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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제생활과 신앙 (약 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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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신앙의 생활화를 위한 교과서입니다. 본문 말씀인 야고보 서 1장 9-11절에서는 경제 생활의 신앙화를 발견할 수 있 습니다. 본 문에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9절에는 낮은 형 제, 10절에는 부한 형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를 다르게 표 현하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 또 는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두 부류의 인생 이 있는데, 각각의 처 지에서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신앙적 으로 드러내는 가 하는 것이 본장의 주제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부자와 가난한 자

성경에는 부자들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 함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갈 대아 우르라는 지금의 이라크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갈 때부터 부자였습니 다. 그의 집에서 태어나 훈련받은 장정들만 해도 318명이었습니다(창 14:14). 그들의 가족까지 어림 한다면, 아브라함이 거느린 식구들은 족히 천 명은 되었을 것입니 다. 요즘에 직원 수가 천 명이나 되는 사업체 를 경영한다고 보면 아브라함의 경제 여건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부자였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도 마찬가 지입니 다. 요셉도, 다윗도, 솔로몬도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제일 큰 부자는 바로 욥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부자들이 여럿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 운데도 부유한 자들이 있었는데, 세리였던 마태가 그 중 한 사람 입니다. 그러나 그는 부정 축재로 돈을 모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정당하게 부자가 된 제자로는 요한과 야고보가 있습니다. 이 두 형제의 아 버지 세베대는 오늘날로 치면 어업 회사의 사장쯤 되 었을 것입니다. 그리 고 아마 그들은 아파트 두 채 정도는 소유할 만한 재력을 가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갈릴리와 예루살렘 에 각각 한 채씩 집이 있었는데, 예루살 렘에 있는 집은 보통 집 도 아니고 그때 당시로는 호화판인 2층 집이었습 니다. 즉, 다락 방이 있었습니다. 때때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곳에 모이곤 했습니 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루는 그 어머니가 나타나서 예수님, 그 동안 제가 예수님을 위해서 뒷 바라지한 것 아시죠 ? 이제 예수님이 왕위에 오를 때 오른쪽에는 누굴 앉혀야 될 것 같아요? 왼쪽에는요? 하면서 예수께 높은 자리를 청탁했던 것입니다(마 20:20,21 참조).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 가운데 츄저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츄저 는 헤롯 대왕의 재무장관으로 부자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문 둥병자 시몬 역 시 부자였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 도 부모는 없었지만 굉장한 재산을 소유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하루 모시는 동안 1년치 수입 에 해당하는 값 비싼 향료를 예수님 발에 부 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요 12:1-3 참조). 바울의 부모도 로마의 시 민권을 살 정 도로 부자였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부자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돈이 많은 것이 악 (惡)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근래에는 돈을 많이 벌면 어떤 나쁜 짓 을 해서 부자가 되었을까 하고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만, 하나님 자녀 중에 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 다. 성경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을 한 번 살펴봅시다.

누구나가 다 아는 가난뱅이로 거지 나사로가 있습니다. 나사로는 부자 집 문간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얻어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 는 헌데를 앓고 있 었고 거동을 하지도 못해 심지어 개들에게까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죽은 후의 삶은 완전히 역전된 형세로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가 하늘나 라에서도 부자는 아닌 것입니다(눅 16:19-31 참조).

복음의 위대한 사도 바울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로 마의 시 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 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적인 모든 부귀 영화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8 참조).

그리고 우리 예수님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처럼 가 난한 사 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마땅한 방이 없어 말 구유 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분의 육신의 부모도 목수 로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습 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게 되어 있었는데, 이때 드리는 희생제물로는 소나 양이나 염소 나 비둘기가 사용되었 습니다. 부자는 소나 양이나 염소를, 가난한 백성들 은 비둘기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 역시 가 난하여 아기 예수의 결례(潔禮)를 행하러 성전에 올라갈 때 비둘 기 한 쌍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세상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도 이를 인정 하고 있 습니다. 본문 말씀의 낮은 형제와 부한 형제가 바로 그 점을 예시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허다 합니다. 그러면 누가, 왜 낮은 사람 이 되고 부한 형제가 됩니까 ? 무엇 때문에 빈부의 차가 상존합니까? 이 문제는 인간의 머리 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라 고 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가난해지고 싶어서 가난해지는 사람 은 없 습니다. 또 부자가 되겠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 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인간이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가난이 반드 시 죄의 결과이고 부유한 것이 복받은 결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자 신의 잘못으로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 가항력으로 볼 수 있 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공화국』이라는 책을 보면, 한 국가가 정상적 으로 운영되려면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피력하고 있습 니다. 대표적인 네 부류의 사람을 들고 있는데, 첫째가 건강한 육체 노동자 이고, 둘째가 수완 좋은 사업가, 셋째 가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 넷째가 철 학하는 정치가라고 했습니다.

 낮은 형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름대로 적절한 처지와 형편에 처하게 해 주 셨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가 설령 가난하게 살지라도 어떻게 믿음으 로 살아야 하 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 음을 자랑하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은 높고 낮음을 외적인 형편 에 의존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는 가난하고 힘 없어 보이지 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 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 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다 해도, 권력이 없다 해도 비굴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외적인 형편으로 남과 비교하여 인생을 판단 하고,낙심하고,혹 은 교만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 까닭은 우리 그리스 도인들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이 산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 된 신자들은 모두 영원한 세 계를 기업으로 약속받았기 때문입니다.

거지 나사로를 보십시오. 부자의 잔치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얻어 먹고 살 았지만, 그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호의호 식하며 살던 그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했습 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보 내어 물 한 모금만, 아니 손가락에 물 을 찍어 혀로 적시게만 해 달라고 아 브라함에게 애원합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 부자는 세상에서 부 자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영원한 복락을 누 릴 수 없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참된 부자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역시 현재 자신에게 돈이 없고 세상의 명예와 지위가 없고 건강을 잃었다 할지라도, 저 하늘나라의 상급을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남에게 꿀 리지 않고 기쁨으로 열심히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물질적인 면에서 가진 것이 없으셨습니 다.목수의 아들이었다는 점만 보아도 그분의 형편을 상상 할 수 있을 것입 니다.그분이 세상 사람의 눈에 하찮은 유대인으로 보였을지 몰라도,하나님 보시기에는 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 는 자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 답게 당당하게 사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 님의 자녀로서 훌륭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비록 나귀 새끼를 타고 계셨지만 위풍 당당하셨습니다. 여느 왕들의 행차처럼 요란하고 호화 찬 란하지는 않았지 만 영광스럽게 행동하셨습니다. 이는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영적인 면을 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삶 의 모습이고 믿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해도 하나님 때문에 당당하게 사는 사람 들입니다.

어느 조사 기관에서 전세계의 유명 인사 10만 명의 출신 가정 형편을 조 사해 봤다고 합니다. 80%가 대단히 가난한 집에서 태 어난 사람들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10만 명의 위인 가운데 8만 명이 가난에 좌 절하지 않고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미국 중부 지방의 한 마을에 두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집안 태생으로 자태도 고왔다고 합 니다. 그래서 뭇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한 동네에 살던 두 총각이 용감하게 이 처녀들의 아버지를 찾아가 딸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보기 좋 게 거절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집안도 형편 없고 돈 도 없는 그들 에게 귀한 딸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총각 은 케이즈란 사람이고,또다른 총각은 가필드라는 사람이었는데,이들은 후에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두 자매가 대통령 부인이 될 뻔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대통령 장인이 될 뻔했습니다. 현재 가난하다고 그를 무시해서 는 안 됩니다. 당신이 깔보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어떤 인물이 될지 지금 은 알 수 없습니다. 장래 일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한다고 했는데, 그 자랑은 바 로 여호 와 하나님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와 하늘의 기업,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기업, 나의 기업 되신 하나님 그분 때문에 낮은 형제도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고 떳떳하게 살 수 있습 니다.

 부한 형제

성경에는 부자가 많이 등장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부자가 되는 방법 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쉬운 길은 부자집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일 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그런데 사실 부자집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어떤 이는 부모의 재산, 부모가 물려준 유 산 덕분에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가난한 집에서 태 어나서 어렵게 자랐지만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50대 이상은 거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제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 라.

이 말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부 자,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적인 지위와 부귀를 최 고로 여기지 않을 뿐더러 거기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을 아는 데 있습니 다. 돈이 많고 권세를 부릴 위치에 있으며 학식이 많아도 낮아져 서 겸손하게 사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낮은 자는 높이 살고 높은 자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가 부자이 고 권세가 있고 유능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지 정말 그 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지 잘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 돈이나 사회적 지위와 명 성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이것 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전직 장관 한 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장관직에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해임되니까 모두 발길을 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외적인 상황은 들의 풀과도 같습니다. 건강도 약해질 수 있고 부귀와 명예도 순식간에 잃을 수 있습니다. 그 래서 예수 믿는 사 람들은 부자가 됐다고, 건강하다고, 실력을 행 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고 절대로 교만하게 처신하지 않습니다 . 들풀과 같이 스러질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데 소망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부한 형제들은 남을 멸시하 지 않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습 니다.자신이 가진 이점(利點)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은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는 일시적 인 것임 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그리고 부귀와 명예가 우리 에게 주어진 한은 그것을 마땅히 잘 관리하고 이용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도 장차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손 익(損益)을 계산할 날이 올 것입니 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 므로 우리에게 재 산과 권력이 있을 때, 그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그런 것입니다. 믿 는 자들 은 없어도 비굴하지 않고 있어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낮은 형제는 영적인 은혜와 영적인 기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소망 하며 기쁘게 삽니다. 부 한 형제는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삽니다. 믿는 사람은 어떤 처지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누리고 못 누리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소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떳떳하고 멋있게, 주 안에서 소망을 품고 자신감 넘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분량대로 사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위탁받은 것은 위험물을 소유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잘 관리 하지 않고 낭비하거나 유혹에 넘어가 엉뚱한 데 사용하면, 하나님 앞에서 모진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이웃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우리의 가진 것을 투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만해질 이유도 없고 낙망할 까닭도 없습니다. 그저 주께 칭찬받 을 수 있도록,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하늘나라를 기업 으로 삼고 만족 스럽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경제 생활 속에서의 신앙의 생활화 입니다. 당신이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간에, 믿음 안에서 신앙적인 삶과 신 앙적인 태도로 주께서 허락하신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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