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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혈의 역사성과 구속성 (히 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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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의 역사성과 구속성 (히 9:11-22)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창조된 인류와 더불어 언약(言約, Covenant)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와 관계하시고 섭리하시며 구원하시는 모든 행위의 근거는 인류와 맺은 언약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언약은 단순히 인간들 사이에 오가는 계약과는 달리, 피로 맺어진 결합(Bond in blood)입니다. 성경의 언약은 모두 삶과 죽음의 문제와 연결어 있습니다. 언약의 조항을 어긴 자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만 했고,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 언약은 절대 불변의 약속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피흘림의 역사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과거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흘려졌던 피들은 죄 가운데서 허덕이는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피였습니다.

이 피 속에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 있습니다. 이 피 속에 하나님의 넓은 용서가 있습니다. 이 피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역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예배의식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잘 짜인 교리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희생적인 봉사가 있고, 때로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헌신도 있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삶의 변화를 경험하며 인생의 가치를 깨닫고 인류를 위해 훌륭한 업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에게는 피가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담아내는 피흘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생명이 없습니다. 피 없이 드리는 어떤 것도 우리 하나님께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내 마음에 피가 없다면 나의 모든 신앙의 행위는 무익한 것입니다. 피 없이 드리는 기도, 피 없이 부르는 찬송, 피 없이 올리는 헌금이나 봉사는 하나님의 관심을 결코 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은 온통 피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든 제단 위에 뿌려진 수많은 피들과 거기 관련된 기록들은 성경 한 두 장에서 발견되는 사건을 과대포장한 것이 아니라, 창세기 초두에서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매 페이지마다 굽이굽이 흐르는 피흘림의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피의 믿음입니다. 이 피는 믿는 자 모두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피입니다. 

오늘 오이코스 초청 잔치 주일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처음 오신 여러분은 아직 죄의 속박이나 마귀의 굴레에 대하여 잘 모르실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 모두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자유함을 누리게 하는 유일한 비결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피흘림의 역사에 정통해야겠습니다. 이 피가 구속의 피요 구원의 피인 것을 확신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 피의 능력을 소유하여 능력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런 은혜가 회중 가운데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1. 보혈의 역사성

18절=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첫 언약, 즉 구약의 언약들은 모두 피로 세워진 약속들입니다. 언약의 역사가 장구한 것처럼 피의 역사 또한 길고도 깁니다. 자신의 피를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구약의 전 역사를 통하여 한치의 착오도 없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인류에게 완벽한 거주 환경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아담 부부가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겨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히셨고, 이때 흘렸던 짐승의 피로부터 피흘림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에서 쳐죽여 피를 뿌린 사건은 죄에 노예된 인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살인사건 후 가인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물었을 때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고 대답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준엄하게 선언하십니다. “네 아우 아벨의 피가 내게 호소하느니라”

여러분! 피에는 호소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의인 아벨의 피는 하나님께 호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호소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수백년이 지난 후, 하나님의 사람 노아는 홍수 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짐승의 피를 뿌려 향기로운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달게 흠향(歆饗)하시고,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 즉 ‘보존의 언약’(the covenant of preservation)을 주셨습니다.

다시 수백년이 흐른 후,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은 언약의 명령에 따라 본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피흘리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를 달게 흠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난지 8일 만에 양피를 잘라 피를 흘리는 할례 의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동안 이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의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오는 도중에, 아들을 할례주지 않은 관계로 죽을 뻔한 사건은 피흘림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 피들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독생자가 흘릴 피를 상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장 그리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피의 역사는 길고도 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어린양을 준비하되 흠 없고 1년 된 수컷을 유월절 밤에 잡아 그 피를 대문의 인방과 설주에 바른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죽음의 천사로 하여금 피가 발린 집을 유월하도록(pass-over)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피뿌림을 통하여 하나님과 시내산 언약을 맺었습니다. 

19-20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그리하여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은 성막을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며, 속죄제·속건제·화목제 등의 피뿌리는 제사를 수없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 앞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피흘리는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적 진지를 마주하면서도 위험천만하게도 전쟁 준비가 아닌 할례를 받고 온 백성이 며칠 씩 드러누워 있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한 이후 여러 사사들과 제사장들은 제단 쌓기를 계속해야 했고, 피뿌림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다시 수백 년이 지나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이어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성전을 짓는 큰 일을 시작하여 마침내 성전을 준공하는 낙성식에서 제물로 사용된 소와 양(羊)이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나십니까? 

소가 22,000마리, 양이 12만 마리나 되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너무나 낭비가 큰 것 같습니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준비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대리석과 백양목으로 아름답게 지어진 금빛 찬란한 성전을 생피 냄새가 코를 찌르고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아수라장의 장소로 만들면서까지 피의 강물을 이루게 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피들은 독생자의 피를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린 ‘언약의 피’는 그로부터 1500년 후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친히 흘리신 보혈을 통하여 완성되었습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 보혈!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엄청나게 흘려졌던 모든 짐승들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성막과 성전에서 강물처럼 흘렀던 생축의 피들은 예수님의 피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기나긴 기다림의 역사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 값을 모두 치루시고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셨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케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피의 역사가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하는 메시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독생자의 언약의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하여 그토록 오랜 기간을 참아 오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동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보혈은 구속(救贖)의 피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성전에서 제사의 일을 하는 아론계 대제사장들은 1년에 한차례 (7월 10일) 지성소에 들어갈 때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갔습니다. 송아지 피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염소 피는 백성을 위한 속죄물이었습니다(레 16:11-15). 그리고 그 피의 제사는 해마다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 피가 온전치 못함을 보여줍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께서는 짐승의 피 대신에 자기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의 제사는 단 한번으로 끝났습니다.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곧 단 한 번의 제사로 인류의 속죄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피가 완전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속죄양도 되십니다!

여기 ‘속죄’(뤼트로시스)는 속전을 받고 풀어주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서, ‘구속’(redemption), 또는 '속량‘(a ransoming)으로 번역됩니다. 

또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오직 단 한번만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즉 더 이상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주님의 제사는 영원하고 완전한 속죄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영원한 구속의 대업을 성취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보혈은 인류의 죄값을 치루신 구속의 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서 영원히 하나님께 드리셨고, 따라서 믿는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죄의 저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속의 피에 힘입어 마귀의 정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주님의 보혈은 믿는 모든 자에게 무한정으로 미치는 축복과 능력의 원천입니다.

11-12절=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다시는 짐승의 피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피를 쏟으심으로써 완전하면서도 영원한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는 어느 날 밤 자신의 죄 때문에 참으로 아픈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천사를 보았는데, 그 천사는 커다란 흑판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흑판 위에는 마틴 루터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천사가 그의 모든 죄를 낱낱이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죄목들이 너무 많고 지극히 무서운 것들이어서 루터는 자신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가 절망 가운데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열거된 죄목 위로 한 손이 나타나 이렇게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루터가 놀라움으로 그 손과 기록하는 말씀을 지켜보고 있는데, 대못에 찔리운 그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 흘러내리고 모든 죄의 기록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깨달았고 활개치듯 기쁜 마음으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으로 그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카톨릭 세력에 대항하여 95개 조항을 들고 용감히 일어섰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주님은 피흘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만일 주님의 피흘림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요 우리의 모든 예배나 선행도 헛것이 될 뻔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피흘림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이름 없는 시골 나사렛에서 자라나 33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사시다가 사형수로서 나무에 달려 피를 뿌리며 죽어가신 그분!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만 사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신 죄 없으신 그분!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인간들이 투표하여 주님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유력한 자들이 모여 그분을 주님으로 추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스스로 자원하여 자신의 물과 피를 쏟으셔서 모든 것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 때문입니다. 피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신 가치가 얼마나 엄청난지요. 하나님은 독생자의 목숨과 우리의 목숨을 맞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계 5:9,10=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신 것입니다.

“나를 피로 사셨다!” “나를 피로 사셨다!”

우리의 평생의 간증이요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처음으로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피를 본 자들입니다. 단순히 33세 젊은이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피를 맛본 자들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단 한번 역사의 무대에서 흘려진 피 -- 그러나 그 능력과 효력은 영원히 지속되어지는 주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마신 자들을 성경은 ‘성도’라 부릅니다.

이 보혈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 보혈을 마신 자들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죄의 오염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 보혈이 우리를 의롭다 칭함 받게 해 줍니다. 이 보혈의 능력이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로부터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이 보혈을 힘입어 우리는 병자를 위하여 치유기도 할 수 있고, 이 보혈을 가지고 주님의 지성소에 나아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의 생명수 강가에서 주님의 보혈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의 보혈을 체험해 보았습니까? 이 위대한 보혈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에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으라!”

먼저 나 자신이 주님의 피에 적셔져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깊이 묵상하며, 그의 피에 나의 허물과 죄악을 씻어버려야 합니다. 나의 고집과 고질적 병폐들을 씻어버려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예수의 피에 내 자신을 흠뻑 적시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다는 것은 피의 능력을 힘입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피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피 냄새가 낭자하게 나는 곳입니다. 사랑의 피, 희생의 피, 헌신의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입니다. 피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는 자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에 피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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