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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를 극복한 히스기야 왕 (왕하 19: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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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에서 이스라엘의 위치는 북쪽국가들과 만쪽 국가 들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중요한 역활을 하는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결코 평온한 나라는 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 북조 시대 즉 분열왕국시대에 남쪽 유다왕 히스기야 즉위 14년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의 여러 견고한 성읍을 쳐서 취하고 다시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를 치기 위하여 성을 에워싸고는 온갖 조롱과 유혹과 위협의 말로 유다 백성들을 괴럽혔습니다.
그러면 당시 유다왕 히스기야가 당한 위기는 어떤 것이였으며 그 결과는 어떻했는지에 대하여 상고함으로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유다왕 히스기야가 당한 위기가무었입니까
히스기야왕은 전왕이 행하던 친 앗수르 정책을 폐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블레셋까지 쳐서 그 힘이 사방에 알려지게 되자 북 이스라엘을 단숨에 점령한 앗수르는 18만 5천명 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이제는 수도 예루살렘성까지 포위하고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편지까지 써서 히스기야왕에게 보내어 백성을 우롱하며 히스기야왕을 격분케 했습니다.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시 37편 3절 라고 역부족의 현실을 고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중신들의 부정부패에 가세해서 당시 국고를 맡았던 서기관 ‘ 셉나 ’ 는 이를 기회로 물질에 연연하여 자국의 당면한 위기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강대국의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도 왕과 같이 잘 살아 보려는 계획만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직의 권좌를 사리사욕에 남용했으며 그 결과 간신 ‘ 셉나 ’ 는 그 좋은 권좌를 ‘ 힐기야 ’ 의 아들 ‘ 엘리야김 ’ 에게 빼앗기고 외국으로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 왕 ‘ 산헤립 ’ 은 장군 ‘ 랍사게 ’ 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모욕했습니다.
유다가 친 애굽정책을 펴는 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를 의지함과 같으며 여호와만을 섬기고 그를 의뢰 한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일이고 앗수르의 유다 침략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산앙의 혼선을 빗게 할 뿐더러 지도자에 대하여 불신을 자아내게 하는 그들의 속임수요 계략이었습니다.
즉 앗수르 왕 에게 항복하면 잘 살 수 있고 열국의 신들이 앗수르보다 힘이 없어서 망했듯이 히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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