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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을 이기는 생활 (벧전 0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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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장의 주제는 고난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3장 1절에서 7절의 말씀을 통해서 고난의 시대에서의 가정 생활,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특별히 믿지 아니하는 남편과의 관계속에서 어떻게 가정 생활을 해야만 하는가 또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가정을 형성해 나가야 하는가를 살펴 보았습니다.
3장 8절에서 17절까지는 고난을 이기는 복된 생활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1).사람을 사랑하는 삶(8절-12절) 2).그리스도를 주 로 삼는 삶(13절-15절) 3).선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삶(16절-17절)

1.사람을 사랑하는 삶 사도 베드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고난 속에서 고난을 이기는 가장 축복된 생활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분문 8절에서 12절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이 올 때 우리의 마음이 냉각되기가 쉽습니다. 잘못하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증오의 화신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사랑하는 이 삶에 있어서 8절에서 12절 까지에서 특별히 세 가지 측면을 강조합니다.1).형제 사랑(8절) 2).핍박자 사랑(9절) 3).생명을 사랑(10절-12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8절) 본문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라는 구절로 말씀이 시작됩니다. 벧전의 마지막 장은 5장인데 사도 베드로는 대단히 성급하게 을 맺고 싶어합니다.
지금까지 고난의 목적과 고난의 모본을 생각하면서 또 고난을 예견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은 그 열심을 그는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씀을 시작합니다.1).형제 사랑 형제를 사랑하며라는 어구가 이 구절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까
첫째는,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체휼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겸손하라 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이 네 가지의 부과적인 충고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마음을 같이 하라 여기에서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씀은 근본적인 것에 있어서 일치하라는 뜻입니다.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형제들이라면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것에 관해서 적어도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형제 사랑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치하는 교제를 나눈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모든 사실에 관해서 똑같은 생각을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에 관해서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 방법보다 상대방의 방법이 나을 수도 있고,상대방의 방법보다 내 방법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방법에 관해서는 우리가 관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본문에서 마음을 같이하라고 말할 때 이것은 근원적인 것에 관해서,본질적인 것에 관해서 일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근원적인 것에 관해서 마음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이 아닌 문제에 관해서는 불일치할 수 있는 것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것,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독교 교리의 뿌리,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리에 관해서는 절대로 마음이 갈라질 수 없습니다.
둘째로,체휼하라. 체휼이라는 말은 같이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웃의 기쁨과 이웃의 슬픔, 이웃의 모든 삶에 동참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정말 형제를 사랑하는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의 기쁨에 동참하고 이웃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우는 사람과 더불어 울기는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웃는 사람과 더불어 같이 웃을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박수 치며 축복해줄 수 있는가 약자를 동정하는 것은 다소 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형제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함께 박수 치며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이라면 같이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한 지체 의식을 가지고 슬픔과 기쁨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형제 사랑입니다.
셋째로,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서 제일 강조된 것이 바로 이 불쌍히 여기시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방황하는 수많은 무리들을 바라보실 때 제일 많이 기록되고 있는 표현이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주님이 사람들을 보시던 그 관점에서 사람들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없이 무작정 걸어가고 있는 저 영혼들을 향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비판하기보다 상대방의 약점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중 아무나 실수 하나 하지 않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그러므로 이 불쌍히 여기는 삶의 태도가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언제나 깨질 수 있습니다.
넷째로, 겸손하라. 형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겸손한 태도 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빌2장에서 바울 사도는 특별히 이 겸손의 문제를 우리에게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겸손의 가장 훌륭한 모본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5절) 이어서 예수님을 소개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6-7절) 여기서 겸손이란 어떠한 태도입니까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아이고 집사님하고 쩔쩔매는 것이 겸손입니까 우리는 잘못하면 겸손을 외향적인 어떤 형식에서부터 찾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골 2장 18절)을 보면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외적으로 꾸미는 겸손,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겸손의 정신은 종의 정신입니다. 종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향해서 섬기는 태도를 가지는 그 순간 나는 저절로 겸손해 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보다도 겸손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대하실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우리를 섬기러고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마 20:28) 우리 모두가 다 받으려고만 하고 지배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인간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2). 핍박자 사랑 사도 베드로는 형제 사랑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핍박자까지 사랑하라고 합니다.
본문 9절을 봅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나를 악하게 대하는 사람, 또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을까요 우리가 그런 사람을 용서하고 참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태도로써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문제에 관해서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롬 12:19) 우리가 스스로 원수 갚으려고 하는 것은 주께 대한 월권 행위입니다.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의 일이므로 우리는 결코 원수 갚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는다는 사실만 가지고서는 원수를 대하는 태도가 정립된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원수가 행한 일을 잊어야 합니다. 상대장이 나에게 잘못 행한 모든 일들을 잊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한다고는 말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은 잊어버리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참으로 용서햇는가를 알 수 있는 표는 우리가 그의 악함을 참으로 잊어버렸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상대방을 용서했다면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미가서 7장 19절을 보시면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발로 밟으신 다음에 깊은 바다 속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38장 17절을 보시면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여기서는 주께서 나의 죄를 주님의 등 뒤로 던지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죄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신뢰한 그 순간은 우리의 죄는 주님의 등 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 죄를 보실 수 없습니다. 주님의 등 뒤에 있기 대문입니다.
시편 103편 12절을 보시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동과 서는 완전히 반대 방향입니다. 이 동서 간의 거리만큼이나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의 잘못을 잊었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르게 정립된 것은 아닙니다.
셋째로,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제일 어렵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의 잘못을 잊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본문은 도리어 복을 빌라 고 말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힌 사람,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사람, 보기만 해도 밥맛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일단 기도를 시작해 봅시다. 그리고 기도로써 그 사람을 축복해 봅시다. 그러면 내 마음 속의 상처가 놀랍게 치료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합니다.
미워해 보십시오 이를 갈아 보십시오 . 점점 비참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이 제일 비참해집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식사도 안 됩니다. 밥을 먹지 못하면 누구 손해입니까 자기 손해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제일 비참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는 그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 할 필요가 있습니다.
3).생명을 사랑함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10절) 여기서 생명이란 우리 인생을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한 번 밖에 없는 이 삶을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 있게 살아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좋은 인생이 우리 앞에 전개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바른 인간 관계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기를 원하면 바른 인간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른 인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로, 혀를 금해야 합니다.
좋은 인간 관계를 맺어서 좋은 인생의 날을 맛보기를 원한다면 혀를 금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혀를 금하라는 말을 본문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10절)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제일 먼저 활동을 시작하는 부분은 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혀를 금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둘째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11절을 봅시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처음에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지만 잘못한 사람을 인해서 이를 갈다 보면 얼마 후에 나도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악에 빠지지 말고 악에서 떠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삶 속에 뛰어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화평을 구해야 합니다.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11절)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서 저들은 참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라고 감탄하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밤새 철야기도를 하는 모습에서 그런 감동을 받습니까 아! 저 사람이 진짜 신자로구나 라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저것들 다 미쳤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은 우리가 이 화평의 삶을 실천할 때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할 때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무엇인가 다르구나!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주께서 약속하십니까
본문 12절을 봅시다.
주 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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