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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믿음을 계승하라 (딛 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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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는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바울 사도의 목회 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감당할 것인가 를, 즉 목회 사역의 본질을 자신의 믿음의 아들이요 그레데 섬의 영적 지도 자로 세운 디도라는 제자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1장을 통해 사역의 기초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사역)의 출발점은 바른 교훈입니다. 사역은 올바른 교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장에 서 제일 중요한 단어 하나를 고른다면 그것은 바른 교훈입니다. 1장 9 절을 보십시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 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바른 교훈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언제 나 첫번째로 바른 교훈을 강조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도 디도서와 마찬가지로 목회서신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0 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 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 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10,11절).

 디모데전서 1장에서도 바울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들에게 바른 교훈을 취하도록 강조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한 바른 교훈을 말입니다.

 바울의 목회서신의 핵심 단어인 바른 교훈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언급 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는 다른 교훈입니다. 바울은 다른 교훈을 좇 지 아니하고 바른 교훈을 분별하여 복음에 기초한 바른 교리를 믿고 거기에 우리의 믿음을 세우는 것이 사역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디모 데전서 1장에도 바른 교훈과 함께 다른 교훈이라는 단어가 등장합 니다. 1장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 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이제 디도서 2장에서는 바른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치 고 있습니다. 바른 교리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교리(교 훈)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올바른 교리는 올바른 삶을 낳아야 하 기에 바울 사도는 바른 교훈에 이어서 바른 생활, 혹은 바른 실천을 강조했 던 것입니다.

 바울의 모든 서신은 예외 없이 첫머리 혹은 전반부에 올바른 교리를 제시 하고 그 다음에, 이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올바른 삶을 강 조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사용한 가르침의 한 방식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디도서 2장에 바른 실천에 대한 강조가 나오는 것입니다. 2장 1절 을 보십시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여기에서 말하여라는 단어는 가르치며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됩니 다. 그리고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이란 2절 이하에 언급된 삶입니다. 즉, 바른 교훈에 기초한 바른 삶이 바로 바른 교훈에 합한 것입니다. 올바 른 교훈과 일치하며 조화되는 올바른 삶을 가르치라는 것이 2장 1절의 메시 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바른 생활의 목표와 그런 생활에 도달하는 방법, 그리고 바른 생활의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른 생활의 목표

당신은 올바른 교리를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진리에 근거해서 가져 야 할 바른 생활의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말해 왜 우리가 바른 생활을 해 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른 생활의 목표는 소극적인 목표와 적극적인 목표로 다시 나뉘어집니다.

  소극적인 목표

첫째/하나님의 말씀이 훼방받지 않게 함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 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5절).

 여기에 소극적인 목표가 나옵니다. 왜 우리가 올바른 삶을 영위해야 하는 가 그것은 주(主)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올바른 말씀을 믿고 올바른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생활이 엉망일 때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만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 고 있는 보배로운 진리와 말씀의 가치까지도 격하시켜 버리고 맙니다. 이렇 게 말씀이 훼방받지 않고 진리의 내용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 리를 지키는 삶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당신과 저의 그 합당하지 못한 삶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고 있 는 것은 아닌지요 내가 때때로 이웃들과 나누며 전하는 말씀이 나의 그릇 되고 부족한 삶 때문에 그 권위와 영광이 훼방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스 스로에게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둘째/성도로서의 인격이 불신받지 않게 함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 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8절)

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마귀가 우리를 가리켜서 악하다고 정죄 할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이 손가락질을 받게 되면 성도로서의 우리들의 인격도 불신받고 거절당하게 됩니다.

 그릇된 생활은 우리가 가진 말씀을 훼방하고, 말씀의 영광을 훼손하고 또 한 우리를 성도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 합니다. 그래서 소극적인 의미에서 바른 생활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들의 말 씀과 인격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부정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말씀이 훼 방받지 않고 성도의 인격이 불신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바른 실천이 요 구된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목표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떼어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 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무엇이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합니까 바로 우리들의 올바른 삶입니다.

 여기에서 빛나게 한다는 단어가 아주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본래 빛 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스메오』입니다. 여기에서 단장하다, 화장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cosmetic이 나왔습니다. 즉, 빛나게 한다 는 말의 본래 뜻은 단장하다, 화려하게 하다, 아름답게 하다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코스메오』는 cosmos라는 단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우주라는 뜻인데 그냥 우주가 아닌 질서 있고 조화된 아름다운 우주를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얼마나 질서 있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빛나게 한다를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동일한 단어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를 한번 살 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 베드로전서 3장에는, 믿지 않는 남편들과 더불어 사는 아내들에게 주는 교훈이 기록되 어 있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 (道)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 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1절).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야 내 생활의 실상을 모르니까 내가 하는 말만 가지 고 나를 판단할지 모르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을 말로 설득하기 어 려워집니다. 대신 바른 생활이 요구됩니다. 나의 삶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 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2,3절).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진정한 장식은, 걸고 달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권고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4절).

 아름답고 온전한 심령을 소유한다는 인격적인 장식이야말로 그리스도인 아 내들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단장입니다. 여기에서 쓰인 단장이라는 말 은 빛나다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빛나다는 그냥 반짝반짝 빛난다는 말이 아니라 아름답게 한다, 장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생활은 하나님의 교훈을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합 니다. 즉, 우리의 실천이 바른 교훈의 진정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더 장식하 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생활을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는, 우리의 삶 으로 나타나는 것을 통해 주님의 교훈을 교훈되게 하며 이 진리가 진리로서 증거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바른 생활로 이끄는 방법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바른 생활로 인도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말로써 가르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모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바른 삶을 사는 이웃들이 있을 때, 그들을 보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첫째/말로써 가르침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여기 마지막 부분에 있는 동사를 주목해서 보십시오. 말하라는 단어는 원문에서는 가르치라로 되어 있습니다.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가르치라.

무엇을 가르치라는 것입니까 여기에서는 교리를 가르치라는 말이 아닙니 다. 바른 교리에 합당한 생활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교 리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기독교 윤리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기초한 삶 을 다루는 것을 대개 윤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교리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윤리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사실 이 질문 자체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둘 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를 문제 삼는다면 교리를 먼 저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리가 삶의 방향을 설정하기 때문입니 다. 무엇을 믿느냐에 의해서 행동 방향이 결정됩니다.

 영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만이 모든 것이라고 믿는 유물론자들은 자연히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물질만으 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불멸의 영혼을 가졌다고 믿는다면 유물론자들도 영적인 가치를 추구할 것입니다. 결국 교리나 사상이 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가 먼저 강조되어야 합니 다.

 오늘 이 시대는 교리를 별로 강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윤리를 강조하다 보면 교리를 망각할 수가 있습니다. 반면 교리에만 너무 집착하면 그 교리에 근거해서 살아야 할 삶을 등한시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교리와 윤리를 균형 있게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한쪽으로 치우치기가 쉬워서 균형을 잃을 가능성이 참으로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른 교훈에 입각한 바른 생활을 가르치라.

 저는 최근에, 그 동안에 제 가르침을 분석하면서 교리에 치중하지 않았는 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리 못지않게 앞으로는 좀더 이 기독교 윤리 면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면서도 이 사회를 변혁시키지 못하는 원인 중 에 하나는 기독교 교리에 상응하는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실제적인 삶의 장(場)에서 그리스도인들로서 정당하게 실천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돈, 인 간 관계, 이런 모든 문제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바로 이러한 것을 입술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을 바른 생활 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그 목표에 도 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른 생활에 도달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을 강조합니다.

 둘째/모본을 세움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 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7절).

즉, 네가 바른 것을 가르칠 뿐 아니라 네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바른 생활에 도달하도록 몸소 선한 일을 실천하여 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 것은 특별히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디도를 향한 바울 사도의 적절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대할 때마다 제가 너무나 생활에서 본이 되지 못하고 있 다는 사실 때문에, 늘 자격지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앞섭니다. 특히 전도사 로 있었던 목회 초기에는 이런 문제 때문에 내가 앞으로 목회를 계속할 것 인가 말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내 행동이 정말 사람들 앞에 완전 한 귀감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끝에 존경할 만한 목사님 한 분을 찾아가 서 그 분에게 제 마음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모본이 되는 행동이나 모본이 될 만한 삶을 추구할 자신이 없는데 이 길을 계속 가야 합니까

그때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자네에게 완전한 본을 보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본 을 보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네. 아무도 완전할 수는 없지. 그러나 자네가 계 속 자라가고 있고 성숙해 가고 있다는 본을 보일 수만 있다면 되네. 그렇다 면 자네를 따르는 사람들도 자네처럼 자라갈 수가 있을 것이야.』 그렇지, 나는 다른 사람들에 흠잡히지 않을 완전함에는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숙의 노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분의 말씀은 제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성경도 인간은 그 누구도 이 땅에서 완전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한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소망을 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때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내가 성숙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당신들 도 성숙해지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나도 귀감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바울도 디모데에게 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젊은 사역자 들이 귀감으로 삼고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4:12).

다른 믿는 사람들 앞에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한 다고 했습니까 곧,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15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우리는 저마다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추구해야 하며 또한 사역에 대 한 소원을 품을 필요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완전에 도달 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에게 진보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 니다. 따라서 사역자들은 성도들에게 어제보다도 나아진 오늘의 삶의 모습 을 가지고 여러분, 이 정도는 성숙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도전을 줄 수 있는 것이며 또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진 분량만큼의 삶을 보여 주며 여러분, 제가 성숙을 위해서 몸부림을 칩니다. 그리고 이만큼 진보할 수 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당신들도 이렇게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이 모본이라는 단어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이 어떤 완전한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나의 본을 본 받으십시오라고 말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 서 11장 1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만약 이 말씀에서 전반부를 빼어 버리고 후반부만 인용한다면 너희는 나 를 본받는 자가 되라가 됩니다. 당신은 이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 렇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용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반부까지 붙여 놓으 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내 생활이 완전하며 흠잡힐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 이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완전한 본이 되 십니다. 그렇기에 제가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그 모본을 본받 아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가 자녀들을 바른 교훈으로 가르친다고 해도 비뚤어지기가 쉽습 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쁜 교훈을 가르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른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구하고 자녀들이 바른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부모가 바른 모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보다는 행동에 더 크게 주목합니다.

올바른 교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모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 모가 아무리 진실과 정직을 가르쳐도 그렇게 살지 못하면 자녀가 부모의 그 러한 모습을 한 번 보는 것으로, 가르친 교훈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모본이 필요합니다. 한 교회의 성 숙의 정도는 결국 그 교회 안에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드러나게 되면 그들을 본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반면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성숙한 신 자들이 없어서 교인들이 성숙에 대한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 교회 전체의 영적인 수준이나 성화(聖化)의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 에서,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일수록 연약한 교인들이나 신앙 생활을 갓 시작 한 사람들에게 성숙의 모본이 되어야 할 엄숙한 책임을 지게 된다고 봅니 다.

 바른 생활의 내용

바른 생활이란 어떤 생활을 말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바른 생활 의 내용을 다섯 부류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그레데 섬의 모든 성도들을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젊은 남자 그리고 종으로 나누 어 각기 추구해야 할 삶의 내용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늙은 남자에 대한 교훈(2절)

첫째/절제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절제란 정서적인 면에서의 절제를 말합니다. 늙어 서 제일 추한 모습은 정서적으로 자기를 다스리지 못할 때의 모습이라고 생 각됩니다.

 둘째/경건 바울은 지금 진지한 삶의 태도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존경이라는 의미에서 경건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숱한 실패를 거듭한 사람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삶에 대해서 아주 시큰둥해지며 인생 자체를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냉소적 인간이 됩니다. 삶에 대해서 진지하지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습니다.

 셋째/근신 근신은 절제라는 단어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절제라는 말이 좀더 정 서적인 면에서의 자기 통제를 의미하는 반면 근신은 욕망을 통제하여,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넷째/믿음과 사랑과 인내에서의 온전함 흔히 믿음과 사랑 다음에 나오는 단어는 소망인데 여기에서는 그 대신에 인 내라는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사실 소망과 인내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章)은 소망이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각이자 동시에 그 소망 을 향해서 인내해야 할 시각입니다. 젊었을 때에도 믿음과 소망과 인내로 살아야 합니다만 늙었을 때에 이 세 가지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제 그것 이 완성될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늙은 여자에 대한 교훈(3절)

첫째/거룩한 행실 이것은 특별히 언행 일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책임질 수 있는 삶이야말로 거룩한 행실의 삶인 것입니다.

 둘째/참소하지 아니함 이것은 말로 실수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헐뜯거나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일 이 없도록 언어 생활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셋째/술의 종이 되지 아니함 여자들을 향한 권면에 왜 술의 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 시의 문화적 배경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편지를 쓰던 주후 1세기는 지중해권 사람들에게, 특별히 여자들에게 해방의 기운이 처음으로 일어났던 때였습니다. 그 전에 여성들은 참으로 압박당하며 부자유했습니다. 자유로 워지면서 여성들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음주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책없이 퍼마셔서 아예 술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술의 종이 되어서는 후손들에게 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넷째/젊은 여자들을 교훈함 이 말은 교회에서 늙은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르치는 일만을 해야 된다 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사역도 할 수 있지만 특별히 늙은 여자들이 그 들의 경험을 가지고 가장 유용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은 젊은 여자들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성으로서 같은 길을 걸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젊은 여성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기 위해서는 우선 거룩한 행실과 참소 치 아니함과 술을 가까이하지 않음을 통해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 여자에 대한 교훈(4,5절)

첫째/남편과 자녀를 사랑해야 함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엡 5:25)에서의 사랑은 『아가페』 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부분에 속한 것입 니다. 바울 사도는 특별히 남편들에게 의무감에 근거하여 의지적으로 아내 를 사랑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반면 본문에서 젊은 여자들에게 당부한 사랑은 『필레오(필로스)』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젊은 여자들에게 자녀를 향해서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함을 권면하려는 의도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 필레오』는 좀더 정서적인 면이 강한 사랑이며 또한 표현되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 으며 그 사랑 안에서 자녀들을 잘 키울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면 에서 무딘 여자일수록 자녀들을 효과적으로 키울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은 사랑을 단순히 언어로만 배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도 사랑을 배웁니다.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기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둘째/근신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욕망의 통제를 말합니다. 이 근신 없이 거룩한 삶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셋째/순전함 순전함은 근신의 결과로서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입니다. 순전함에 가장 근사치인 단어를 찾는다면 integrity입니다.

 넷째/집안 일을 함 이것은 여자들은 항상 집안 일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젊은 여자들 에게는 가정에 대한 책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들은 한창 힘이 넘치는 젊은 시절에, 자녀들을 기르고 남편을 돕는 가정일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늙었을 때 사역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칠 수 있게 됩니다.

 다섯째/선해야 함 이것은 친절한 행동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즉, 대인 관계에서의 덕스러운 삶의 태도를 뜻합니다.

 여섯째/남편에게 복종함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主)라 칭하며 복종한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벧전 3:6 참조). 복종은 여인의 아름다운 단장입니다.

  젊은 남자에 대한 교훈(6절)

첫째/근신 근신이 또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도인의 덕 가운데 자기를 통 제할 줄 아는 것을 가장 여러 번 강조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근신은 성 결의 기초적인 덕목입니다.

 둘째/경건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7절).

여기서의 너는 디도를 말합니다. 그가 젊은 남자들에게 본을 보여서 그 들이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라 는 것입니다.

여기에 쓰인 경건이라는 단어도 늙은 남자에게 강조했던 경건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하지만 적용되는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늙은 남자에게 경건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이 일생 동안 실패를 너무 많이 겪는 경우 늙어서 냉소적이 되기 쉬우며 그렇게 되면 삶에 대한 진지성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젊은 남자들에게 경건이 요구되는 것은 사람 이 너무 자신만만하다 보면 인생에 대한 진지성을 상실하기가 쉽기 때문입 니다. 실패만 했다는 열등감도 인생에 대한 진지성을 상실하게 만들지만 반 대로 지나친 자기 과시도 우리를 함부로 날뛰게 하여 인생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셋째/책망할 것이 없는 언어 생활 언어 생활에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언어는 우리들의 거룩한 행동의 장에 서 일차적인 시험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종들에 대한 교훈(9,10절)

바울은 그 당시 사회에서 혜택받지 못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던 이들에게도 순종과 올바른 언어 생활, 깨끗한 삶, 그리고 충성을 요구했습니다.

 복음에 기초한 올바른 진리를 받아들였다면 이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가 장 중요한 삶의 과제는 바른 생활의 추구입니다. 바른 생활을 추구할 때 기 억해야 할 첫번째 사항은 바른 생활의 목표입니다. 소극적인 목표는 말씀이 훼방받지 않고 우리의 인격이 불신받지 않는 데 있으며 적극적인 목표는 주 님의 교훈을 빛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바른 생활에 도달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야 바른 생활을 할 수 가 있습니다. 우선은 바른 생활이 어떤 것인지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그와 아울러 바른 가르침대로 사는 모본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른 생활의 구체적인 내용인 본문의 덕목들을 기억하고 특별히 나에게 가 장 부족한 부분들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저와 당신이 될 수 있기 를 바랍니다.

하나님, 저에게 영광스러운 복음을 들려주셔서 진리의 소유자가 되게 하 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 바른 교훈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로서 바른 삶을 살아가며 그러한 바른 삶에 성숙과 진보가 있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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