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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배재철 <6> 성악가의 길을 열어준 두 은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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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에스토니아의 작은 휴양도시에서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내려오던 중이었다. 자신을 에리키 알스테라고 소개한 그는 “핀란드에서 열리는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에 나가볼 생각 있느냐.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신뢰가 갔다. 그 페스티벌은 북유럽에서 열리는 음악축제 중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무대였다.

알스테씨는 “열흘 후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날짜를 잡아보겠다”고 했고 나는 당당히 합격했다. 이듬해 핀란드의 오페라 페스티벌에 올려진 ‘리골레토’ 무대에 올랐다.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을 꼽으라면 알스테씨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공연 매니저로 당시 공연에이전시를 막 시작하던 때 나를 만났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테너 배재철’을 유럽의 극장과 협회에 소개했다. 덕분에 동양인이면서도 특급대우를 받으며 유럽 무대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2003년 영국 카디프극장에서 열렸던 ‘라 보엠’을 잊지 못한다. 마에스트로 카를로 리치와 공연했다. 여주인공 미미를 사랑하는 로돌포 역을 맡았다.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영국의 ‘더 타임스’는 “로돌포의 아리아에서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하이C’(2옥타브 도) 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한 테너”라며 내 목소리를 극찬했다. 이후로 이 작품을 주최한 프로덕션과 7번이나 호흡을 맞췄다.

한국 무대에도 진출하는 길이 열렸다. 2000년 9월 예술의전당에서 ‘토스카’로 처음 한국 무대에 섰다. ‘떠오르는 신예’로 평가받으며 매년 한국에 들어와 오페라 팬들과 만났다. ‘리골레토’(2001년) ‘토스카’(2002년) ‘라 보엠’(2003년)을 공연했다. 특히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한 ‘라 보엠’은 제작비만 30억원 넘는 대규모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한국과 유럽의 무대는 많이 달랐다. 고국이라 더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할 거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은 실수에 냉혹했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공연할 땐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유럽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한국에서 인정받는 게 더 어려웠다.

해를 거듭할수록 긴장감 속에서 공연 무대를 이어갈 때쯤 또 다른 나라에서 연락이 왔다. 와지마 도타로였다. 일본에서 전화를 건 그는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자신을 소개한 뒤 작품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저는 일본에서 보이스팩토리라는 음악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일 트로바토레’ 작품을 하기 위해 주역 테너를 찾고 있습니다. 선생님 목소리가 저희 작품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미 메조소프라노로 피오렌차 코소토 선생님이 출연을 허락하셨습니다.”

“코소토 선생님이 나오신다고요?” 성악가들에겐 전설과도 같은 코소토 선생과의 무대라니…. 재고의 여지없이 바로 “오케이”했다. 그리고 이런 분을 무대에 세운 와지마 도타로라는 일본인 기획자가 궁금해졌다.

알스테씨가 나의 전성기를 만들어주고 그 시기를 함께했다면, 와지마는 내 인생 후반전을 책임진 소중한 친구다. 난 어느 자리에서든 와지마를 이렇게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준 천사”라고. 목소리를 잃고 다시는 무대에 오르지 못할 뻔한 나를 일으켜 세워준 고마운 친구, 그는 선물 같은 존재다.

정리=노희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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