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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 희년 (시 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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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쇠사슬 풀리고/ 자유의 종소리 울린다/
우리의 가슴에 눈물이 샘솟고/ 우리의 강산에 새 봄이 오던 날/
아-동무야, 그 날을 잊으랴/ 우리의 생명을 약속한 그 날은/
8월 15일/ 8월 15일/.....
이 노래는 제가 12살 되던 해에 우리 학교와 마을과 고을의 아이들과, 청년들과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목이 터저라고 불렀던

8.15 해방의 노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꼭 50년 전의 노래였습니다. 사실상 그 때 우리는 처음에 큰 의미도 모르고 부르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저희가 일본 학교에서 서러움을 받고 교육받던 일을 새로 깨달은 후에는 이 노래가 저희 어린 가슴들에게 정말 감격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8.15 노래가 해방 기념절을 맞이할 때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정에서 불려졌다고 생각됩니다.
광복(光復)이란 말은 ‘빼앗긴 국권을 다시 찾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관계되어 1940년 중국 중경(重慶)에서 조직된 광복군이나, 또 국내외 여러 곳에서 조직된 광복단, 광복회 등의 이름들이 우리들의 기록에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광복절이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하므로써,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국권을 되찾은 날을 기념하는 날을 뜻합니다. 아울러 그로부터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기 위하여 제정된 기념일로 되었습니다.
‘희년’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한 여러 축복의 절기들 가운데 최대의 절기를 뜻합니다. 이것은 7년 안식년을 일곱번 지난 다음해가 50년 되는 해인데, 히브리말에 요벨이고 헬라말은 아페세오스 세마시아(φσεω σημασα)로 번역되었는데 그 본래의 뜻은 ‘면제의 표’ 혹은 ‘면제 년’의 뜻이 있습니다.
이 50년이 되는 해는 1년 동안 모든 토지를 쉬게 하고 그 해 모든 땅에 파종과 수확을 중지하고, 자연 생산된 농산물은 그야말로 나그네와 모든 짐승들의 것이 되게 하였습니다. 모든 히브리인의 집에 살고 있는 종들은 자유인으로 되돌려 보내고, 팔렸던 땅도 본 주인에게로 되돌아오고,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해 7월 10일은 대속죄일로 정하고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어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50년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외의 해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레25:8-17).
우리는 이러한 내용들의 배경을 갖고 우리 민족과 교회가 맞는

8.15 절기를 ‘광복 희년’이라는 제목을 정해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설교의 제목은 분명히 정치적인 의미도 있고, 기독교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됩니다. 광복 희년은 해방 50주년의 해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Ⅰ. 광복 희년은 국권 회복의 민족사적 경사를 기억나게 합니다

사실상 우리나라 역사에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국치년(國恥年)(1910.

8. 29)이래 36년간, 일본의 식민 통치하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 나라의 국권(통치권, 국토, 국민)이 송두리채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망국의 비운을 씹었습니다. 이 어간에 우리의 역사는 절단이 나고, 문화와 예술과 전통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세계 패권주의 망상은 날로 득세하기 시작하여 저들은 마침내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이른바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후 이 땅과 이 나라 백성은 완전히 전쟁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을 기하여, 드디어 일본은 연합군에게 항복을 하게 되고, 이 나라는 36년만에 광복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8.15 해방은 이 나라 민족사적 입장에서 볼 때 첫째로, 국권 회복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이씨조선(李氏朝鮮) 500년의 기나긴 왕조 역사가 그 종말을 고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셋째로, 자유 민주주의를 국시(國是)로 하는 새로운 국호(國號)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새 시대의 장(章)을 열었습니다.
해방 후 약 3년간에 넘도록 미 군정하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될 때까지(194

8.

8. 15) 우리 나라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의 혼란기를 겪었습니다. 그 혼란기의 내용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의 대결이었습니다. 그 결과 끝내 남북이 양단 된 반 쪽 정부 수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후 자유당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의 독재와 6. 25사변, 그 후 민주당 장면 정부의 9개월 정치의 무능, 그로 인한 박정희 군사혁명 정부시대, 그것을 이어가던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그리고 다시 문민정부 시대를 맞은 오늘의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5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비록 반쪽의 땅에서나마, 우리는 50년간 온갖 역경과 수난 속에도, 주권국가로서 민주주의를 국시로 세계 열강과 함께 공존하여 왔습니다.

Ⅱ. 광복 희년은 수난 종교인 기독교 신앙의 승리를 맞는 경사입니다

저는 일찍이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은 ‘20세기 극동 아시아의 새 출애굽’이라고 하는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군국주의 압제 아래에서의 자유와 해방이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저 무서운 일본의 소위 ‘천조대신’ 이른바 ‘태양신의 아들’ 숭배에서 해방을 받은 신앙자유입니다.
일제 36년간의 탄압 아래 한국의 기독교는 이중 수난을 겸하여 받았습니다. 그 하나는 국권을 빼앗긴 동족으로서 함께 받은 민족적 수난이요, 또 하나는 기독교 신앙의 이유 때문에 받는 특수한 수난이었습니다.
일본이 한국기독교에 가한 신앙 압제의 정체는 이른바 신도(神道)(the shinto)입니다. 이 신도는 일본의 토착적인 미신종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저들이 이름 붙인 이른바 ‘가미’란 말이 ‘신’인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실제로 그 수는 무한이고, 일반적으로 8만으로 추산되는 많은 신을 모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신(가미)은 ‘영(靈)’인데 만물은 다 영을 가졌다고 하므로, 실제로 신도는 범신론적인 자연숭배였습니다. 이 영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경배(숭배)를 통하여 저들은 복을 받는 다고 믿었습니다. 일본의 천황(天皇)은 , 그 중에도 태양신의 직계이기 때문에 마땅히 경배의 대상으로 숭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천황은 현인신(現人神)으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연 숭배 사상에서 발전하여 조상 숭배의 사상이 생기게 되어 일본인의 가정마다 ‘가미다나’라는 신을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화 하는데는 이러한 신도(神道)사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일본은 이 땅 전역에 신사를 짓고, 우리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한국 백성에게 강요한 신사참배입니다. 저도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매일 학교에 등교할 때와 하교할 때 동쪽에 만들어 놓은 동산 가운데 ‘신사’ 앞에 가서 두 손을 모으고 세 번 합장하고 절을 하는 신사참배를 하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만들거나, 절하지 말라고 하신 성경의 계명을 믿는 기독신자들에게는 큰 사탄의 정체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운 한국의 모든 기독교 학교와, 교회, 신학교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순교적 신앙의 항쟁이었습니다.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기독교 학교들은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목사들에게는 강단에서 추방령을 내리고, 함구령, 금족령을 내렸습니다. 주일예배 시간을 제한하고, 주일 근로동원으로 예배를 방해했습니다. 나중에는 목사가 교회 앞에 행할 설교와 찬송까지 간섭을 하였습니다.
끝까지 항쟁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투옥을 시키고, 국외로 추방을 시켰습니다. 맨 나중에는 한국에 있는 여러 교파들을 통폐합하여 일본 기독교 조선교단으로 노속시키고 말았습니다(194

5.

8. 1).
미국 장로교 외지 선교 보고에 의하면 이러한 핍박 때문에 당시 5,000여 곳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중에서 1,200여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2,000여 신도가 투옥이 되고, 50여명의 종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는 아픔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만을 헤아리던 프로테스탄트 교회 신자의 수는 그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1945년 8월 18일을 기하여 한국 전역에 산재하는 기독 신자들을 진멸 할 계획을 세워 놓고 은밀히 진행 중이었음이 해방 이후 저들의 비밀문서에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그루터기를 남겨 주시기 위하여, 택자를 위하여 환난의 날들을 감하사 3일전에 일본을 심판하고 항복하도록 역사를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떨어트려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만든 것이 그 해 8월 15일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날 8월 15일은 하나님이 이 땅에 해방을 주시던 그 날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마치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저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저들의 혀에는 찬양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대사(大事)였습니다.
시온의 영광은 빛이 나고, 매였던 종들은 감옥에서, 암혈에서, 토굴에서, 외국에서 되돌아오는 신앙 자유의 축복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교회당 종탑 위에 종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전쟁 도구를 만들기 위하여 예배당의 종을 떼어 가고, 우리 백성들의 집에 있던 모든 놋그릇, 은그릇을 다 빼앗아 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쇳소리가 울리는 종소리보다는 신앙양심이 진동하는 감사와 감격의 소리는 더 진하고 아름답고, 거룩했습니다. 어떤 경우든

8. 15해방은 이 땅에서 수난 받던 기독교의 최후 승리를 알려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III. 광복 희년은 복음의 나팔소리를 크게 불러야 할 새 출발의 신호였습니다.

해방을 받은 이 땅의 백성은 결코 행복하지를 못했습니다. 잃어버렸고, 빼앗겼고, 없어져 버린 모든 분야는 그야말로 황무지요, 허허벌판 같았습니다.
남북이 양단 되는 이데올로기의 분쟁을 위시하여, 남한만의 정부수립, 경제 재건, 교육재건 등.....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만 되는 우리들은 그 어느 분야, 그 어느 사건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1950년에 일어났던 6. 25사변은 이 강산 전부를 초토화시키고 말았습니다. 3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참상은 문자 그대로 비참 뿐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이승만 정부의 장기독재, 장면 정권의 무능, 그로인한 장기적인 군사혁명의 공포정치가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이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6. 25 비극을 통하여 수많은 순교자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 전쟁의 비극 속에서 오히려 이 나라 방방곡곡에 교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군사 혁명정부의 공포정치는 그의 반기독교회적인 성격이 농후했습니다. 경제적인 곤경이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배당이 비온 뒤의 죽순처럼 일어났습니다. 한 때 이 나라의 유행어 중에 ‘섯다하면 예배당’이고 ‘생겼다 하면 다방’이라고 하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만도 4만이 훨씬 넘고, 1,000만이 넘는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외국에서든지 한국인이 사는 곳에는 교회가 서게 됩니다. 이 나라 각계 각층에 복음증거의 단체들이 파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근년에 와서 한국교회는 마음과 눈을 열어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복음화 운동을 위하여 선교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지금 비 공식 통계에 따르면 평신도 선교사까지 합치면 8,000여명이 넘는 이 땅의 크리스챤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서 예수 복음의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확실히 광복 희년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확실하고 분명한 역사의 표징은 광복 희년 50년간은 우리에게 있어서 ‘하늘의 반시동안 고요한’ 어간이었습니다(계8:1). 그렇다고 광복 희년의 어간이 결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교육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태평성대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엄청난 진통 속에서 우리 한국 교회는 신앙과 예배와 전도와 선교의 자유를 누리면서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도 이 나라가, 비록 반쪽이지만 문민 민주시대를 꽃피웠다는 자체는 한국이 받은 정치적 이적입니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기독교인들의 교회성장과 함께한 영의 이적이요, 복음의 이적입니다. 2,000년 기독교 선교 역사상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 기독교회가 받은 축복은 가히 기록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미증유 축복이요, 이적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아직까지 응답 받지 못한 한국교회의 소원이요,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제 앞에 확실한 확신과 사명을 가집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주역을 감당할 종말론적인 사명의식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은 이 놀라운 세계선교 사명의 진행을 위하여 조국의 통일까지 허락하고 말 것입니다.
결코 존재하는 세계와 세계역사는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주장하는 사람들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는 구속운동의 수단으로 사람들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마24:14).
그러므로 사실상 이 나라의 장래는 민주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알고 보면 교회와 교회가 받은 사명 수행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광복 희년의 역사적 의미를 바로 새기고,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의 나팔을 크게 부는 희년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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