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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을 향한 나그네 (벧전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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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라고 하면, 왠지 가련하고 측은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한국어 사전에 보니까, 집을 떠나 여행 중에 있거나 객지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떠나 온 곳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른 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나그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나그네 인생의 특징은 낡아지고, 떨어지고,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애써 얻은 재물도, 권세도, 명예도 다 하나같이 세월이 가면 낡아지고, 떨어지고,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이 허망함을 막을 주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자신조차도 머리와 몸이 낡아지고, 정신력과 기력이 떨어지고, 결국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허망한 나그네길을 가는 인간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천국을 향한 나그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당시의 로마 제국의 판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는 교인들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나그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나, 허망한 나그네 인생들과는 다른 나그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말씀을 따라 영원한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역시 낡아지고, 떨어지고, 없어지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새 생명은 날마다 새롭게 성장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에게도 죽음이 찾아오지만, 그 때에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소망을 가진 우리는 썩어 없어질 세상 것들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사랑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며 사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골로새서 3:2-3에 보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놀라운 기쁨, 이 엄청난 영광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보건성에서 한 젊고 아름다운 보건원을 아프리카 오지로 파견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무지와 질병에 시달리는 원주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을에 영리하게 생긴, 촌장의 아들이 소아마비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자리에 누워서 살고 있었습니다. 늘 안타까워하던 보건원은, 궁리 끝에 본국 정부에 호소하였고, 결국 여러 기관의 협조로 수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하였고, 그 소년도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한 끝에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 15년의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한 사교 모임에서 보건원은 소년을 수술해 주었던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의사는 그때 수술 받은 소년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그때 수술 받은 소년은 지금쯤 훌륭한 젊은이가 되었겠군요” 대답이 없자 재차 “결혼을 했습니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난처해 하던 보건원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매우 유감입니다만 그 젊은이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아니, 왜요” 하고 놀라는 의사에게 이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그 소년에게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도움을 주었지만, 그러나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친척이나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그들로 하여금 천국을 향해 걷는 나그네 인생을 살게 하시기 바랍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허망한 나그네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나그네길을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영원한 의미를 남겨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천국을 향한 나그네의 특징

천국을 향한 나그네로 비유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하나님 아버지의 택하심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우리를 양자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고대의 양자 결연 의식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동전과 저울을 사용한 상징적인 매매 행위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아들의 친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한 번 팔았다가 다시 사고, 두 번째 팔았다가 또다시 삽니다. 그리고 세 번째 팔고는 다시 되사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에 양아버지가 로마의 행정 장관인 집정관에게 가서 양자 결연의 건을 신청함으로써 성립되었습니다. 일단 양자가 되면, 그의 과거의 모든 빚과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새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미래의 모든 면에서도 그는 다른 아들과 똑같은 근거를 갖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제는 과거의 모든 불신앙의 생활이 다 무효가 되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만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시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생활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을 향한 나그네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미리 아심”(프로그노신, π-ργνωσιν)에 의한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예지’ 그 이상의 뜻인 영원한 계획과 결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자녀로 삼을 계획을 미리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목적은, 우리로 성령님의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순종케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는다는 것은, 죄악의 더러움에서 깨끗해진다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도록 성별 된다는 것과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짧은 한 절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구원 계획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 속죄의 제물이 되셨으며, 성령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자 하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시는 동시에 거룩하게 변화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공자님과 석가님과 예수님이 함께 소풍을 가는데, 한 젊은이가 연못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본 공자님은, “군자는 대로 행인데 어찌하여 바른길로 가지 않다가 못에 빠져 고생하는고” 하고 책망하며 지나갔고;석가님은 “허허,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물에 빠져 고생하는고” 하고 탄식하며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윗옷을 벗으시더니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 젊은이를 건져냈다고 합니다.

4. 천국을 향한 나그네를 위한 축도

베드로는 허망한 나그네들에게서 박해와 핍박을 당하는 천국행 나그네들인 교인들을 위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축도해 주고 있습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인간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 중 은혜란 죄 사함입니다. 따라서, 구속의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 또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가 곧 평강입니다.

5. 맺음말

모든 사람은 다 낡아지고, 떨어지고, 없어지는바 허망한 나그네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힘입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을 향한 나그네길에 승리하시고 성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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