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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 이주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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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하고 구걸하는 분들 속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참된 마음과

그들을 향한 주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 마음 속에 작을지라도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정한 사랑의 길을 가로막는 장벽이고 철책이다.

그것이 우리로 노숙하는 사람들과 같은 지극히 작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그들 속에 남아 있는 소망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니 우리의 가장 가까운 피붙이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대해서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만일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남아 있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을 성공하라고

그토록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일까?

그토록 많은 이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그토록 많은 차별과 단죄와 범죄가 자행될 수 있는 것일까?

그토록 많은 부패와 타락이 범람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 우리의 의식이 되고 판단의 근거가 되고

습관이 되고 삶의 태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온통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지조차 모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은 그것을 조장하고 성공의 기준으로 삼기까지 하며 미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는 누구를 탓하거나 정죄할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죄와 모순과 고통과 갈등의 현상은

이미 우리가 숨쉬고 살고 죽는 생태계가 되었다.

우리 가운데 대다수가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고,

가해자이며 피해자기도 하다. 


그럼에도 세상은 온통 “청산!”의 노래로 가득하다.

뿐 아니라 청산을 찬미하는 노래가 온 땅을 뒤덮고 있다.

또한 청산을 반대하거나 걱정하는 논리는 정연하지도 못하고

설득력도 변변치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가치관과 길을 가야 할 것인가?

과연 “청산!”에 살 일이 났다고 춤을 추어야 하는가,

아니면 청산에 죽을 일 났다고 반기를 들어야 하나?


우리의 길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다.

주님의 길은 세상보다 높다.

세상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리고 다시 세상에서 사랑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 길은 간단하다.

멀지도 어렵지도 않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께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서도

그 인생에 남아 있는 소망을 보셨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예수께선 민족의 피를 빨아 로마에 바치는 부역자요,

부패자인 삭개오를 향해서도 주를 맞아들이자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겠다!” 하시며,

그 자에게서까지 새로운 삶의 내일을 보시고

죄사함을 주시며 천국을 살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주님의 가슴에서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만이 세상을 이기에 할 뿐 아니라,

죄악된 세상 안에서도 소망을 보게 하고,

이 썩은 세상 속에서도 천국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된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숨기려는 것이 사라지면
빛 가운데 거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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