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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교제 (롬 15: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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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눔의 존재입니다. 즉 교제가 없고 교통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나눔이 있는 사회는 질서와 조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눔이 없고 교제가 없는 사회는 갈등과 대립이 심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비롯하여 사회 국가 교회의 공동체는 모두 참다운 교제와 나눔을 통하여 바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본이 초대교회의 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눔과 교제의 단절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본문은 사랑의 나눔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1.로마 방문을 위한 바울의 열망(22-26)
1)교회를 사랑하는 열망(22-23)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강하게 열망하였던 이유는 뜨거운 선교열 때문이었습니다. 로마를 복음화하면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일을 앞당기는 척도가 된다는 각도에서 였습니다. 특히 바울이 로마교회를 사랑하는 열망 속에는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그의 뜨거운 선교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를 통해 서바나(스페인)로 향하고자 하였으나 그 전에 먼저 이루어야 할 과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발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보내온 헌금을 흉년을 당하여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방문에 대한 열망이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계획할 때에 상황이나 여건이 맞지 않아 차질을 빚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때에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주님보다 앞서 가려고 하면 누구라도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주께서 길을 열어 주실 때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2)성도와의 교제를 바라는 열망(24)

성도의 교제는 신령한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교제입니다.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교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와의 교제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의 교인들과 만나 교제를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제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그를 서바나로 보내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확신을 가진 일꾼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렇다면 성도가 교제하고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 교우들을 만나 서바나의 전도 사역을 함께 이루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바로 그것이 전도임을 알게 됩니다. 전도 사역은 성도들의 교제와 합력을 통해서 이루는 가장 아름다운 선인 것입니다. 전도는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성도 상호간에 힘을 합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자비를 실천하는 바울(25-26)

바울은 그의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유대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자신이 세운 이방 교회들로부터 특별 구제 헌금을 거두어 들였던 것입니다(고전16:1고후8:1-2,9:1-2갈2:10). 이제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여 그 구제 헌금을 유대 성도들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서로 사랑 가운데 연합하여 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던 것입니다(갈6:9-10).

2.성도들이 나누어야 할 사랑의 빚(27-29)
1)서로 나누어야 할 사랑의 빚(27)

본문에서 바울은 이방 교회가 유대 교회에 대하여 복음에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 성도들로부터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빚이 바로 사랑의 빚입니다.

2)육신의 것으로 표현될 사랑의 빚(28)

바울은 이방인 교회가 유대인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 즉 복음의 은혜를 받았음으로 육신의 것, 즉 구제금으로 어려움에 빠진 유대 교회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적 은혜에 대한 육적, 물질적 보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신령한 은혜를 받고 인간이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란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령한 은혜의 본질도 사랑이고, 물질적 보답도 그 물질이 사랑이라는데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더구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것은 사랑의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구제란 작은 재물로 하늘의 무한한 창고에 드려 영원한 자신의 부로 만드는 지혜입니다(눅12:33). 구제는 작은 부로 큰 재물로 만드는 가장 큰 지혜입니다. (잠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구제는 자기의 소유 중에서 남은 것으로 구제하라고 하시지 않고,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라고 하셨습니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그리스도의 축복 속에 진행하는 사역자(29)

바울은 그가 로마 교회로 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로마 교회에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가는 자는 그리스도의 축복을 가지고 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 사랑과 은혜들을 성도들과 이웃에게 나누는 축복의 근원으로 사시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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