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혼의 길잡이 (눅 20:1-8, 마 21:23-27, 막 11:27-33)

첨부 1


예수께서 하루는 성전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물었다.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가르치는가였 다.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하나님 자신이 세상에 와서 그많은 기적과 에언과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을 구하려고 하셨고 자신의 성전에 들어와서 가르치는데 조금만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이라며 그 넘쳐나 는 권능의 빛을 보았을 것을.

 거기에 온 사람들이 누구던가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다 모여온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들어보고 거기서 자기들이 찾던 복음이 있다 는 걸 알면 그 앞에 엎드려서 열심히 들었어야 했다.그러나 그들의 관 심은 진리에 있지 않았다.그들은 단지 새로운 선생이 나타난 것이 못 마땅했을뿐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자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 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때 예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 그들을 물리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대로 된다면 예수를 향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 다.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아니면 제가 그냥 맘대로 했 는지였다. 그러자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로서 왔음을 알고도 믿지 않았는지 않았는가. 백성들 모두가 그를 선 지자로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에게 맞는 말이다.

정말로 하늘에서 왔고 자기의 장래가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 다면 어찌 그러겠는가.자기가 당할 무서운 운명을 보면서 그렇게 머뭇 거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막연히 그 하는 것을 보아서 하나님으로부 터 온 것 같기는 하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냥 과거의 관습에 잡혀서 결 단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요한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또한 그 빛이 보여주는 실체도 물 론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 재임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받을 것이면 요한부터 받아들였을 것이다. 길잡이를 거부했으니 어떻게 자기의 힘으로 그리 스도에게 도달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예수도 그들에게 대답할 필 요가 없었던 것이다.

 요한 사역의 출발이 어디인줄 알았더라면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 았으리라. 그래서 예수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대로 믿었을 것이 다.요한의 임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 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요한의 사역을 누가 그리고 무엇이 담당 할 것인가이들을 하나님으로 것으로 용납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도 받 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교회가 요한의 일을 한다. 교회 소속된 모든 사람들, 그리고 교회의 예배와 행사들이 요한의 일을 한다.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참고할 일이 있다.우리 모두는 요한도 될 수 있고 여기 나오는 바래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될 수도 있다.이 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차칫 잘못하면 대부분의 경우가 그들 처럼 된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이다. 요한이 되던가 바리새인 서기관이 되던가이다.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복을 받아서 누리고 있는가그래서 말과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는가여기에 대한 대답이 분명하면 나 는 복된 요한의 삶을 살고 있는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그리스도가 내 게 해 주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그것을 삶에 적응시켜서 거룩한 살 믈 살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그리스도가 내게 무슨 유익을 주었는지 모르고 단지 내 열심 과 선행으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이들은 당시의 종교인들처럼 요한의 빛을 외면한다.그리스도의 복음에는 관심이 없다.예배나 행사에 열심 히 참석하는 것도 안하면 벌을 받은다거나 열심히 하면 복을 받으리라 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주가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분일뿐이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질문은 이렇게하면 복을 받겠습니까 이 일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 목사님은 정말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분입니까 이 교회에 나 오면 복받습니까일 것이다. 이렇듯 믿음의 내용이 불확실하거나 자 기의 선행이나 열심 또는 기분이 기준이되면 절대로 믿음의 확신이 일 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자기를 통해서 살도록 그의 뜻에 복종하면 사는 이들은 이미 받은 복이 자기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을 경험한다. 보라. 하나님도 누구에게 복을 받기를 원 했겠는가 상받기를 원하겠는가 그는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했 고 충만한 분이다. 아무 것도 저에게는 필요 없다.스스로 완벽한 행복 속에 계신 분이시다.

 신자들은 이러한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한 신자들에게 목사도 다른신자들도 예배의 모든 순서들도 모두가 세례 요한처럼 자신에게 고마운 인도자일뿐이다. 혹시 역경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모두 가 같은 의미에게 인생을 바라본다. 이러한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그의 것이다. 무엇보다도 천국을 지금 누린다.

 신자들은 모두가 구도자이면서도 동시에 영혼의 길잡이다. 내가 신앙 을 모르고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내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올바른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기에 야고보는 행동으로 믿음의 증거를 보이라고 했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알고 믿었 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그에게 인도하느라 한 평생을 보냈다. 우리 도 각자가 요한임을 확인하자.

 예수 당시의 상황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당시의 바리새 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사람들에게 종교인으로 존경을 받고 스스로도 잘하고 있다고 믿은 이들이 신앙적으로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 였다. 그러니까 요하의 인도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구세주를 눈 앞에 보면서도 전혀 알지도 못했다.물론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했으니 바리새인이면 무얼하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