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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배재철 <4> 공군 복무 중 비행장서 엔진 소리 들으며 발성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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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연습벌레.’ 음대에 진학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뒤 지금까지 듣는 말이다. 특히 나는 군에 입대해서도 매 순간 노래를 불렀다. 군대에서의 연습 방법은 지금 생각해도 참 탁월했다.

나는 방위로 대구의 한 공군기지에서 18개월 동안 복무했다. 주로 비행기 엔진을 테스트하는 초소 옆에서 근무했다. 비행기 엔진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그 옆에 서면 온몸이 떨리고 정신이 멍할 정도였다. 옆 사람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 환경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주변에선 못 들을 게 뻔하니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비행기 엔진 소리에 뒤질세라 목청껏 발성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연습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은 흘러 1년쯤 됐다. 내 소리와 비행기 엔진 소리를 비교해 가며 노래를 연습할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호흡도 전보다 훨씬 길어졌다. 하늘을 향해 맘껏 소리쳐 부를 수 있는 그 공간은 하나님께서 내게만 허락하신 특별한 연습실이었다.

군대에서 터득한 호흡과 확 트인 목소리를 갖고 복학했다. 그렇게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학내 연주회인 위클리. 선후배가 다 모여 두 달 정도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자리였다. 학내 콩쿠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긴장감 도는 무대였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자고 다짐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제1막 ‘이 여자도 저 여자도’에 나오는 아리아를 불렀다. 호흡을 길게 끌다가 단번에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뒷부분이 클라이맥스였다. 교수가 아닌 강사 선생님의 제자였던 나, 배재철이 누군지도 몰랐던 학교 사람들은 이때부터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는 처음으로 콩쿠르에도 도전했다. 주로 4학년이 나가는 한국성악경연대회인 ‘이대웅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이듬해 제33회 ‘동아 콩쿠르’에선 1등을 차지했다. 당시 동아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군이 면제되기도 했다. 이미 군대에 갔다온 뒤라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지만 말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와 아마추어들의 실력 차이를 분석했는데, 대부분 연주 시간에서 그 차이가 드러났다고 한다. 우수 집단의 연습량은 최소 1만 시간 이상이었다고 심리학자는 주장했다.

하루 세 시간씩 10년을 연습하면 1만 시간이 된다. 학창시절 내 연습량은 기본 3시간. 온종일 연습할 때도 많았다. 초·중·고교 때 교회를 연습실 삼아 노래를 불렀고, 군대에선 비행기 엔진 소리를 들으며 매일 발성 및 노래를 연습했다. 1만 시간의 연습량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분명 나는 주목 받지 못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내 안에는 고된 연습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짜릿한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희열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많은 선생님들을 보내주셨고 연습의 결과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무대도 만들어주셨다. 1만 시간 이상의 땀을 흘린 나를 하나님께선 충분히 아름답게 보상해주셨다. 그리고 더 나은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이탈리아로의 유학이었다.

정리=노희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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