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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에 실패했을 때 (눅 0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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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사람이 모든 면에 성공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모든 면에 실패만 하고 낭패만 당한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에 살아가면서 성공도 하고 또 실패도 합니다. 우리는 삶에 낭패를 당했을 때 다시 정상궤도를 이렇지 못한 인생은 파멸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 다.

우리는 이에 대한 교훈을 베드로의 체험을 통해 배울수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고기잡이에는 일가견이 있는 전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 베드로는 삶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그의 장모는 병들어 누었습니 다. 한 날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병들어 누워있는 장모의 약값도 마련해야 하고 가족의 생계도 꾸려 나가야 할 베드로인데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못잡았으니 그의 심정이 오죽했겠습 니까. 그는 참담한 절망을 느끼며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 시고 복음을 증거하신 후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대로 하니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고 다른 배에 고기를 나누어 실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체험을 통해 인생의 대변혁을 맞았습니다.그는 실패를 안 고 있던 어부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놀라운 체험을 했고 위대한 하늘나라의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런 체험에서 몇 가지 중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상식이 통하는 정통적인 삶.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가 상식이 통하는 전통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전통적인 삶의 방법과 지혜를 갖 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고난과 실패에 처했 을 때 전통적인 삶의 방법과 지혜로는 그 문제를 풀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라면 누구나 행하는 방법으로 고기를 잡으러 늘 나 갔습니다 전통적으로 갈릴리에서는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왜냐하면 밤에 고기들이 얕은 곳으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물이 맑아 고기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 곳이 갈릴리입니다. 베드로는 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밤이 잡 으려고 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염려와 근심이 무거 운 바위처럼 그의 마음을 짖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무치는 절망을 안고 배 곁에서 허탈한 심정으로 그물을 씻고만 있는 `처량한 존재'가 되고 말았 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간의 모습입니다. `빈 배 곁에서 빈 그물을 만지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생을 살 때 상식적이고 수평적 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경험에 의한 수평적 대 응을 하며 그러다 안될 때는 한계를 느끼고 절망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 다.

최근 우리는 신문을 펴들 때마다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에 관한 기사를 보 며 걱정을 합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가트가 우루과이에서 맺은 통상협약 으로, 모든 나라가 관세장벽을 허물고 물자교환을 자유롭게 하자는 협약입 니다. 그런데 이 우루과이 라운드대로 하면 우리의 농업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농업은 국가에서 보조를 하고 또 비싼 값으로 사 들여 운영 되는데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호주의 막대한 잉여 농산물이 쏟아 져 들어오면 농촌은 살 길이 막막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들 들어 말하면, 한국의 쌀이 한 톤에 300불 한다면, 미국의 쌀 한 톤은 30불하는 것과 같습 니다. 그러니 이 판매가 경쟁이 되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루과이 라운드가 실시되면 한국의 농촌은 황폐해질 것이 뻔한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국제적인 협약을 무시하면 고립화되어 살아갈 수가 없으며 또 다른 나라에 상품을 수출할 수도 없게 되고 맙니다.

이런 전망은 수평적 사고의 계산에서 나온 전망입니다.이런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수평적 사고로 현실을 해석 하고 비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직적 사고로 현실에 대응해 야 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는 농촌에의 혁명을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 다. 이런 획기적인 방법이 한동안 진통과 부작용이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가 면 더 나은 결과를 우리가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현 재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과에 완전히 반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과 때문에 일본의 과수산업이 흔들린다고 할 정도입니다. 나는 최근 일본 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과를 맛본 다음 일본 사과는 먹지 못하 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본의 인구는 무려 1억2천입니다. 따라서 우루과이라운드로 농가가 근심에 휩싸이는 이 때 우리가 탄식만 할 것이 아 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과를 재배해 일본과 구라파, 미주에 판로를 개척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벼농사만 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 통적인 수평사고입니다. 이런 때 우리는 획기적인 방법을 구상해야 할것입 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밤에 얕은 곳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전통적 인 수평적 대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직적 대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깊은 곳으로 가 그물을 내리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나는 핀란드의 헬싱키에 있는 `바위교회'를 보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 신 지혜에 탄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루터란 교회에서 헬싱키 시내에 교회 를 세우려고 할 때 그들은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수평적 사고로 볼 때 시당국에서 교회를 위해 시내에 건축하기를 내어줄 터가 없었습니다. 보 통 사람들은 도시계획상 시내에 교회가 세워질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건축학도인 젊은이는 수평적 사고로 현실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시내 한 가운데 있는 큰 바위 위에 올라가 시내를 보며 교회건축을 위해 기도하다가 바로 이곳이 교회터란 수직적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익은 계란에서 노른자를 파내듯 바위를 파내 교회를 지으면 된다 는 아이디어를 얻어 시의 허락을 받은 다음 그대로 시행, 아름다은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지금 이 `바위교회'는 핀란드의 관광소가 되었습니다. 핀란드 에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을 들러 인간의 지혜와 예술에 탄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요,방법이었습니다.

만일 세 젊은이가 수평적 삶의 틀만 고집했다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 었겠습니까. 이들은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그 수직적 방법을 모색해 한계의 돌파구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맞은 고난을 우리는 오히 려 수직적인 삶을 개발한 기회로 삼고 생활의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러나 이런 것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하 나님과의 만남과 그에 따른 믿음 없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 다.

 2.종교적 체험과 현실적 삶.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현실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은 신앙의 연장임을 우리 주님께서 본문의 기사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셨 습니다. 베드로가 빈 배를 저어 해변으로 왔을 때 그의 마음도 텅 비었습니 다. 그의 그물은 끊어지기도 했으며 쓸데 없는 해초로 지저분해지기도 했습 니다.

우리도 오늘날 살아가면서 인생의 빈 배처럼 되고 훼손된 그물처럼 될 때 가 있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물거품처럼 되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습 니다.

그런데 이런 `실패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획기적 기회입니다. 베드로의 실패의 현장에 는 그 배를 빌 려 타셨습니다. 여기에 하늘나라의 은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실패한 인생을 예수님께서는 실패한 인생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네 시간 을 다오. 복음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말씀하셔도 무시합니다. 그러나 황폐해 진 인생, 경제수단이란 그물이 찢어지고 행복과 기쁨이 빈 그런 배같은 처 지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예수님을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빈 배를 타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타신 다음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다른 동료들이 보았다면 아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혹시 어떤 동료는세상에 고기를 잡아 처자를 살려 먹어 야 할 사람이 배에 웬 청년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니.....미쳐도 보통 미친게 아니다. 저 사람 이제 갈 때까지 다 갔다라고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현실의 삶을 생각지도 않고 종교행사에 참여한 베드로의 모습은, 오늘날 낭패와 실망을 당한 뒤 부인 따라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는 한 인생 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과거 화려하게 사업하다가 패망한 후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주위에서는 저 사람, 이제 돌았군. 한때 그 렇게 명예를 뽑내던 사람이 부인 따라 교회에 가서 손뼉치며 할렐루야 하 니 갈 때까지 다 갔다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웃이 현실생활과 동떨어졌다고 비난하는 그 자리 가 바로 수평적 인생에서 수직적 인생으로 바뀌는 자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수평적 인생 생활에 실패한 사람이 수직적 삶으로 귀환, 출발하는 그 훈련장이 교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시고 가졌던 빈 배에서의 종교적 체험은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체험이요,한 인생을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체험이 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증거를 마친 다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빈 배를 마련해 준 베드로를 향해 자, 이제 되었다. 그냥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 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다음 깊은 데로 가서 그물 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수평적 사고 에서 완전히 어긋나는 말씀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전통적인 삶에서는 상상 도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사 고방식은 인간의 수평적 사고를 초월하십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님의 계시적인 이 수직적 말씀을 무시하고 받아들이 지 않은다면 인생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 는다는 것은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 뿐 아니라 계시적이며 신앙적인 수직적 삶의 방법으로 인생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말씀 하셨습니다.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3. 예수님께서 주시는 삶의 아이디어

예수님께서는 현실적인 삶의 중요성을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삶의 순서를 바로 잡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신앙을 가지면 현실을 저버리고 빈궁하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이는 오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현실을 무시하셨다면 그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구하라고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신앙인의 삶의 순서 즉 하늘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대한 현실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요한3서 2절에도 사랑 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영혼이 잘 되는 일 을 먼저 생각하고 그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배를 빌려줌으로써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꿈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말씀입니다. 전통적으로나 상식적으로는 밤에 얕은 곳에서 고기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낮에 깊은 곳에서 고기 잡으 라니 이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얼떨떨해서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기잡는데는 베드로가 전문인입니다. 그는 어느 때 어디에 고기가 몰리는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증거하시는 동안 베드로의 마음은 큰 변화를 받았습니 다. 베드로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절망의 상황에서 상식적이고 전 통적인 방법으로 살것이 아니라 계시적이고 신앙적인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 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베드로는 메시야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 다.

그 때문에 베드로는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깊은 곳으로 배를 저어 갔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혼자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 습니다. 교회에서만 예수님을 느끼고 사업할 때나 가사를 돌볼 때 예수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타고 고기잡이하러 나가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전에서 성도와 함께 하신 예수님께서는 상식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계시적이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능력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세상에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며 위에 일하시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결과 얼마나 고 기가 많이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을 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인간과 함께 일하신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는 구만리장천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낭패와 실망에서 예수님을 모신 베드로는 주님의 아이디어를 받아 획기적 인 삶의 변화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풍성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 다. 예수님께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 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 라(요한복음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획기적으로 변화를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실상을 알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 수님께서는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고 말 씀하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좇아 위대한 인생을 새출발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수평적인 인생을 살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상한 심령, 생활이 훼손된 사람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런 일생을 책임지 십니다. 이런 인생에서 수직적인 삶을 살게 하셔서 실패한 그 자리에서 성 공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저희들의 인생에 으로 살다 절망하고 탄식했습니다. 이 제 신앙의 전기를 마련하고 수직적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살겠 습니다. 말씀으로 살겠습니다. 인본주의적으로 살았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삶을 개선시켜 주시고 힘과 소망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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