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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방인과 결혼 금지 (스 0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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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타락과 에스라의 회개 기도가 본장의 주요 내용이다. 에스라는 2차 귀환 이후모든 일정이 일면 순조로워 보였다. 1차 귀환 때의 방해자들이 지금은 협조자가 되었고 정치적인 장애나 박해도 전혀 없는 순탄 일로에 있었다. 그러나 외적인 방해가 없을때, 부패는 오히려 내부에서 싹트게 마련이다. 재건 이스라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에스라 귀환 시대에 발생한 위기는 바로 이 내부의 부패로써, 평안함과 잔잔함이 그들로 하여금 율법 정신과 하나님에의 성결성을 희박하게 만들었다. 에스라는 이 점을 통한히 여겨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올린 것이다.

1. 이스라엘의 타락상

스룹바벨의 주도한 1차 포로귀환(B.C 537)과 스룹바벨 성전의 완공으로(516년)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 회복된듯 하다. 그러나 성전 재건 이후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으로 매우 해이해졌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 인도할만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하여 해이해진 백성들은 하나의 율법에서 금지하는 이방인과의 통혼을 서슴치 않고 하였다. 더우기 이방에서 이방인들을 많이 접촉하면서 지냈기에 이방인과의 결혼을 아무 죄의식 없이 행하게 된 것이다.
사실, 여호와의 신앙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이방인과의 결혼이 문제시 되지는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이방인 여인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아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 여인과의 결혼이 신앙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이방의 우상 풍습이 유입되는 이유 때문에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라는 율법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2. 죄악을 두렵게 여겨야 한다(3-5)

에스라는 방백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과 혼인하였을 뿐 아니라, 가나안 원주민들이나 암몬, 모압, 애굽, 아모리 사람들의 우상을 가정 수호신으로 섬긴다는 사실을 알았다(1).
가나안 우상이라면 곡물과 다산을 주관하는 바알 신이요, 이 신전 제사는 여사제와의 혼음 의식으로 유명하였다. 모압의 대표적인 우상이라면 인신 제사를 주된 의식으로 하는 밀곰(몰렉) 숭배로 유명하다. 게다가 애급의 우상은 대게 동물 숭배와 관련이 있다. 특히 멤피스의 황소 숭배는 유명한다. 이같은 우상 숭배는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는 주된 원인이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그 포로에서 돌아와 정착한 이들에게 또 다시 이방 여인과 혼인하여 우상이 들어 왔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정통한 율법학자요, 제사장 출신인 학사 에스라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못하고, 옷을 찢으며,머리털과 수염을 뜯고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불과 1세기 전에 유대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죄악이 필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인데, 이 죄를 반복하고 있으니 경악할 일이 아닐 수없었다. 에스라는 그래서 회개기도를 드렸다. 에스라는 죄에 대한 치명적인 결과에 대하여 두려움으로 전율하면서 철저히 회개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세상 권세자도, 재물 많은 자도, 또한 학식이 많은 자도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하나가 있다. 그것은 죄악에 대한 것이다. 이 죄악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죄악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깨어 있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몸과 마음으로 바르게 설 수 있다. 이 길이 성공하는 비결이다. 다 성공해놓고 끝에 가서 실패하는 것이 이 죄악이다.

2. 에스라의 회개와 중보기도

에스라는 백성들의 타락상을 듣고 온종일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였다. 특히 에스라가 유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릴때 ‘우리’라는 말을 무려 27회나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에스라는 동족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간절하게 매달렸다.
이같은 기도는 결국 인간이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교훈해 준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없으면 그 죄를 사함받을 길이 없다.
우리에게 이 영원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사실은 영원히 찬송할 제목이다.

3. 죄악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6)

(스9:6)“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동족의 죄악으로 인하여 감히 용서 해달라는 말도 하기가 힘들었다. 극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염치도 분수가 있지, 70년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이제 본토로 귀향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하나님이 금하시는 이방 여인과 혼인하여 조상들이 갔던 죄악과 실패를 답습하느냐는 것이다.
옛날 아담 하와와 같이 죄를 짖고서도 육신만 부끄러워 했지, 진정 마음으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세를 버리고, 에스라처럼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지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멀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죄를 멀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해 주신다. 이것이 믿음이다.

죄악 가운데 태어나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누구나 쉽게 죄악에 빠질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같은 끊임없는 마귀의 유혹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말씀과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도움을 받을 때에 우리 성도는 경건하고 거룩한 열심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죄의 치명적인 결과를 두려하는 마음을 갖자! 그리고 넘어지면 곧 긍휼에 풍성하신 주님께 즉시 돌이키자! 계속되는 시험에 정신을 차리자!
(벧전5:8-9)“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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