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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혜사 성령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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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71212150412_01.jpg (File Size: 67.0KB/Download: 0)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5~1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기신 분일까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제일 처음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주시옵소서”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이토록 오래 너희들과 같이 있었는데 나를 보지 못했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영이십니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인 육체를 가진 사람이 영이신 아버지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하늘나라를 영으로 태어나지 않고는 볼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유일하게 같이하신 독생자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일거수일투족이 다 아버지와 꼭 닮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으로 오셨으니까 육체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을 알지를 못합니다. 


1. 예수님께서 보내신 분 (보혜사 성령)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꿈꾸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와 하나님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보내신바 되어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한 것처럼 예수님은 내가 가면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낼 터이니 그 보혜사 성령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서 보혜사 성령을 체험한 사람, 본 사람은 나를 체험하고 본 것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요.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아버지를 체험한 것입니다. 성삼위일체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의해서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 사천 년 동안은 아버지가 다스린 때로써 야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렸고, 야훼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아버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사천 년 동안은 아들도 아버지를 통해서, 성령도 아버지를 통해서 삼위일체로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삼십 년 동안 예수님의 시대를 아들의 시대로 아버지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아들의 시대는 아들 중심으로 아버지와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내려 보내주신 다른 보혜사는 성령시대로 성령은 우리 예수그리스도 천국 가신 이후 이천 년 동안 성령시대로써 성령이 우리에게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성령시대로 성령으로 오는 아버지와 아들을 알 수 없습니다. 구약 사천 년 동안은 아버지를 알아야 아들과 성령을 알고 예수그리스도 삼십 년 동안 아들의 시대로 예수그리스도를 알아야 아버지를 알고 성령을 알고 이제 성령 이천 년 시대에 우리가 성령을 통해야 아버지도 알고 아들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아버지와 예수님을 모르는 것은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을 적극적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16장 7절에 보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직접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보혜사는 하나님이 도우는 분을 보내서 항상 그와 같이 있는 자를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내가 인생을 내 힘으로 살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셔서 일평생 나를 도와주신 분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보혜사라는 것은 예수님이 처음 보혜사고, 다른 보혜사는 성령이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똑같은데 다른 것은 ‘알로스’고 완전히 다른 것은 ‘헤테로스’입니다. 주님께서 알로스 파라크레토스를 보내겠다는 것은 나와 꼭 닮은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성령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죄인을 사랑하고 돌봐주시고 병 고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시고,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꼭 그대로 하는 분이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르다고 해서 꼭 다른 것이 아닙니다. 숫자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 한 보혜사. 성령님 그리스도와 같이 같은 둘째 보혜사인데 다른 보혜사, 예수님과는 꼭 같은 다른 보혜사. 한 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성령님은 예수님과 꼭 닮은 다른 보혜사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보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와계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께서는 성도를 인도하시는 역사를 하시는데, 예수그리스도 진리를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성도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성령은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한복음 15장 26절)’ 아버지가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님은 성령을 통해서 또 증거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나타내셨다가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불러 가시고 난 다음에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아버지가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도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께 의지해서 성령께서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계시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8장 29절에 보면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전 주에는 에티오피아 대사님이 에티오피아 성도들은 데리고 내 사무실에 왔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에티오피아보다 기독교인이 많은 줄 생각하는데, 오해입니다. 이 성경에 본 데로 빌립이 누구를 만났냐 하면 (예수) 에티오피아 장관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리고 가는데 저 수레에 가까이 올라타고 전도하라. 그 빌립 집사가 그 수레를 가까이 해서 타고 예수를 전도한 결과에 수레에서 내려서 문에 침례 받고 크리스천이 되어서 거기가 애굽에 가까이 있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여 에티오피아는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에디오피아는 6.25전쟁때 우리나라에 군대를 파병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성령께서 에티오피아 장관에서 말씀해 주어서 전도하는 것이니 오늘 날 우리가 걸어가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도하라고 그렇게 성령이 마음속에 말씀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직접 마음에 계시를 해서 깨닫는 것을 레마라고 합니다. 레마를 받았다. 성령의 묵시를 받았다. 여러분들도 레마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그걸 무시해버리고 있고, 무언지 모르게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말씀할 수 있는 것은 레마로써 그 레마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깊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시면 기가 막힌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실업인 예배에도 그 예를 잠시 들었습니다만 내 일생의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 이 레마입니다.

 제가 처음 미주대륙에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었습니다. 브라질에서 세계 오순절대회를 하기 때문에 그 성령 운동하는 오순절 단체에 참석하기 위해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로스엔젤레스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갔었습니다. 거기에서 은혜를 받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공항에서 줄을 서있는데 브라질 경찰관이 와서 내 여권을 보자고 해서 보여주니까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나는 경찰을 따라가면서 “I should go. right this now. by this airplane passpord give me." 나는 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니까 패스포드 달라고 하니까 경찰이 ”무슨 잔소리냐“ 하면서 여권을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가요. 화장실안 사람들 안보는데서 돈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돈이 없다고 하니까 이것저것 살피다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더니만 사라져 버렸어요. 저는 천하의 고아가 됐습니다. 여권도 없지, 공항에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을때였습니다. “하나님, 죽는다 죽는다 하더니 이래서 죽는가 봅니다. 이제는 죽었습니다.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울었어요. 공항안에서 울고있을때 마음속에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같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 같이 있지만 보이지도 않는데 뭐 알아야 말을 하지요.” 마음속에 “내가 도와줄 테니까 울지 말라고.”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울며 앉아있을때 어느 여성분이 자기 딸을 데리고 내 앞을 지나가면서 나를 자세히 쳐다봅니다. “혹시 루이스빌 리차드란 사람 아느냐?”고 물어봅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산에서 루이스 빌 리차드란 선교사가 와서 목회를 했을때 내가 그 교회에 나갔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난 다음 부산에서 루이스 빌 리차드 목사 교회에 나가서 그 리처드 목사님이 나를 서울에 순복음신학교 공부를 시켰어요.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알고말고요. 내가 그 분 교회에 나가는데.”라고 하자, “그렇지, 10년 전에 그가 나에게 편지를 썼는데 자기 교회에 젊은이가 있는데 희망이 있어 내가 학교에 공부를 시키려 한다고 prayer letter(기도편지)에 사진을 찍은 것을 붙여 가지고서 나에게 보냈었는데 그를 위해 기도했고 당신을 보는 순간 10년전의 그 사진이 떠올랐어요”. 하나님께서 열흘도 아닌 10년 전에 미리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내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내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살려달라고 했죠. 오고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분이 사연을 듣고 난 다음에 같이 여권을 찾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분은 영어를 그 딸은 스페인어를 했으니 시 경찰국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그 경찰이 버린 여권을 쓰레기통에서 찾아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레마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레마를 많이 들음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목회는 레마에 매달려가서 목회를 한다고 해도 말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마음의 생각으로 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와 성도를 붙들어 주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수가 많아지더라. 왜입니까? 교회에 성령의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평안과 위로와 기쁨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있으니까 교인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쉴 날이 없는데 성령께서 하나님의 기쁨을 마음속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기쁨을 부어 주십니다. 염려와 근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아니고는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있을 때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평안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십니다. 절망을 당하여 좌절하고 이제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고 생각할 때 성령이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교회와 성도를 붙들어 줌으로 교회가 자라는 것입니다. 


2. 성령에 대한 이름 (성령에 대한 부르신 이름)

 우리 교회는 성령님을 하나님의 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장 2절)’ 신은, 영의 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한국말로써는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상상해 보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 온 천지가 엉망으로 깨어졌을 때, 하나님의 신이 그 수면 위에서 운행 하셨습니다. 삼차원의 세계가 무너졌을 때, 그 사차원의 성령이 운행하셔서 “빛이 있으라. 지구야 나타나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지혜와 총명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이사야 11장 2절에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성경에 말하신 것으로 예수님은 그 위에 하나님 성령이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략의 영의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으로 강림해서 구속사업을 하시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보낸다.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는 말씀을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똑같으나 또 보낸 다른 보혜사가 우리와 같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 땅에 와서 구주가 되신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우치고 알려주시고 도와주시기 위해서 또 와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보혜사로 부를 뿐 아니라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결의 영이라도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로마서 1장 4절)’ 이 세상은 죄악으로 더러워져서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더러워진 것을 깨끗이 씻어서 성결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결의 영으로써 우리에게 와서 더러운 죄악의 영을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다 만들어 주시는 것도 성령의 하시는 일이요. 우리를 성결하게 만드는 것도 성령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우리가 의로운 사람도 될 수 없고, 거룩한 사람도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롭게 해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을 은혜의 성령이라고 그럽니다. 히브리서 10장 29절에 있는 것과 같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은혜의 성령이란 것은 은혜란 값없이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를 값으로 지불할 수가 없어요. 공짜로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은혜의 영이라. 은혜라는 것은 공짜고 기간이 없습니다. 10년도 아니요, 100년도 아니요 영원한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오면 성령께서는 은혜의 성령으로 값없이 세월이 지나고 지나도 성령이 은혜로써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주 안에서 자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은혜의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3. 성령께서 일하실 때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일하시면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숨겨 있는 죄도 다 파헤쳐 주시고 회개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힘으로는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기도할때 마음속을 파헤쳐 주셔서 숨겨놓은 죄까지 다 토해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6장 8절). 죄를 파헤치시고 의로움을 지적하시고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삶을 청산시키시고 의와 진리의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만들어주시는 분이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이 영으로써 우리의 몸의 행실을 늘 죽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자라게 하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회개운동을 시키는 것을 우리 교회가 알고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마귀와 귀신을 대적합니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병은 마귀에게 눌려서 생기는 것입니다. 마귀가 제일 처음에는 사람을 따라다녀요. 따라다닐 때 마귀를 떼버리지 아니하면 그 다음 마귀가 올라타고 다녀요. 옛날에 시골에서는 어머니가 밥하러 가시고 밭 매러 가시면서 언니나 형을 보고 “동생 잘봐라” 하셨습니다. 저도 그 때에 손아래 동생들을 돌보려고 업고 다닌 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업히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마귀가 여러분에게 올라타고 다니면서 훼방을 합니다. 마귀가 누르면 병이 되는 것입니다. 폐를 누르면 폐병이 되고, 육체를 계속 누르면 암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서 이 마귀를 쫓아내고 치료를 갖다 주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한 두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마다 다 고쳤습니다. 주님께 나오는 죄인마다 용서해주시고, 주님께 나온 병자마다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가운데 살지 않고 성령을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과 은혜를 가지고 살게 하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열매가 모두 제거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 힘으로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성령께 의지해서 주님이 거룩한 데로 우리도 거룩하게 되기를 하나님 원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법으로써 성령이 불어오면 기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기를 죽이는 영이고, 성령은 기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교회의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기가 살아나서 펄펄 기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가 살아나지 않고 교회에 들어가서 성령을 받지 못하고 예배를 드려도 집에 돌아오면 기가 죽어가지고 가라앉고 ‘세상이 사는 것이 뭐 이런가?’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기운으로 충만해집니다. 마귀가 오면 기가 뺏기는 것입니다. 시끄럽고 요란스럽지만 교회에 성령이 임하시면 기가 살아나면 활력이 넘침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려운 일도 다 감당하는 것은 기가 살아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심령에 말씀하십니다. 성령과 대화할 때 성령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병자를 위해 기도한 다음에, 어떤 사람은 병이 나았다고 말해주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병자 위해 기도를 했는데 사람들을 위해 기도 했으나 내가 포함되는지, 내가 안 포함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주 성령님, 오늘 누가 나았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무릎 관절이 나았다.”고 감동을 주시는데 나는 누가 나았는지 모르지요. 경험이 없을 때는 부들부들 떨고 말도 못했는데 경험이 생기면 “오늘 무릎이 이 곳에 온 사람이 나았습니다.”라고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그 말이 부딪혀 오는 것입니다. ‘아, 내가 무릎이 아픈데 무릎이 나았다니까 나보고 말한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레마가 와 있을 수 있는 것이 목사가 강단에서 똑같은 레마를 말하니까 믿음이 탁 부딪힌다 말입니다. 전등불이 번쩍 하듯이 믿음이 번쩍 해져요. 만나는 것입니다.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은 블라디보스톡에서 5만명 공산주의자들이 모였을 때였습니다. 공산당이 무너질 때 5만명 소련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집회장소에 오니까 소련 공산당 청년들이 모여와서 “물러가라. 이장이 기독교 단체에 예배에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고함을 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휠체어에 앉은 중풍병자인데 자기가 몸이 낫는 것이 물러가는 것보다 앞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증거하고 난 다음에 회개를 하고 아픈데 손을 얹으라고 했어요. 아픈데 손을 얹었어요. 제가 그 사람 낫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이 병든 자를 다 고치되, 저 공산당 서기장을 꼭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요. 그 만물을 지으신 권세 있는 웃음소리가 가슴에 ‘하하하하 하하하하하’라고 울려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이제 누가 나았다. 누가 나았다 하는 것을 선포하는데 공산당 서기장을 보고는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나았다고 했다가 안 나으면 거짓말쟁이가 되거든요. 그때 내 마음속에 성령님이 말씀하는 고요한 속삭임이 “저 사람 이 낫지않는다면 저 자리에 내가 너를 앉혀줄까?” 저는 화들짝 놀라며 “아닙니다. 아닙니다.”손사레를 쳤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그럼 말하라. 말은 네가 하고 고치는 것은 내가 고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공산당 서기장이 휠체어를 타고 왔는데 하나님 성령이 임하여서 고쳤으니 일어나라.”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말을 하니까 화닥닥 일어났어요. 그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화닥닥하고 일어나더니만 그 휠체어를 높이 들고 강단으로 올라옵니다.

 그때 그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잃었다고 할 정도로 고함을 치고 박수를 치고 공산당 청년 동맹 젊은이들은 모두 다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열 두 해를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접촉점이 붙으면 낫습니다. 서로 전기 스위치가 마주치며 부딪혀야 돼요. 오늘 여러분도 제가 말하는 대로 한 번 해보면 낫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성령 능력을 받는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야 될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받는 것이 먼저 할 일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성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누가복음 24장 9절)’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성에 머물러 있으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에 들어오다가 그 성문가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금과 은은 우리에게 없으되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면서 손을 잡았습니다. 그 앉은뱅이가 놀라서 그들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걸었단 말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 교회부흥이 오는 증거는 성령이 성도들 기를 살려서 회개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감사 찬송의 소리가 요란스럽고 그런 일을 하면 부흥이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흥이 오면 그런 시끄러운 문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라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눈물로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보내서 우리들의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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