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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욜 0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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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팔레스틴 지역과 수리아 지역에 메뚜기 재앙이 일어났는데 3월에서 5월까지 메뚜기들이 덤벼들어 모든 채소와 과일나무, 푸른 것들이 다 죽임을 당했다고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엘 시대에 메뚜기 재앙을 선지자가 예언한 것은 글자 그대로 메뚜기들이 재앙을 일으키면 엄청난 피해가 올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하나님의 날은 메뚜기 재앙보다도 더 무섭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이 메뚜기 재앙이라고 하는 거은 하나의 상징적인 표시로 바벨론 군대나 수리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올 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요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십니다.

1.잊을 수 없는 날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2:11하)

고린도 전서 4장 3절에는 사람의 날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요엘은 너희의 날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함니다.
사람의 날들은 이날로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빌1:6).
그날은 심히 크고도 두려운 날이요 시시하게 넘길 날이 아닙니다.
태풍이 불어오면 굉장한 것같으나 그 태풍이 지난 후에는 잊어버리지만 여호와의 날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 날의 심각성은 므깃도 평원에서의 선과 악의 대결인 아마겟돈 전쟁을 예시하고 있습니다(암5:18,습1:14,2:2,사2:1-21).
하나님의 날에 떨어지는 재앙에 견줄 것이 아닙니다(2:2). 그 날은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요 피로 얼룩진 날입니다.
성경에 어두움은 환란과 고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사8:22,60:2,렘13:6,암5:18,습1:15-16).
자고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을 것입니다.
그날은 곧 불심판이 임하는 날입니다(2:3).
저군이 낯빛을 능히 하얗게 바랠 수 있는 무적의 군대요 하늘이 떨고 일월이 캄캄하여 별들이 빛을 거두는 날입니다(2:4-11).
이 날의 특징은 심판이 오는 날이요 미래적인 사건이요 큰 고통이 오는 날이며 그날은 메시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완연하게 드러나는 날입니다.

앞이 캄캄하십니까. 별들이 빛을 잃었습니다.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에 대한 하나님의 예비의 연단입니다.
얼굴 빛을 하얗게 바랜 큰 두려움이라도 믿음 준비한 자에게는 적군이 되지 못합니다.
회개한 자에게는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모든 죄와 난관을 흐트러뜨리실 것입니다.
다만 영적으로 어둡고 캄캄한 날들을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열기에 노력해야 합니다.

2.진정한 회개

“여호와으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2:12)

하나님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십니다.
여호와의 날이 틀림없이 올것인데 너희가 그날이 도래하기 전 지금이라도 호개하고 돌아오라는 간곡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메뚜기 재앙을 경고한 그들에게 더무서운 심판이 순간을 맞지 않도록 회개케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멸망보다는 축복을, 징계 보다는 용서를 원하십니다.
때려서 상처를 입히기 보다는 사랑으로 설득하시기를 글겨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괴롭히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심으로 죄의 길과 파멸의 구덩이로부터 돌아오게 하시려는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징계하시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1:13)

12-13절을 보면 외형적 변화보다 내적 변화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금식하고 울고 통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옷을 찢기 전에 마음을 찢으라고 하십니다.
내적인 변화 없는 외형적인 모습은 오히려 위선이 되는 것입니다.
외면적인 형식을 취하다보면 참 진리를 잃거나 또는 외적인 것으로 대체하기 쉽습니다.
마음을 찢는 것은 구체적인 죄를 고백하하라는 뜻입니다.
카톨릭 신부에게 어떤 분이 고해성사를 하러 왔습니다.
신부가 그에게 구체적으로 죄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죄의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5계명을 범했습니까. 아니요, 나는 부모를 열심히 공경했습니다.
제6계명을 범했습니까. 아니요, 나는 여자에 대해서 음욕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제8계명을 범했습니까. 아니요, 나는 도적질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왜 나에게 왔습니까.”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왔습니다.
이 사람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인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마음을 찢는 것은 개별적인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의 비참성을 깨닫고 참으로 슬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사와 충성보다 더 바라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시51:17).
가룻 유다처럼 사람 앞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유다는 자살자가 되었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후해한 자와 회개한 자의 다른 열매입니다.
‘회심’은 ‘다시 돌아오는 것’ 입니다.
라틴어 ‘회개’라는 말은 마음이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동을 변하시키려 하지 말고 마음을 변화시키십시오, 마음의 변화 없는 형식적인 행동을 외식이라고 하고 위선이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것입니다.

대 부흥운동, 대 각성기에 되어지는 단계를 보면 먼저 말씀을 잘듣게 되고 말씀을 들은 다음에 말씀을 계속 효과적으로 공부를 하고 그 다음에는 개인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회개를 통해 자기 갱신이 시작되고 그 다음에 사회를 개혁하게 됩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순간 순간 사회가 개혁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형제를 미워했습니까. 더러운 욕심이 생겼습니까.
마음에 검은 먹구름이 끼어 주님의 빛을 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주님 앞에 내어 놓읍시다.
알지 못하고 지은 죄, 계획적으로 지은 죄, 의도적으로 지은 습관이 된 죄들을 낱낱이 고백하시다.
이 죄들을 미워하고 버립시다.

3.여호와의 긍휼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2:18)

가슴을 찢고 통해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중심히 뜨거우셔서 긍휼을 베푸신다는 약속입니다.
긍휼로부터 임하는 세가지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복은 물질적 번영입니다.(2:19)
메뚜기에 먹혀 황폐했던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흡족하게 주십니다.
물질적인 번영을 누릴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다 바친다(고르반)고 하는 생각입니다.
몸도 생명도 청춘도 다 바친다 해 놓고서는 자기 를 일 다 보고 있는 것이 믿는 자가 범하기 쉬운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이 우리를 지배하여도 안되고 물질적 번영이 인간에게 힘이나 가능성을 주어서 하나님으로 힘을 심지 않는 불경에 빠져서도 안됩니다(단4:20).

두번째 복은 국가적인 안녕입니다(2:19,20)
환경의 평안을 주십니다.
징계의 몽둥이로 사용했던 북편 군대, 메뚜기떼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던 그들을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 보내십니다.
담력을 쌓은 것도 없고 군대도 없고 지킬만한 무기도 없고 힘도 없으나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시니 원수가 침공을 못합니다.
국가가 안정될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회복 하시는 은총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서 4장 20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왕이 자기 능력과 권세로 그 큰 바벨론을 건설하여 자기 도성을 삼고 자기의 위엄의 영광을 드러냈다고 큰 소리 칩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교만한 순간에 나라의 위가 떠났습니다.

세번째 복은 잃어버린 날들의 회복입니다.(2:25)
잃어버린 햇수, 상처받은 햇수, 상실한 그 모든 날을 다시 회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낭비한 삶이요 허비한 삶이요 잃어버린 때인데 하나님께로 돌아만 오면 모든 것을 바꾸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잃어버린기회만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옛 약속은 물론 새 약속까지 주시면서 죄의 권능을 깨치시고 개인적인 거룩을 회복기켜 주시고 잃어버린 꿈을 다시 꾸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수포로 돌아간 생명의 연장은 물론 오욕된 명예의 회복까지 허락하십니다.

4.여호와가 되리라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간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2:27)

‘너희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은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 2-3절의 1,2 계명의 말씀이 다시 반복 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려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으려면 우선 소극적으로 우상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도 있지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정성껏 모시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1계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 줄을 알 때에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 줄 모르고 섬기는 것은 맹신이요 미신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시요(출3:14) 자족하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부족한도 없으시고 무엇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십니다.
또한 처음도 끝도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애굽땅 종되었던 곳에서부터 우리를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종, 사탄의 종으로부터의 구원, 죽음과 노예의 신분과 가난과 질병에서 구원을 받아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무지와 불신때문에 노새처럼 은혜를 상실해 버린 사람은 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찬송의 대상이며 예배의 대상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구이며 노예와 같이 끌려다녀 보지 않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땅위에 빈 손 들고 오지 않은 삶이 어디 있습니까.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요 죽음과 죄와 가난과 질병에서 허덕이지 않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만 예배하십시다.
알고도 모르고도 미련해서도 환경 때문에도 우리는 계속 하나님을 만족케해 드리지 못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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