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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가 (마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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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란 사람의 권리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 사람은 하나 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존중 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이 율법의 기본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은 성서의 가르침이요 우리 기독교사상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고대의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사상과 그들의 저서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주장들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고 역사상 기독교의 신학자들과 영국을 비 롯한 구라파의 법학자들, 그리고 문인들이나 사상가들에 의하여 인간의 권리 는 옹호되고 주장되어 왔습니다. 특히 프랑스혁명 이후에 구미 각국에서는 인권사상이 헌법에 반영이 되었고 그후 아시아, 중남미제국, 심지어는 아프리 카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 각자가 자기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고 관심이 큰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사상과 주장은 국제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 나라와 나라사이에 혹 은 적대국가간에도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국제법들을 만들고 노예무역같은 것 을 금한다던지 사회와 노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던지 심지어는 전쟁중에 도 포로나 부상자들을 보호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치료해 주어야 한다던지 하 는 국제법이 만들어져 오늘날 적십자사와 같은 기관의 탄생을 보게 하였습니 다.

특히 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하여 인권사상은 더욱 그 중요성이 강 조된것 같습니다. 1919년 1차대전이 끝나고 파리평화조약이 체결되었을 때에 국제연맹 헌장중에 인간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는 중요한 규정들이 제정되 었는데 예를들면 남자 여자 어린이들에 대한 공정한 노동조건을 보장해 야 한다던지,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던지, 여자와 어 린이들의 인신매매를 금지 감독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전근대적인 암흑속에서 국민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 던 20세기초에 벌서 선진문명 세계는 인권에 대해 눈을 뜨고 이에 대한 활발 한 논의를 전개해 왔읍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와서는 UN헌장에서 기 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을 언급하였고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이 법 앞 에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집회 결사 신 앙의 자유와 같은 인권의 기본적 가치들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인 권선언이 발표된 12월 첫주일을 전세계가 인권주일로 지키고 있읍니다.

저는 오늘 인간의 가치나 인권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성경시대 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 다. 예수님 이전 유대교 사회에서는 그들이 읽고 배우는 '토라' 즉 율법에 의하여 형제애와 이웃 사랑에 대하여 가르치고 강조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에서 인권사상이나 인권선언 같은 것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거창한것 보다는 이 문제를 좀 단순하고 소박 하게 생각하여 보고자합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람을 어떻게 대할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인권이 사람의 권리라면 그 권리를 가진 사람과 사람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이루어져 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너희 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곧 율법과 예 언자들의 가르침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유명한 율법학자인 힐렐이란 랍비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율 법을 배우고 유대교로으로 개종읊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하도 복잡하고 수가 많으니 딱 한마디로 요약하여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힐렐에게 '내가 한발로 서있는 동안 빨리 단 한마디로 율법전체를 요약해 말해주십시요. 그래야만 유대교를 믿겠습니다' 라고하였습니다. 그때 에 랍비 힐렐은 '너에게 싫은 일은 친구에게도 하지 말아라'라고 대답하였다 고 합니다. 그것이 율법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자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않는 그러한 덕행이 곧 율법에 골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대하는 황 금율이 되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랍비의 말을 생각하여 볼 때에 참으로 그 말에 동감이 됩니다.

내가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는 것이 싫으면 나도 남의 자존심 상할 말은 아 니해야 되지요. 비판 듣는 것이 싫으면 나도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됩니다.

나쁜말 듣는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나쁜말을 하지말아야 되겠습니다.

독재를 규탄하던 이가 권력을 잡으면 더 무서운 독재자가 되고 부정 불 의를 미워하던 사람이 오히려 더 큰 부정축재자가 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 아왔읍니다. 사람은 자신을 그렇게 모릅니다. 간음중에 현장에서 잡혀 온 여 인을 정죄하여 법에 따라 처단하려고 했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있거든 이 여자에게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 던질 자격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만일 그 자리에 유일한 자격자가 있었다면 그 는 예수님이신데 주님은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랍비 힐렐은 '자기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네가 좋은 것을 남에게도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 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형제 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인도 주의 사상과 인간애를 실천하라는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교훈으로 가득차 있 는데 '너는 길 잃은 원수의 소나 나귀를 만나면 그것을 임자에게 반드시 데 려다 주오야 한다.'(출 23:4)고 했습니다. 여기서 원수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 들에게 있어서는 이교도를 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 자들인데 그들에 대해서까지도 인간애의 요청은 파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원수들인 이교도나 우상숭배자들을 대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사람 을 대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머리가 되고 꼬 리가 되게 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다른사람과 경쟁관계에 있 을 때에 '사람은 언제라도 뒤쫓김을 당할지언정 남을 뒤쫓아서는 안된다' 고 했읍니다. '압박을 당하되 남을 압박하지 말라, 모욕을 당해도 앙갚음 하지말 며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면서 사람을 귀히 알고 그렇게 대하라고 하셨습니 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했습니 다. '내가 그를 창조했다. 네가 그를 사랑하면 내가 너에게 응보의 보답을 할 것이고 네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반드시 벌을 내리는 심판자가 되 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사 랑입니다. 유대인들은 저주를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러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설사 네가 남에게 저주를 당하는 자가 될지라도 너는 남을 저주하는 자가 되지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됨의 도리입니다. 얼마나 인간적이 고 인도주의적입니까 최근 우리는 '인권운동'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만 인권을 회복하는 일 을 왜 운동으로 전개해야할까 왜 그것을 시위나 폭력으로 쟁취해야만 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권을 짖밟고 무시한 과거 독재정권의 위정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과격한 방법으로 그것을 쟁취하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 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인권을 회복하고, 권력도 그러한 방법으로 쟁취한다면 그 사람들은 더 무서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 3자인 우리들 국민 대다수에 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의 방관자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사람 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가 내가 싫어 하는것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하 고 내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입장을 바꾸 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위정자는 국민의 입장을, 국민은 국가를 이끌 어 나가는 지도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입 장을 자녀들은 부모님의 입장을,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입장을생각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입장을 학생들은 선생님의 입 장을, 가난한 이들은 부자들의 입장을 부자는 가난한 이들의 사정과 처지를 생각해 봅시다. 또 우리 교인들도 자기 처지에서만 사람을 보지말고 불신자 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바리새인 들처럼 자신만 의롭다고 여기는 아집에 빠지고 자신의 입장에 안주하는 비겁 한 자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회 는 세상에 입장을 알고 그 상처를 싸매고 고치고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합니 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비판이나 규탄이나 정죄나 폭로보다는 서로가 눈물흘 리며 회개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용서하고 서로 붙잡아 주는 위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그 방법을 배우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 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곧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이다.'(현대인성경 마 7:12) 라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읍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만 앉아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입 장에서 우리를 보시지 않으시고 우리 입장이되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 를 아셨습니다. '그분은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나님과 동 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빌 2:6-) 이것은 하나님이 그 입장을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입장이 되셔서 고난과 십자가를 지셨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아시기 위해 당신의 입장을 포기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감격과 은혜가 될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사람을 대할 때 에 그 입장을 바꾸어 보라는 교훈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요 진정한 사랑으로 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요 그렇게 될때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 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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