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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주받은 도시들 (마 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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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구 집중문제, 교통문제, 주택문제, 대기오염, 환경파괴, 범죄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도시가 크면 클수록 그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도 큰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시규모가 크면 클수록 문제도 크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도시가 오늘까지 남아 있는 것도 있고 없어져 버린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로라 라든지, 품페이 같은 도시는 없어졌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 도시도 없어졌습니다. 그 세 도시는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입니다. 그 세 도시는 서울이나 뉴욕처럼 큰 도시는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 당시 그 지역에서는 큰 도시 구실을 했습니다.
그 도시들이 왜 없어졌는가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현대 도시의 성격 규명과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불신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신의 결과입니다. 믿으면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만 안 믿으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도시를 사람으로 의인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과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가 없으면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자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느끼고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 단계는 시인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와 가지고 있는 잘못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셋째 단계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도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하고 믿음도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낱낱이 마치 자술서를 쓰는 것처럼 내가 지은 죄를 숨김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넷째 단계는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고백만으로 끝나 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내가 고백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다섯째 단계는 사죄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내 죄를 고백하면 그리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눈보다 더 희게 양털보다 더 희게 사하신다고 약속하셨고(사 1:18),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다고 했습니다(사 44:22). 그리고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기시겠다고 했습니다(시 103:12).
여섯째 단계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참회개는 거기서 돌아서야 합니다. 거기서 발을 빼고 손을 씻고 그 현장을 떠나야 합니다. 죄에 대해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일곱째 단계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돌이켰으면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딴데로 가면 안됩니다.
여덟번째 단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되돌이 근성이 있습니다. 회개했노라고 하지만 옛날 그때 거기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른다면 죄길로 되돌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히면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고라신 도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도 목격했습니다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도시들은 어떻습니까 서울 장안에 사는 사람치고 교회를 모르는 사람과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니 서울 시민 1200만을 생각할 것까지도 없습니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친구들 가운데 고라신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가 없으면 그 다음은 멸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2. 교만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 올라 가겠다고 설쳤던 루시퍼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시날 평원에 모여 성을 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벽돌을 만들고 역청을 만들어 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성의 높이는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하나님을 낮추고 자기네 이름을 떨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탑은 무너졌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쌓으려 했던 교만의 탑은 지금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역시 교만과 패륜과 부도덕과 불신때문에 유황불에 녹아 없어졌습니다.
개인도, 도시도, 역사도, 왕조도 교만하면 안 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의 교만은 금물입니다.
바벨론 왕조의 느브갓네살 왕은 교만 때문에 쫓겨났고, 이스라엘의 사울 왕도 왕위에서 쫓겨났고, 페르시아의 국무총리 하만도 교만 때문에 죽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였던 테일러(Jeremy Taylor)는 “당신이 태어나기전에 무엇이었는가를 생가해보라. 그때 당신은 무(無)였다. 그후 여러해 동안 당신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라. 그것은 연약함이었다. 그 다음 당신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라. 그것은 큰 죄인이다. 당신은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부모와 이웃에게 빚진 자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한다면 날마다 우리는 겸손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 산정현 교회의 청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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