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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을 통한 승리 (막 08: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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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12살 때부터 매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기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에는 한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찬양하게 될 때에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제자들을 좀 조용히 하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 19:40)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 입성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자연만물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마지막에 부활하시는 승리의 입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한주간 동안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다가 사랑하는 유다에게 입맞춤으로써 팔려가게 됩니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나중에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박히신 채 피흘려 죽으셨다가 장례 지낸지 사흘 만에 빈 무덤을 남겨놓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제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다.”(막 8:33)라고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으신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구나. 사탄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멸망으로 치닫게 될 때에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주신 종교입니다. 이것을 구원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대속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 중요한 진리를 우리가 고난주간에 다시 한 번 깨닫고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해야 될 줄로 압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을 통한 승리’라는 제목으로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참 생명은 고난의 값을 지불해야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고통도 죽음도 없이 유태인을 구원할 것이라는 구약에 나타난 메시아의 개념에서 우리 선생님은 그럴 수가 없다고 간하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고난 없이 영광은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고난당하는 것이 안 됐지만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의 대가를 지불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구원을 받게 하신 이 놀라운 역사를 이 고난주간에 행하신 것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피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더러원진 피,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타락한 인간을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그 피가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 이것이 피의 진리, 구속의 진리입니다. 피 없이는 우리의 죄를 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십자가의 부활의 진리로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신앙으로 고백할 때에 부활의 축복이 오고, 생활의 축복이 오고, 영혼의 축복이 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후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포항제철소에 가면 붉은 철광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이 철광석이 뜨거운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아주 질좋은 쇠가 되어 나옵니다. 더 뜨거운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온 철은 강철이 되어 나옵니다. 수천 도가 넘는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값있는 쇠붙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고난을 거쳐서만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값을 지불해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 이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구원의 진리입니다. 고난을 회피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을 때에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의 새 생명을 얻게 하시는 위대한 기독교의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그냥 지나쳐버리고 그저 축복만 얘기하는 것은 바른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새 생명을 얻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참 생명의 승리는 자기부인에서 얻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휘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그대로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땅에 떨어져 죽으면 수십 배의 열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긍정적인 신앙을 주장합니다. 긍정적인 신앙이란 그리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부인할 때에 도리어 내가 긍정적인 자리에 들어갑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탐심, 내 욕심, 내 정욕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쓰레기와 같은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죄악적인 요소를 부인할 때에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부인을 싫어합니다.
모세는 자기를 부인한 위대한 승리의 사람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 보면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 이름을 생명록에서 지워버린다 할지라도 내 백성을 구원해 달라는 자기부인이 있을 때에 모세는 위대한 승리자가 된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롬 9:3)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멸망을 받을지라도 내 골육친척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자기부인 때문에 우리들까지도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자기부인이요.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누군가가 내 대신 대속의 죽음을 죽을 때에 내가 살아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게 하신 그 정신을 우리가 가지고 내 자신을 부인하게 될 때에 궁극적인 승리가 있다는 교훈입니다.
저희 가족 가운데 순교당한 분이 있는데 그는 제 고종사촌 되는 장도신목사님입니다. 그는 평양 고정교회 목사님으로 계시면서 공산당의 박해 속에서도 흰 옷을 입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그는 결코 김일성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남한으로 월남하여 사람들은 그에게 더 이상 지체하면 체포당해 순교당할 지 모르니 월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주 쪽으로 내려와서 자유로운 남한 땅을 바다 건너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양떼를 버리고 자유의 땅으로 월남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돌아가서 내 양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목회를 할 것인가’ 며칠 동안을 자유의 땅을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다시 짐을 싸서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심방을 다니던 골목길에서 정보원에게 붙잡혀 결국 시베리아 벌판에서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인의 바른 모습을 나타내보인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오늘 누군가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에 생명을 얻는 사람들이 생기고 궁극적인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참 제자의 길은 십자가를 질 때에 부활의 영광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승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부활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공자님도, 석가도 우리를 위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33세에 죄 없으신 몸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대속해 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은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마지막으로 제가 어렸을 때에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어느 시골에 교회학교에 잘 다니던 학생이 있었던 그는 늘 기차길 옆으로 걸어서 통학을 했습니다. 한번은 밤새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났는데 가만히 보니 철로가 끊어져 있었습니다. 기차가 올 시간이 다 되었는데 큰일났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자기의 흰 셔츠를 벗고 칼로 자기의 다리를 찔러 피를 흘리게 하고는 그 피로 흰 셔츠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때 멀리서 기적소리를 내며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흰셔츠를 흔들면서 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기관사가 그를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마침내 그 소년 앞에서 기차가 멈추어 섰습니다. 소년은 기차가 멎자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기관사가 내려서 그 소년을 안고 보니 이미 소년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철로가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기차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피를 뿌렸던 것입니다. 그 소년의 옆에 책가방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신약성경 한 권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년은 마지막 순간에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짊으로 말미암아 수백 명의 생명을 살렸다는 얘기입니다.
내 이웃과, 내 형제와,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에 비로소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고 승리가 있는 것을 깨닫고 이 고난주간에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생활로 그리스도의 빛을 증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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