주 들어서 식상할 정도가 된 말씀이지만 자꾸만 현실적으로 되어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전히 필요한 말씀입니다. 주님을 믿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내가 지금 여기서 누리고 갖고 또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서 발견됩니다. 나 자신이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가. 그러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그날의 영광을 그리면서 지금 나의 마음 자세나 생활하는 모습이 그 영광에 합당한지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나는 현세에서는 의미있는 것 같지만, 세상이 새롭게 될 때는 의미가 없어질 것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을 쓰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관심을 쓰고 있는 일은 영원한 나라에서도 의미가 있는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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