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앙의 생활화를 위한 자세 (약 01:19-21)

첨부 1


지금까지신앙의 생활화를 위해서는 시련이 닥칠 때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대처해야 하고, 유혹이 접근해 올 때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살펴보았습니 다. 이제 이 시련과 유혹을 잘 이겨 내는 신앙적인 인격자가 되 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에 보면, 신앙의 생활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 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 그 근본이라고 일러 주고 있습니다. 시련을 이기는 것도 말씀 을 통해서이고 유혹을 이기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가 신앙의 생활화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고 어떻게 말씀 안 에 거하여 사느냐에 시련을 이기고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생활화 된 믿음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 과 이웃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표현되는 신앙의 모습은 말씀에 대한 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신앙도 말씀에 기초하고 생활도 말씀에 좌우됩니다. 로마서 10장 17절 말씀대로 믿음은 들음 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말씀을 열심히 들어야 하고 또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의 요지입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신앙 의 생활화를 위한 다섯 가지 자세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말씀을 경청하라

우선 말씀을 경건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19절 말씀을 보 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 고.

이 말씀이 언어 생활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잠언에 보면 입을 조심하라는 말씀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10장, 13장, 17장, 29장 참조). 성경은, 신자의 성숙한 모습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나타남을 주지하며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형제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을 일 컫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입 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새롭 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야 고보 사도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실된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들어 봅시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씀을 쉽게 풀어 말하면, 누 구든지 듣기를 잘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나 영적으로 하나 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 모두에게 예외 없이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신앙이 생활화되기 위해서는 누구든 듣기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잘 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도 잘 들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빨라야 하고 간절한 마음으 로 경청을 해야 하는 우리의 듣는 태도를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 말씀 듣기를 간절히 소 망하는 태도입니다. 목사님의 설교 뿐만 아니라 방송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을 때나 신문과 잡지에 수록된 기사, 그리고 각종 Q.

T. 자료를 이용해 성경 읽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 는 그 음성을 들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말 그대로 신앙의 생활화를 꾀할 수 있고 그 삶에 변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소홀하면 절대로 신앙의 생활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과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과는 확실하게 차이가 납니다. 또 말씀을 들을 때에도 진심으로 사모하는 마음으 로 듣는 사람과, 건성으로 방관자적 입장으로 듣는 사람은 영적인 태도와 삶의 변화에서 질적인 수준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기 전에 성가대원으로 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성가대석에 앉아서 말씀을 제대로 들은 적이 몇 번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마다 아휴, 우리 목사님 웅변 참 잘하 시네. 그런데 왜 이리 은혜가 없지? 하며 말씀에 집중하지 않 았습니다. 게다가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성경 본문이 아는 이야기라 고, 수백 번 들은 설교라고 잘 안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설교 말씀을 들을 때나 혼자 성경을 볼 때도 주님의 음성 을 들으려는 노력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사무엘이 말씀하옵소 서 주(主)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라고 고백한 것처 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활짝 열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때 삶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신앙이 생활 화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듣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란 성경 말씀을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영감 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버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음성을 정확하 게 지적하여 들려 주신다고 하는 사실이 더욱더 성경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성경 읽을 때, 설레이는 가슴으로 연애 편지를 읽듯이 ,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낸 말씀으로 읽고 또 읽어 외우다시피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듣습니다.

양심을 통해 전달되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 는 양심이 마비되기 쉬운 환경입니다. 가장 흔한 예(例)로 자녀 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현상이 있습니다. 전화가 옵니다. 어린 자녀가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 받기 싫은 사람이 건 전화일 경 우, 아이를 시켜 없다고 말합니다.

아빠가 그러는데 없다고 그러래요.

어려서부터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양 심은 이제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양심이 무 엇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양심에는 항상 두 가지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첫번째 목소리는 선 한 의지입니다. 두번째 목소리는 마귀, 악(惡)의 꾀임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첫번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 라 행동해야 합니다. 선한 양심에 순종할 때 신앙의 생활화를 체 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역사의 교훈을 통해서 듣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존귀하신 분입니 다. 그분이 이 세계의 역사와 인간의 경험과 국가의 경험과 사회 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날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문이나 라디오 혹은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각종 사건이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죄를 지은 사람의 잘못만 보면 위험합니다.

나 자신에게는 그러한 죄가 없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귀감이 될 만한 보도가 나오면 도전을 받아 우리도 이웃을 돕고 선(善)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간증을 통해서 인생의 교훈과 내 주위의 교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그 음성을 잘 듣고 마음을 열어 교훈과 경고를 받아들이면, 우리의 인격이 성장 하고 마음과 태도가 변하고 사고 방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던 좋은 성품은 강화되고 나쁜 것은 계속 교정해 나감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생활화될 것입니다. 말씀을 간절한 마 음으로 경청하십시오.

 논쟁을 삼가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 후에는 덕이 안 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말하기를 더디 하며.

여기서는 사람들끼리 어떤 주제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을 말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입장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언제 나 떠들어대는 사람보다 듣기를 잘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아 따지고 싸우려 하고 논쟁하려 하며 듣지 않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고 배우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 은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이단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늘 논쟁을 벌인다 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느 한 부분 특히 신학적으로 애매한 부분 을 떼어내어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자신들의 해석이 옳음을 주장하 며 신자들을 공격합니다. 이단과 논쟁하다 보면 그들에게 설득당하 기 십상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서 자신 있게 세워 놓은 체계로 논쟁을 이끌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단과의 논쟁은 우리의 신 앙을 약화시키고 심지어는 이단의 무리에 동조하게도 만듭니다. 그 러므로 이단과의 논쟁은 피해야 합니다.

 말하기를 더디하십시오. 덕이 되지 않는 말, 자신을 드러내고 남 을 비난하고 반대하는 말, 극단적인 의견들은 삼가십시오. 말씀을 듣고 의문 사항을 질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잘 알아 듣지 못한 내용은 명확한 이해를 위해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야 합 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고의적으로, 신학적으로 수천 년 동안 논쟁이 되어 온 문제만 골라 목사에게 질문하고 논쟁을 유도합니 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짧은 지식으로는 하나님 말씀의 오묘함을 다 설명할 수 없 습니다. 어느 신학자의 해석만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 러므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거듭난 신앙인이고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말하기를 더디 하십시오.

 분노를 억제하라

19절 말씀을 한번 더 봅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성내기도 더디 하라.

분을 내지 말라, 화를 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잘 듣는 사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잘 안 듣는 사람, 자세히 들어 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사람, 말을 거칠게 하는 사람이 분을 잘 냅니다. 자기 말을 많이 하고 논쟁 을 일으키고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하여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 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불편하게 여 기고 화를 냅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까지 부추겨 말씀을 못마땅 하게 여겨 화나게 만들고 기분 나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짜 증나게 만들고 비판적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신 앙의 생활화를 기대할 수 없고 신앙의 성장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 말씀을 가지고 논쟁을 즐기는 사람과 분을 잘 내는 사람들은 성숙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분노를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 말씀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분을 낼 때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화를 내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화를 내도 되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인데, 바 로 악(惡)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분노가 만히 나타 납니다. 악에 대한 분노입니다. 우리도 악에 대해서는 분을 낼 수 있으나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에게도 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분노를 표현하게 될 때 그 원인이 어디 있는 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속이 상해서 화를 내는 것인지, 혈기 가 나서 화를 내는 것인지, 성질이 나빠서 화를 내는 것인지, 분풀이인지 한풀이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언급된 성령의 열 매를 맺습니다. 그 가운데 절제의 열매가 있어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화가 나도 참을 줄 알고 또 화를 내도 차분하게 목소리를 낮춰서 자기 감정을 억제하며 표현할 수 있습 니다. 아무리 악을 향하여 화를 낸다 할지라도 믿는 사람은 고함 을 지르기보다는 가능한 한 음성을 낮춰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잠언 15장 1절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怒)를 격동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말은 종결 어미의 소리가 하나만 생략되어도 문장의 뉘앙스가 확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해요는 약한 경칭의 말투인데 요를 빼면-해라는 명령 어투가 됩니다. 또 억양에 따라 서 문장의 의미가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말을 함부로 내뱉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품위 있고 부드러운 말을 사용함으로써 언어 생활에도 남다른 모습을 보여 주 어야겠습니다. 본인이 화를 내어도 안 되겠지만 남의 가슴을 뒤집 어 놓는 언사는 삼가야겠습니다.

 잠언 19장 19절 말씀은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 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죄의 대가를 치른다는 말입니다. 화를 많이 내면 화내는 사람이 가장 큰 손해입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인들은 신앙의 생활화를 위해 서 이 문제를 놓고 많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청결히 하라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들이려면 마음 속의 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이란 우리 마음에 있는 온갖 부정한 생각들, 예를 들면 미워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욕심, 짜증스러운 마음, 비판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제거되어야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여 마음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 마치 옥토와 같은 상태로 말씀을 들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 상태가 좋아야 찬 송을 불러도 기도를 해도 신앙 간증을 나누어도 은혜가 풍성하고 늘 감사할 조건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옥토와 같은 삶은 즐겁고,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음에 조 금이라도 악한 생각이 들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몰아냄으로써 우리 의 마음 밭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고 말씀대로 살며 성장하는 신앙인으로 생활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라

마지막으로 말씀을 들을 때 겸손한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道)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온유하다는 표현을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를 지칭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겸손하게 듣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성장하지 아니하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조금 공부를 했다 하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떠듭니다. 그는 교 만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신앙이 있다 해도 성장하지 못하고 신 앙의 생활화를 실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옥토와 같은 마음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21절에 마음에 심긴 도라 는 표현이 바로 말씀의 씨앗을 말합니다. 겸손히 받은 말씀만이 남아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고 깨 끗하게 해 주셔서 주의 말씀을 잘 경청하게 하시며, 이 말씀을 통해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 변화를 통하여 삶 자체가 신앙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십시오. 그러면 자연히 당신의 신앙이 성장하고 또 생활이 신앙화됩니다.

말씀 듣는 데는 속히 하고, 논쟁을 일삼는 삶을 지양하고, 마음 밭을 깨끗하게 갈아서 겸손하게 주의 말씀 들음으로 하나님의 크 신 은혜와 평강이 늘 당신의 삶 가운데서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