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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열심 (사 09:6-7, 마 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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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여러가지 좋은 성품이 있어 인내, 양선, 근신, 화평, 충성등을 들어 헤아릴 수 있으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열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자기의 부한 재산을 믿고 게으르게 생활하다가 가동성이 있는 재물을 탕진 또는 유실하여 결과적으로 절망을 초래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자는 자기의 타고난 수재를 의뢰하고 자만하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시는 평범한 노력가를 추종할 수 없는 자기 기만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열심만이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는 것이요, 행운보다 우월하여 존엄하고 숭고한 그 자체이라고 예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샘물이 터져 흐르고 초목이 무성하여 열매를 맺게 하며, 새가 우짖으며 날짐승이 뛰는 생명을 파생하는 지구도 그 중심에는 말할 수 없이 뜨거운 열도의 불이 끊임없이 불붙고 있음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열이 생명에 미치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열이 다 식은 위성인 저 달은 이미 냉각하여 모래와 돌과 먼지만이 남아 있어 무생명의 상징으로 공허한 운행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군함을 볼지라도 荒凉波濤(황량파도)를 박차고 질주하는 동력은 보일러실에서 붙은 고열의 불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인생도 열심없는 인생은 공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 에머슨은 『열심이 없이 성취된 위대한 사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까지 했습니다.
삼년 육개월동안 하늘문을 닫아 비가 오지 않게 했던 기도의 능력자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나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심히 열심이 있는 자라』고 아뢰었던 자타가 공인하는 열심의 인물이었습니다.
대선지자 이사야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말씀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성육신하여 오신 성탄도 그 근본 원동력은 하나님의 열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의 생애 벽두에 있어서 성전을 사랑하는 열심이 극진하게 하여, 성전청결을 단행케 하셨으며, 자기 몸을 가리키시며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결사 각오로 열심 있는 출발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흐르는 보혈은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의 결정이었으며,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돌무덤을 터뜨려 그리스도로 부활케 하며 영원한 생명의 개가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전 생애의 기반이 되는 말구유의 아기 예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심령이 이 하나님의 열심에 부딪칠 때 새로운 인격을 조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탄소가 산소와 화합하여 뜨거운 숯불이 되는 것과 같고, 석탄(CaO)에 물(H2O)을 부었을 때 가열하지 않아도 석탄은 끓어올라 수산화칼슘이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즉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 심령이 어리신 예수와 깊고 참된 관계를 맺게 될 때 아기 예수가 방출하는 하나님의 열은 우리로 화학적 변화와 같은 질적 변화를 일으켜 열심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아기 예수의 빛나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비장한 출발을 하였던 것입니다. 긴 세월이 걸리는 머나먼 길을, 천리나 되는 황량한 사막을, 먹고 마시는 어려운 문제와 강도 출몰의 위험등 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여행에 여행을 계속하였습니다. 저들의 노고는 형용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낙타의 다리도 무거워 지칠 대로 지친 저희들에게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라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또 기뻐하더라』고 마태복음서의 기자는 이렇게 감동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집에 들어가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을 때,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열심과 먼 사막을 건너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열심은 서로 부딪쳐 영원불멸의 정신적인 불꽃으로 피여 뜨겁게 타올랐을 것입니다.
이와 대조하면 당시 베들레헴의 여관은 얼마나 냉랭한 것이었습니까? 만삭이 되어 곧 출산해야 할 가련한 여인을 맞이해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모두 다 자신들만 안락하고자 했지 이 여인을 맞이해 주는 곳이 없어 이 가련한 여인은 누추한 마구간에서 출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실 메시야는 이 가련한 여인의 몸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그 비밀스러운 일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성탄을 바르게 맞이하는 자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열렬한 신앙과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곳에 참된 성탄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예로써 구약 역사에 빛나는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 바라보십시다. 그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아끼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아브라함은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모리아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흘 길을 간 후에야 모리아산에 이르렀습니다. 사환들은 산 아래에 머물게 하고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불과 나무는 가지고 가는데 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때 아브라함의 가슴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침착하게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아들을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열심이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선물로 보내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열심은 후세의 신앙의 師表(사표)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오백만 명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였다는 D. L. 무디 선생에게 그의 비결을 물었더니 『오직 열성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교계의 성자 손양원 목사님은 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두 아들이 여수 순천 반란사건에 중에,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서로 살리려고 얼싸안고 돌아가다가 둘 다 무자비한 좌익학생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은 사태가 진압된 후에 자기 아들을 살해한 그 학생을 자기의 양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빛내고자 하는 그의 열심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 사랑함에 이르렀으며, 이 나라의 교계를 전세계에 빛나게 하였습니다.
조국의 사는 길도 독생자를 말구유에 보내신 여호와의 열심을 몸소 받들어 구현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덴마크의 『하나님을 사랑하자. 인간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의 표어를 걸은 그룬트비의 열심은 그 나라로 하여금 오늘날 세계의 모범국으로 형성하게 하였습니다.
경제적 기타 역경에서 고심하는 조국도 敬天愛人(경천애인)하고 땀흘리며 열심히 땅을 파면, 생명력이 충만한 삶의 희망의 길이 크게 열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을 매일 작은 데서부터 반영시켜야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음악예배도, 우리 성가대의 주를 사랑하는 열심의 결정입니다.
미국이 낳은 인물 제 20대 대통령인 제임스 가필드 씨는 윌리엄 대학 재학시에 동급생 중에 수학을 자기보다 잘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아무리 앞서려고 힘써도 언제나 뒤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늘 걱정하여 오다가 어느날 밤, 램프불을 끄고 자려다가 내다보니 맞은 편에 있는 그 학생의 방은 아직 불이 켜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불과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같이 조금씩 더 늦게까지 불을 켜고 노력하는 열심의 차이가 그 앞서는 원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튿날부터 불끄는 시간을 늦추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 결과로서 그 학생을 추월하여 일등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그의 성공적인 삶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면서 『이것은 매우 사소한 일 같으나 나의 모든 일에 있어서 그때의 그 일은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고 회고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 농업고등학교의 교장은 조금만 열심을 내어 연구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딸을 낳을 때 딸을 낳은 기념으로 오동나무 작은 묘목 세 개만 뜰에다 심어 두면 그 딸이 20여세가 되어 출가하게 될 때 그 때는 벌써 하늘 높이 큰 나무가 되어 있는 오동나무를 하나는 베어 좋은 옷장(옷장은 오동나무로 만든 것이 제일 좋다고 함)을 만들고, 하나는 팔아 잔치 비용에 쓰고, 나머지 하나는 예물과 여비에 충당시키면 염려할 것 없이 훌륭한 결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주의 대주재가 되시고, 의의 태양이 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열심이 지극하신 분이십니다. 졸지도 아니 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를 바라보는 동시에 이 위대한 일을 이루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을 바라보고, 그 열심을 본받아 주를 위해 충성스런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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