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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 혁명 (애 03: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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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제 1차 세계대전 후에 民族自決主義(민족자결주의)를 원칙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각 민족은 독립을 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 후 국가사회는 통일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식하여 공동의 적을 방위하기 위하여 통합연합기구인 북대서양 방위조약(NATO)을 결성하였고, 통일국가 체제인 통일아랍공화국이 출생하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세계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혁명』입니다. 최근 이르헨티나의 6월 28일 새벽을 기하여 일어난 혁명까지 중남미만 하더라도 지난 15년 동안 99차례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도 부정선거에 대항하여 학생들이 궐기한

4.19혁명이 있었고, 무질서와 공산침입에 대항하여 군인들이 들고일어난

5.16군사혁명이 있었습니다.
혁명은 본래 고대 중국의 정치사상의 하나인데, 天子(천자)가 바뀌는 易性 革命(역성 혁명)으로 폭력과 內亂(내란)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각 국가에서 일어나는 혁명은 그 국민에게 복을 가져올 수도 있으나, 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혁명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정권을 누리고자 하는 악한 의도에서 일어나므로 혁명은 그 나라의 존폐를 위협하며, 국민으로 하여금 도탄에 빠지게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패하거나 위약한 정부가 무너지고 국민이 요구하는 재건의 의욕이 높은 깨끗하고 참신한 정부가 혁명으로 이룩될 때는 부패와 비리와 죄악이 일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서 한 평론가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사설을 쓴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거리엔 虛無主義(허무주의)와 頹廢主義(퇴폐주의)가 범람하고 시민은 安易(안이)한 妥協(타협)에서 가냘픈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저마다 諦念(체념)속으로 움츠려 들어가는 현상을 볼 수 있었으나, 혁명 후 아침 일찍이 자던 문을 열어 제치고 희망의 가슴을 안고 일터를 향하는 모습과 재건의욕이 불타며 정의의 토대 위에서 땀을 아끼지 않는 근면의 현상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사회, 정치혁명보다 더 건설적인 면에서의 혁명으로서는 『기술혁명(Technical Revolution)』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과 같은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계속적 혁명(Continuous Revolu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정치, 경제, 문화는 『인간 혁명』이 없이는 진정한 발전을 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인간 혁명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밭이 아무리 좋은 옥토라 할지라도 가라지냐 알곡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씨앗입니다. 개인 개인의 심령이 변화되어야 좋은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치적 체제를 갖춘다고 할지라도 위정자가 부패해 있다면 선한 정치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 혁명, 다르게 표현하여 마음의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도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정신없이 물질의 찬란함 속에 쌓아 올렸던 바벨론의 문명은 크게 무너져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잃지 않고 더 깊은 영적 신앙을 고수하며 유지하던 유대민족은 오늘날 이스라엘 공화국으로, 팔레스타인의 사막에 원자력으로 물을 투입하여 옥토로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적 혁명의 공통적 특징의 일면은 과격한 것이며, 반항이며, 숙청이며, 죽이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혁명을 다시는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혁명, 정신혁명은 자아를 죽이는 혁명이요, 이 혁명으로 우리 가정과 사화와 국가가 화평하고, 단결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 예레미야애가 3:27-30을 보세요.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찌어다』
젊은 사람은 과격합니다. 따라서 혁명투사의 자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청년을 인간혁명의 투사로 부르십니다. 세상은 혹 사회혁명으로 청년을 부를지 모르나, 하나님은 피흘리는 혁명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성을 쳐서 빼앗는 자보다 더 강한 청년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용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젊었을 때 벌써 자기와 싸우는 용사로 삼기 위하여 멍에를 메우는 것입니다. 힘센 황소는 들에서 맹수와 싸우는 것보다 주인에게 복종하여 주인의 짐을 운반하는 멍에를 메는 그때에 가장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혁명은 죽이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죽여야 할 것을 죽여야 하며 죽여서 안될 것을 죽여서는 아니됩니다. 즉 타인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 6계명에서도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타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거나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을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5:24를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또한 고린도전서 9:27을 보십시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자기의 육체를 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 욕심, 교만, 미워함, 시기하는 마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른 사람이 때릴 때 자기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쳐서 복종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뺨을 때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로 향하므로 상대로 하여금 수욕으로 배불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즉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자연인은 혈기가 방자합니다. 그러므로 혈기가 많은 젊은이는 얻어맞으면 반드시 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에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혈기와 남을 치고자 하는 마음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로마의 청년 군단장 『비니큐스』는 사랑하는 『리기야』를 만나러 지하교회인 『카테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서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세계가 있는가?』 그 말씀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군단장의 마음에 혁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혁명이 일어나기까지는 성을 쳐서 빼앗는 무사였지만, 자기 마음의 욕망에게는 항상 패배를 당하는 약자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완악한 마음에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를 위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하시며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드리는 주님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랑의 원자탄이 터져야 합니다. 성령의 두나미스가 폭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이여! 믿음과 지덕을 닦는 학생들이여!
기독교의 껍데기를 핥는 형식에 매여 기독교를 잘못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해방신학』과 같은 잘못된 사상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은 그저 성경을 지극히 부분적이고 평면적으로만 살핀 잘못된 신학사조요, 사상일 뿐입니다.
말씀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6:1-2를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이와 같이 마음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마음의 변화를 받아 인간혁명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라』는 말씀처럼 행하는 학생들이 모인 교회는 지상천국의 샘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청년이 있는 가정은 모범적 가정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심은 일대 혁명적 처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천사들이 놀라 자빠졌을 것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진리를 쌓아 올리는 여러 기독학생들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찾아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학생들의 마음의 혈기를 이기고 온전한 데로 나아가게 하며, 구체적으로 진급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 이 진급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인간혁명, 마음의 변화를 이룩하여 하나님 앞에 합당한 데로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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