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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반항 (롬 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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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르키 드 싸드(Marquis de Sade)라는 이름을 들으면, 쌔디즘을 연상합니다. 쌔디즘은 마르키 드 사드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학적인 성 도착증을 말합니다. 마르키는 많은 활동을 남긴 철학자이자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인생은, 기본적으로, 기존 사회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항과 반역으로 일관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한 마르키의 사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반항, 그리고 그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반항, 나아가 자신에대한 반항으로 발전했습니다. 마 르키는 성본능에 대한 인간의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그를, 가학적인 성격 파탄자로,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했습니다. 그 의 삶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 오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본보기가 됩니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합한 삶을 살아갈 때입니다. 반대로 인간의 가장 추 악한 모습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에 좇아 살아갈 때입니 다. 왜냐하면, 자기 욕심을 좇아 사는 것은 죄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금하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을 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이것은 죄의 적극적인 측면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되는 두번째 방법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소극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 고보서 4장 17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죄를 범하지 않도 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죄를 피하는 데 필요 충 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 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시 119:11)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어야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에서 죄의 유혹을 만나더라도, 우리 마음에 새겨진 진리의 말씀으로, 죄를 극복하는 능력을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가 거 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활하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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