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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과 복을 택하라 (신 3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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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복을 택하라 (신 30:15-20)


세계적 테너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는 어릴 때부터 성악 쪽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안 그의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파바로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청년기를 거치면서 파바로티가 가지고 있던 관심은 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성악이 아닌 교육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때가 되자 파바로티는 자신의 진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성악도 하고 싶었고 학교 교사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파바로티 방으로 들어와 의자를 두 개 가져다가 멀리 떼어 놓은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루치아노,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의자에 동시에 앉을려고 하면 너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의자에 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의자만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네 자신이 해야만 한다” 이때 파바로티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성악을 선택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파바로티가 교육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교사가 되었다면 그는 신이 내려준 천상의 소리를 묵힌 채 어느 시골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만족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성악을 선택한 그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성악가 중에 한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선택이 중요한 가를 교훈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때부터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택의 실수를 계속했습니다. 마귀의 전략은 언제나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의 실수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길인 줄 알고 선택했는데 실패의 길이었습니다. 행복의 길인 줄 알고 선택했는데 불행의 길이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서를 주셨습니다. 그 안내서가 성경입니다. 특히 신명기는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택한 민족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을 것이요,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예비해 놓으신 길은 두 길밖에 없습니다.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입니다. 두 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할 땅 가나안에서 복을 받고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명령하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신 율법과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본문 1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우리의 선택 여하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선택은 중요합니다. 무엇을 택하시렵니까? 생명과 복을 택하려면,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선교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와 소설가 카뮈(Albert Camus)는 1957년 같은 해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처는 평화상을, 카뮈는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상금으로 각각 1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카뮈는 그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멋진 별장과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 1월 4일, 고급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상금으로 아프리카 랑바레네에 병원을 지었습니다. 그 병원에서 원주민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카뮈는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이 되고, 평안과 즐거움을 주며, 나를 영화롭게 할까 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반면에 슈바이처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가 전적 관심사였습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지키라는 말씀에 앞서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 권세나 명예를 사랑합니다. 향락과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복의 길을 가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세상에 속한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 인격은 세상만큼 추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택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 그 삶은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생명과 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청종해야 합니다

흑인 노예들을 태운 노예선이 미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배 밑에 갇혀 있던 흑인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켜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일제히 갑판위로 뛰어 올라 왔습니다. 그리고 백인들을 바다에 던지고 기물을 파괴했습니다. 선장실에 침입하여 나침반까지 부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움에 기뻐 뛰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나침반이 없는 배는 방향을 잃고 파선하고 말았습니다. 인생 항로에 있어서 성경은 영혼의 나침반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 경험에 의지하여 말씀 순종을 거부한다면 나침반 없는 배와 같이 표류하다가 파선할 것입니다. 선택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신 반면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씀은 절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억압이 아니라 생명과 복을 얻는 길입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병든 상태에 있는 영혼이 고침 받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처방이 곧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청종하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복이 있습니다. 육신의 요구를 따라 살아가는 무절제한 생활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방종의 결과는 사망과 저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에게 주어지는 열매가 생명과 복입니다. 기도를 하던 하지 않던 자유입니다. 그러나 응답은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선택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찾아오는 결과에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택이 중요합니다. 생명과 사망, 저주와 복이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복에 이르기 원한다면 말씀에 청종하는 길을 택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내려 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는 서울대학교를 거쳐 미국 하바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코스타 집회에 참석했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몽골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 동연이가 두 살 때 함께 장난감 가게에 간 적이 있는데 아들은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 움켜쥐고 가게를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배워야 할 교훈은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 먼저 계산대에 내려놓음의 레슨이었습니다. 진정 종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던 자유와 특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후 또 하나의 책을 펴냈는데 ‘더 내려 놓음’이었습니다. 

미래의 성공을 내려놓고 몽골로 갔지만 몽골로 간 후에도 자신 안에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음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섬김의 장에서 반드시 씨름해야 할 문제는 ‘자기 애와 자기 의’ 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아직도 자기 사랑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여전히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방식으로 일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내려놓음 자체도 내 노력으로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일의 성공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오직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자리에 설 때 진정한 내려놓음과 섬김이 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본문 17절과 18절입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왕국이 갈라졌는데 북왕국은 앗수르에게, 남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김으로만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생명과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적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아론과 네 아들을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막에서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을 하던 중 그만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켜 죽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도에 따라 섬겨야 비로소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07년 4월 8일 터키에서 순교한 독일 선교사 틸만(Tilman)의 가족이 보여준 용기를 아십니까? 터키 중동부 말라티아에서 들려 온 소식은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틸만과 그와 함께 사역하던 터키인 2명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고문당한 후 칼로 목 베임을 당하고 온 몸에 칼로 난자를 당한채 죽어 간 것입니다. 사건 직후 터키 방송에 출연한 선교사 틸만의 부인이 “나와 가족은 남편을 살해한 이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라고 선언하여 용서의 가치를 모르는 이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나운서가 “이제 당신은 독일로 돌아가겠습니까?” 묻자 그녀는 침착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내 남편의 시체를 남편이 사랑한 이 땅 말라타야에 묻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9년 6개월을 살았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새로운 고향입니다. 나의 아이들은 여기서 계속 학교에 다닐 것이고 우리는 남편의 무덤에 꽃을 들고 자주 방문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선택을 ‘오늘’ 하라고 명하십니다. 본문의 다섯 구절 중 ‘오늘’ 이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가 네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정하고 택할 시간은 바로 오늘입니다.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놓여 있습니다. 어느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우리와 자손이 살기위하여 오늘 생명과 복을 택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김으로 생명과 복의 길을 택하여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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