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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귀한 고난의 본인 대속의 주 (벧전 03: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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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예배 때,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고난을 당하게 마련인데, 그러한 고난이란 곧 하나님의 뜻이요 복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그러한 고난을 이기게 하시고, 핍박자들을 이기게 하시고, 더 나아가 영생의 소망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이제는 그와 같이 고귀한 고난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본이 되신, 대속하신 주님께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대속하신 그리스도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은 하팍스(παξ)로서, ‘단 한 번’, ‘결정적인 한 번’이라는 뜻이고;‘죄를 위하여’(페리 하마르티온, περ μαρτιν:‘죄에 대하여’)는 속죄제를 표현하는 통례적인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의 취지는,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결정적인 단 한 번의 죽음으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해 완전히 청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단 한 번의 속죄의 죽음은, 유대교의 레위적 희생 제사와 전적으로 대조되는 것입니다.
레위기의 속죄법에 의하면, 죄인은 소와 양 등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침으로써 사함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속죄 제물은 죄를 범했을 때마다 바쳐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의 죽으심으로 죄 아래 있는 인류를 위한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율법이 규정하는 제사법 아래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7:27에 보면,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당하신 고난과 죽으심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인도하려’는 프로사가게(προσαγγ)로서, 유대와 헬라의 배경을 가진 말입니다.
출애굽기 29:4에는, 모세가 제사장이 될 아론과 그 아들들을 하나님께 데리고 오는 것에 사용되었고;레위기 3:12에는, 제물을 하나님 앞에 끌고 오는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고귀한 고난의 본인 대속의 주
단절된 모든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되어 주셨으므로, 그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헬라의 왕궁에는 프로사고게우스(Prosagogeus), 즉 ‘안내자’, ‘면회 허용자’라는 관직이 있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왕 앞에 가까이 가도 좋은 사람과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사람을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소위 접견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대속을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며, 하나님께 접근시키며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의 용례를 들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로 말미암아 은혜에 들어감을 얻는다고 하며(롬 5:2), 또 그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는다고 하며(엡 2:18), 또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엡 3:12). 하나님께 나아감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이요 문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끝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즉, 인성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성령으로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3. 노아 시대에도 전파하신 그리스도의 영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해 베드로는,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과 다음 구절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므로, 고래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매우 다양합니다. 저도 이 한 구절을 주석하는 데 4일이나 걸렸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강해할 때에 하기로 하고, 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베드로의 취지는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성령으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는, 또한 노아 시대에도 성령으로 노아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도하셨는데, 순종하여 믿고 구원받는 사람은 노아의 가족 여덟 명뿐이고 나머지는 지금 지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베드로는,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노아를, 하나님께서 영원한 계약들을 맺으셨던 의인의 본보기와 새로운 인류의 시조로 기꺼이 인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에서도 노아는 하나님께서 사악한 세상을 멸망시키셨을 때, 보존하신 의의 선지자이었습니다. 그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에 유심하여 자기의 가족을 구원받게 하였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한 전형이요 표본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거나 무시하고, 노아를 통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하지 않다가 멸망하여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노아 때에 순종치 않던 자들을 멸망시킨 방편인 대홍수는, 순종하여 방주에 탄 노아 내외와 아들들인 셈, 함, 야벳과 그들의 아내들에게는 구원의 방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18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이야기를 할 때면,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노아의 부탁을 받고 방주를 만드느라 수없이 방주 안팎을 드나들고 넘나들면서, “홍수는 무슨 홍수야. 날씨만 좋은데…암만해도 노인네가 노망이 난 게야.” 하면서 비아냥거리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방주가 완성되기 전부터 수없이 방주를 탔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방주를 타지 않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4. 물로 상징된 세례

베드로는 방주에 탄 노아가 구원받는 방편이 된 물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합니다. 세례란 죄 아래 살던 인간이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육체의 때를 씻는 제의적인 정결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선한 양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물질 세계와 영의 세계의 모든 존재를 지배하시는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한 자인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외적 정결이 아니라 내적 성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5. 맺음말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만물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는, 그 당시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교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산 우리들 역시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파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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