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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찬양합시다 (엡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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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화답하며라는 말씀의 의미는 서로 찬양으로 교제합시다입니 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었던 닉슨의 보좌관이었고 지금은 『거듭남』이라 는 책을 써서 죄수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찰스 콜슨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 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과 1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을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나눈 교제, 즉 『코이노니아』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모여서 정치 애기 조금 하고, 날씨 애기 조금하고, 옆집 사는 아무개 애기에 아쉬운 애기 몇 가지 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고작입니다.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종류의 아주 유치하고 원시 적인, 주님의 기대와 영 동떨어진 교제를 성도의 교제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도 모릅니다.

사도행전 2 장 44-47 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살펴보면 그들은 날마다 모여서 함께 떡을 떼었습니다. 교제 가운데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먹지 아니하는 교제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함께 먹는 것이 교제 의 중요한 방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떡을 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진 지하게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것, 이것이 우 리가 아직도 배우지 못한 교제의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교제 방 법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찬양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쓸데없이 수다 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는 가운데 진정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말씀 속에서 찬양의 비결을 알아봅시다.

누가 찬양할 수 있는가 누가 찬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 다음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 로 서로 화답하는 것은 성령 충만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 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찬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5 장에서 성령 충만을 강조하기 전에 1 장부터 계속 강조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진정한 구속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구원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찬양할 자격은 목 소리 좋고 노래 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말 주님의 구원 의 은혜를 체험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야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찬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 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속박에서 풀 림을 받고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얻은 뒤, 하나님의 인도로 광 야를 나와 홍해를 건넘으로써 결정적으로 애굽 군대를 따돌리고 참 자유인 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뒤에 출애굽기 15 장에 기록된 감격적인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 바로의 압제, 그 사슬에서 해방된 것도 중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구속의 사건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인지 요! 이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이 있습니다. 바로 찬양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찬양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새로운 노래, 이것이 찬양 입니다. 이 찬양은 한 평생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계속됩니다.

저는 제일 부러운 것이 찬양 잘하는 사람입니다. 목소리가 좋아서 노래 잘 하는 성악가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 이 제일 부럽습니다. 저는 천국에 가면 실직자가 됩니다. 천국에 가면 설교 들을 사람이 없을 것 아닙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국에 가서 설교할 일 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제가 감히 예수님 악에서 설교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미 구원 받은 자들만 있는 곳인데, 막말로 공자 악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되지 않겠습 니까 그러나 주님 악에서 영원히 할 일이 있습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천국에서 계속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14 장 3 절을 봅시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악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 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저는 구속함을 얻은 사람이 반드시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 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구약 시대의 열두 지파와 신약 시대의 예수님 제자 열둘, 이 두 가지 숫자를 곱하여 나온 수가 144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들은 많다는 표현을 쓸 때 천이라는 숫자를 자주 사용합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는 구절도 그 수가 많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악에서 나온 144 에 1,000 을 곱하면 144,000 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 들, 신구약 시대를 통틀어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서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우리는 새 노래, 구원의 노래를 천국 보좌 악에서 부를 것입니 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지배를 상실하면 제일 먼 저 찬양이 멈춥니다. 마음속에서 찬양이 우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뭔가 잘못된 징조입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나서 참회의 시를 읊습니다. 다윗의 유명한 참회의 시는 시편 51 편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참회하면서 주님 악에 자신 의 범죄를 고백하는 노래입니다. 12 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 드소서.

성도들이 범죄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 잃 어버리는 것은 구원의 즐거움입니다.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지만 구원받은 기쁨, 구원받은 감격,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사가 없어집니다. 그 래서 다윗은 주께 이 즐거움을 거두어 가지 마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 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14,15 절).

다윗은 구원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는 기도 후에 자신의 입술로 주님을 다시 한번 찬양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는 입술로 주를 찬송하며 주 님을 전파하겠다고 하며, 다시 찬송 부르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어 보면, 주인공 기독도가 어려움에 빠질 때마 다 제일 먼저 겪는 고초가 찬양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가 하나 님의 도우심으로 그 어려운 궁지에서 빠져 나오면 제일 먼저 찬양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뭘 잃어버립니까 찬양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을 반대 로 말하면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상태다라고 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신 마음에서 얼마나 찬양이 우러나는지 이 시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찬양할 수 있는가 어떻게 찬양할 수 있는가는 찬양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입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엡 5:19)에서 시와 찬미 와 신령한 노래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신학자들이 많은 고민을 합 니다. 이 표현이 서로 다른 내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강조하기 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학자인 F. F. 브루스는 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설명이 매우 타당한 것 같아 이 책에 소개합니 다.

 첫째 / 시 브루스는 시의 초점은 감사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내용을 실은 것이 시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95 편 2 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악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성경이 말하는 시, 시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가 시로 표 현되는 것입니다.

 둘째 / 찬미 브루스는 찬미의 본질은 고백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혹은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찬미입니다. 하나님은 멋지십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하나 님은 사랑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와 같은 고백이 모 두 찬미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이런 찬미가 나옵니다. 우리 개역 한글성 경에서는 찬미의 분위기가 덜 느껴지지만 원문으로 읽으면 형식에서부터 눈 에 뛰는 것이 찬미입니다.

찬미의 형식으로 된 말씀을 한 구절 찾아보면 빌립보서 2 장 6 절이 그 한 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 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이 부분은 본래 시 형식으로, 찬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 신지를 설명하고 있는 찬미입니다.

골로새서 1 장 15-20 절 역시 찬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예수님)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 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 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 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 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 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 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말씀도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고백한 찬미입니다.

디모데전서 3 장 16 절도 읽어 보십시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 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 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 라.

이 구절도 찬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고백한 내 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 신령한 노래 브루스의 말에 따르면 신령한 노래의 본질은 간증입니다. 간증은 하나 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와 찬 미와 신령한 노래로, 다시 말하면 감사함으로, 주님의 성호를 높이는 고백 으로, 주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대한 놀라운 간증으로 찬양해야겠습니 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된 찬양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묵상에서 비롯된다.

어떤 묵상입니까 주님의 은혜가 감사한 것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찬양을 하기 위해서는 감사한 일, 고백할 일, 간증할 일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 야 진정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찬양은 찬송가를 보고 목청을 돋 궈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묵상에서 나옵니다.

무엇으로 찬양할 수 있는가

우리가 찬양의 도구로 쓸 수 있는 것 네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 말 본문 말씀에서 서로 화답하며는 영어 성경에 speaking to one another로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찬양은 말로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한 사람이 저는 지난 한 주간 주님이 저를 도와주신 일이 너무 감사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화 답을 합니다.

『저도 지난 주에 속 상한 일들이 있었는데 주님이 제게 평안을 주셔서 참 감사해요.』 이것은 감사함으로, 즉 시로 찬양한 것입니다.

고백의 찬양도 말로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예수님은 저에게 너무나 멋진 분이셨어요.

『예수님은 지난 주에 제게 사랑을 주셨어요.』 화답하며 예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간증의 찬양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사업상 큰일이 있었는데 주님이 도우셔서 일을 잘 마무리 지었 습니다.

『그러세요. 저도 주께서 함께하셔서 지난 한 주 별 탈 없이 지냈습니다.』 찬양은 여러 사람이 화답하며 대화로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곡조를 붙이 지 않고 가사를 낭독하기만 해도 찬양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는 말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둘째 / 마음 본문을 다시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 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엡 5:19)고 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 더라도 마음속으로 감사함이나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시 편 기자는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악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14)라고 썼습니다.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셋째 / 입술 본문 말씀에 주께 노래하며라고 한 것은 곡조 있는 노래를 한다는 뜻입 니다. 말과 마음으로, 그리고 입을 벌려 노래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 쉽게 생각하는 찬양이 이것입니다.

 넷째 / 악기 본문 마지막에 찬송하며는 영어로 making melody로서 헬라어에서는 악기를 동반한 찬송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목소리 뿐만 아니라 악기를 사용하여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 마음으로, 입술을 열어 노래로, 악기와 함께 주를 찬양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독일의 한 그리스도인 소녀 가 설암(舌癌)에 걸려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찬양 하고 싶어요하며 찬송가 405 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과 411 장 。예 수 사랑하심은。을 불렀습니다.

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해 불구자가 된 조니 에릭슨을 아십니까 그녀의 간증을 들어 보면 그녀도 사고 직후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많았습니 다. 그러다가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면서 특별히 찬양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자기가 출연한 광고 에 반드시 PTL(Praise the Lord, 주님을 찬양합니다)이라는 문구를 집 어넣습니다. 전신 마비인 이 자매의 입술을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주님을 찬양하게 만드신 그 놀라운 은혜가 당신에게도 함께하기를 바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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