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양극을 달리는 인생 (롬 07:13-25)

첨부 1


하나님은 이 세상의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조화있게 창조하시고 만드신 만 물을 향하여 내가 보니 선한지라는 말씀으로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기 쁨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거짓되고 가 증되어 미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피조물들은 여전 히 제 자리를 지키며 그리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만 인간만은 하나님이 후회 하시기까지 타락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 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 워졌나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영, 마음, 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으로 믿음 과 불신에서 선악의 갈등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비단 바울 뿐 만이 아니고 오늘의 현실은 심한 갈등으로 차 있습니다. 영적 신앙의 차원 이 다르게 되면 사상과 함께 생의 목적과 방법이 모두 다르게 됨으로 갈등 이 심화되게 됩니다.오늘의 사상의 분쟁과 갈등으로 빚어지는 세계의 비극 은 날마다 우리들이 피부로 느끼며 깊은 고민에 빠지고 상처를 입고 있습니 다.

우리 민족은 지금 같은 동족간의 갈등이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국토의 분 단, 동족상잔의 비극과 함께 계속되는 시기,질투,그리고 살해의 흉악성은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외세와 주의 환경의 탓도 있지만).

오늘의 역사와 대세는 양극을 달리는 유신론과 유물론의 대결과 함께 양극 현상을 그냥 두고 보아야만 하는 입장이며 체념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처지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의 과정을 주시하시고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기억하셨다가 심판하실 것입니다. 과학발전과 함께 인간의 문명문화가 발전 되었다 해도 인간을 비인간화로 몰락시키며 인간의 본질을 모두 상실해 버 린다면 이것은 최대의 비극이며 멸망의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바울의 중심에서 고민하는 갈등은 그가 행하는 행위에 대하여 선악간의 문제를 해결치 못하고 판단치 못할 정도로 어두워진 그의 영적 타락상과 그의 선행을 실천할 능력의 무능성을 탄식한 것입니다. 자기 를 전혀 바르게 보지도 못하고 판단치 못하는 바울은 자기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고 탄식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갈등의 고민은 죽는 것과 같은 고민의 표현을 했습니다.

내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 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본문 22:24절) 특히 바울의 갈등과 고민은 영적상태의 갈등 이며 그가 원하는 선행에 대한 실천의 부족에서 고민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의 원래 구조는 영과 육의 결합인데 사람들이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영의 상태가 앞서는 것이 아니고 육이 앞설려는 데서 문제가 있 는 것입니다. 육의 제한된 기능이 있을 뿐이며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영은 무한히 그리고 영원하게 불멸하는 고로 육은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육이 앞서거나 육의 욕망 때문에 영의 상태가 갈등으로 빠지면 생활은 허무 와 갈등에서 삶의 의미도 잃어버리고 생의 목적도 달성치 못합니다.

헬라의 철학자 프라톤(Platon) 은 영혼의 불멸을 논하면서 이러한 예를 들 었습니다. 두 마리 말이 마차를 끌고 있다. 한 마리는 영혼, 한 마리는 육 체, 마부는 정신 혹은 이성이라는 자아이다.전자는 높이 날아서 진리의 세 계,정의,평화, 절제, 지식의 세계로 달리기를 좋아한다. 후자는 그 반대로 정복, 물욕,권세욕,관능과 향락을 좇아 줄달음치며 달린다. 이 두 말은 극 도로 갈등을 일으켜서 부딪히고 짓밟고 충돌하며 필경 영혼의 말은 날개가 부러지고 절름발이가 된다. 마침내 영혼 말은 다리를 절면서 불의, 죄악,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일단 떨어지면 일만년이 지나지 않으며 여기서 못 나온다. 이 추방된 유폐생활에서도 영혼은 희미하지만 지식이 있고 기억 과 향수를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인간의 갈등은 자기의 내면에서부터 임을 말하면서 영적인 갈 등을 벗어나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영적 갈등은 신앙과 불신앙입니다.

믿어야 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 은 분명히 잘못일 뿐 아니라 크나큰 모순입니다. 바울은 믿음에 대하여 정 의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 들이 이롤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영적인 갈등을 없이 하는 것이 정신과 육체적인 생활의 갈등과 함께 불합 리와 모순성을 없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의 문제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 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항상 선과 악의 갈등을 해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도덕과 윤리의 바른 실천이 이행되고 못되는 근본문제는 영의 상태가 잘되고 잘못된데 있는 것입니다.인간계의 갈등은 선악의 갈등과 불화를 낳 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 민족은 크게 홍역을 치루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보다 더 큰 주의 사상의 갈등으로 요즘은 한국이 칼막스,레 닌의 공산주의 이론과 그 실제적인 행동까지도 보여지는가 하면 학원가에는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는 주사파가 맹열한 활동무대로 작용된다는 것 까지도 듣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갈등은 결국은 같은 민족의 사상을 갈라 놓 고 투쟁하며 정복하겠다는 혁명의 소리가 높다고 볼때 이 갈등은 무서운불 안공포의 암적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갈등은 이에 못지 않게 당파간에 그리고 지방색, 인물중셈 의 갈등들을 너무나 이 민족의 수치며 아직도 성년이 못된 기분에서 자유와 민주의 삶을 살아갈 준비가 못된 민족 같기만 합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소련과 그외에 모든 공산국가가 손을 들고 공산주의는 배과으로 못사는 것으로 잘못된 것으로 알고 손을 들었습니다. 공산주의는 70년의 역사로 막을 내리며 참퍼를 당했습니다. 영혼의 깊은 불신과 회의를 벗고 바른 신앙이 각 영혼들에게 깊이 뿌리가 내리는 날에야 마음의 원하는 바 선을 행하고 원치 않는 악은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나'자기 자신의 깊은 죄에 빠지고 의심에 그치고 선행에 대한 무 력을 탄식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갈등을 영적인 상태로부 터 해결하여야 합니다.자기 갈등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분명히 자기의 삶을 정당하게 살게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됩니다. 영의 건전 성은 정신의 건전을 낳게 되고 정신의 건전함은 육체의 정당한 삶을 유지케 합니다. 영의 갈등은 정신상의 혼잡과 육신상의 무서운 악행을 빚게 됩니 다. 수도물의 청결은 수원지에 달렸습니다. 윗 물이 맑아야 반드시 아랫물 이 맑고 깨끗합니다.

영의 상태가 진실한 믿음과 그리고 참된 진리를 소유할 정신력을 가질 때 도덕과 윤리적인 건전한 실천능력을 주게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갈등, 영 의 갈등, 마음이 소원, 선행의 실천력을 자기의 지식, 지혜, 경험에 의하여 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말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 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 를 해방하였음이라(롬 7:24-8:2) 바울의 갈등의 해소는 결국은 죄를 용서 하시고 죄의 값인 사망을 해방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 놀라운 고 민과 갈등에서 자유했습니다. 불신, 회의, 온갖 악행을 오직 믿음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임을 믿었기에 바울은 자기의 깊은 고민에서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영혼의 갈등이 아닌 순존히 육신의 갈등에 치우치 고 있습니다. 정신과 가치관의 갈등이 너무나 적어지고 있다는 것은 오늘의 타락상이 극하게 치닫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갈등은 믿음의 세계를 위한 죄의 회개와 인간의 연약함의 갈등입니다. 바울의 갈등은 인간의 참된 가치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의 의 와 참과 사랑의 실천을 위한 갈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내세를 위한 갈등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코져 하는 목적에서 갈등한 것입니다.참 된 갈등은 결국은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바울의 갈등은 결코 육의 부귀영 화나 안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인의 갈등은 소유욕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소유욕은 즉 개인의 이기심의 충족과 지배코자 하는 야망에서 입니다. 지배계급은 오늘날 가진 자의 특권으로 되고 있습니다. 돈 있는 자, 명예와 권력을 쥔 자들, 그리고 능력이 인정된 자들은 교만함과 독선적인 것이 너무나 많아서 모든 사람들 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불법과 무질서, 폭력, 악행은 아직도 인간의 내면적 인 갈등의 해결되지 못한 자들의 죄악상이며 망발입니다.

바른 신앙의 갈등은 언제나 믿음과 정비례하며 그런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실천력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 받아 바른 신앙의 길로 걷게 됩니다. 믿음의 고상한 갈등은 사람을 착하게 만들며 참된 인생의 길을 걷게 하며 이 세상 을 살아가는 동안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부터 허무한 갈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허망한 주의, 사상, 믿음의 내용들을 가지고 갈등하면 갈등할수록 생활의 편한 면은 나타 나지 않게 됩니다. 갈등을 벗어나서 인간의 본연의 자세로 회복되어야 합니 다.

죄인인 나 자신이 죄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용서를 받아 믿 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후에 새로 거듭난 자로서 의와 사랑, 진실과 평화 를 나타내며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무익한 갈등과 유익한 갈등이 있으 니 바울은 신앙적인 믿음의 갈등에서 그는 죄를 통한 고민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해방되고 생명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참 된 갈등에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갈등은 의와 사랑과 평화를 실현코자 하는데 더 주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오! 주님이시여 ! 우리들의 갈등과 고민이 바울 같아지게 하시며 삶의 갈 등에서 해방되고 자유하게 하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