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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의 영광 (사 0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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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주전 740년 웃시야 왕이 죽던 때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역대하 26:16-23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그의 나라가 강성해지자 그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직을 자기가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여 제단에 분향을 하다가 문둥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권세, 교만, 월권의 결과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비참한 사실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 전체에게 끼치는 경계의 의의가 컸습니다. 죄를 내포한 이스라엘은 폭풍우를 속에 품은 암운이 험한 산 모양으로 솟아오른 때와도 같이 곧 닥쳐올, 全土(전토)를 깊은 深淵(심연) 속으로 꺼지게도 하고, 나무 하나 남기지 않게 휩쓸고 가고야 말 위기를 직감하게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이 세대도 충분히 불안한 세대입니다. 세계 제이차대전을 도발한 독재자들이 니체의 초인론에 도취되어 결국은 그 스스로의 무덤을 砲火(포화) 속에다 파고 말았다고 본다면 현세계의 정세는 곳곳에서 불꽃이 튀기를 그칠 줄을 모르는 만큼 어느 누가 먼저 원자탄의 버튼을 누를지 예상을 불허하는 『전 세계 불바다』의 악몽의 불안 속에서 허덕이며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의 발달로 향기로운 유토피아를 이 땅에 건설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나 가면 갈수록 태산이요, 지성의 상아탑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것은 바벨탑으로 변하여 더욱 크게 무너져 가니 이 세대는 과연 『절망의 세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서로 찌르고 불사르고 그런가 하면 자살, 情死(정사), 강포, 살인 등을 위하여 태어난 것과 같이 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지나가고 다가오는 역사의 모습과 현실의 정경을 마음의 레이더에 直觀(직관)하는 자는 그대로 좌시하고 있을 수도 없고, 지치고 지친 몸으로 이 땅에서 아무리 찾아 헤매도 참된 삶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과연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 평면상에서 절망의 출구를 찾을 수 없으니, 오로지 수직상으로 위를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였으며,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위』라는 관념을 명확히 해야 하겠습니다. 우주에 있어서 어디가 『위』며, 어디가 『아래』이겠습니까? 로케트를 위로 아무리 높이 쏘았다고 할지라도 지구가 반회전 하면 그것은 밑으로 깊이 내려간 것이 됩니다. 공간적으로 저 푸른 하늘을 아무리 달려도 『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참 『위』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정신은 물질보다 위요, 영은 정신보다 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계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물질계에서, 인간 세계에서 찾지 못하던 유일의 소망을 이 영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불안과 절망을 초월하고 탈피하는 길이 이 영계로부터 열리고 트이게 되며, 거기서 오는 것을 받음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전쟁은 개미도 한다. 국가는 벌도 가지고 있다. 부는 들쥐도 모은다. 그러나 그대의 영은 다른 것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대의 영혼이 도중에 차질을 가져오고 영혼을 희생하여 그대에게 성공을 안겨 주면 그대는 결코 행복하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행복의 꽃을 피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영혼이요, 悟性(오성)도 胃(위)주머니도 돈지갑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소중한 길을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그 예민한 영감으로 웃시야 왕이 죽던 때 국민적 위기를 체감하고 오로지 살 길을 찾아 성전에 들어와 저 높은 영계로부터 구원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이사야서 6:1-4를 보십시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웠고 그 둘로는 발을 가리웠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기도는 성경의 사실을 여러분에게 그대로 터득시키는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스랍은 그 글자의 뜻이 『불타는 자』라는 뜻으로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 4장에 나오는 하늘 보좌의 광경과 5장에서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부패한 것만 보고 그것만 찾아 급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이 영계를 바라보는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콜롬부스는 미대륙을 믿음으로 확실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해 도중에 여러가지 역경을 뚫고 그는 전진했습니다. 동지들의 대륙이 없다는 반대는 어려운 시험이었지만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은 이 성경을 보았습니다. 하늘 영광의 비밀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이 세상, 이 보이는 세상에서 잘사는 비결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바로 보고 가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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