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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이 가진 예수님의 흔적 (갈 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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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가진 예수님의 흔적 (갈 6:11-17)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오늘 말씀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으로 인해 생겨나는 상처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했습니다.

1세기에 사용되던 ‘흔적’(痕迹, 스티그마)이란 단어의 배경을 살펴보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로마나 헬라 사회에서 노예제도가 보편적이었는데, 노예들의 이마에 주인의 이름을 화인으로 만들어서 찍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그 노예가 상전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표시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배경은 로마의 군인들이 자기 사령관의 흔적을 이마에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사령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표시가 되겠습니다.  

또 다른 배경은 당시에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 박해받는 사람이 로마의 신전에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되면 신전의 흔적을 이마에 받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나 함부로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처음 부름받았을 때의 사건 때문에 일생동안 눈병으로 고생했다는 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기까지 했는데 그때 받은 상처라는 설, 또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여러번 맞았다고 했는데(고후 11:24) 이때 생긴 매 맞은 자국이라는 설 등입니다.

재미 있는 것은 원문에 보면 ‘흔적’이란 말이 단수가 아니고 복수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것들을 모두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예수님이 바울의 몸에 쳐주었던 흔적과 더 나아가 믿는 모든 성도인 우리가 가져야 할 흔적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던 예수님의 흔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예수님의 소유된 표 

17절= “···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것은 바울 사도가 주님을 위해서 혹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바 자기 몸에 가지고 있는 흔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흔적’이라는 말은 고대 사회에서 주인이 노예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의 몸에 찍는 낙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예수의 흔적’은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표이며, 동시에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던 사도가 그로 인해 받게 된 핍박과 고난의 상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가 몸에 가진 예수님의 흔적은 그가 예수님의 소유된 표를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노라’고 고백하는 사도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받게 되는 핍박의 상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예수님의 흔적’이요 예수님의 소유된 표입니다.

일찍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본 그 순간부터 완전히 그리스도께 붙들린 바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점령을 당했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그의 마음 가운데 깊이 자리잡고 있어서 수시로 ‘나는 그리스도의 것’ 이라고 말해 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흔적은 예수님의 소유된 표입니다. 계시록 14장 1절에 보면 14만 4천명이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표를 이마에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계시록 13장 16절에 보면 적그리스도는 모든 불신자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 13:17-18=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어린양의 표가 있고, 짐승의 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표 아니면 마귀의 표인데, 우리 모두는 둘 중 하나를 택일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육체적인 그리스도의 표를 가지고 자신이 그리스도의 소유물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그리스도의 소유물’ 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매우 겸손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바리새적 교만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지만 은혜 받은 이후로 철저히 낮아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가문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갑니다. 과거 상민들은 아무리 머리가 좋고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출세를 할 수 없었습니다. 양반이어야 과거도 볼 수 있고 출세할 수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양반의 가문의 표를 가지고 넉넉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좋은 학벌이 일생을 따라옵니다. 나라의 장관이 되고 숱한 자리에 들어가도 학벌은 계속 따라옵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등, 학벌의 흔적이 뒤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는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최고의 학문을 습득한 인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엘리트 표’를 가지고 기세좋게 기독교를 박해하며 이를 뽐내며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부터는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 속에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모든 것을 분토로 여겨 버렸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고, 이 사실만 자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 또한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의 왕좌에 모시겠다고 고백한 사람들 아닙니까? “나는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몸에는 예수님의 소유된 표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이 부여하신 거룩한 사명 

17절= “···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흔적’은 예수님의 소유된 표일 뿐 아니라 예수님이 그에게 부여하신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일꾼된 표를 지니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소유물이 된 동시에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있던 바울에게 경건한 성도 아나니아를 보내시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성도 여러분! 조금 전까지 비방자요 박해자였던 바울은 이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받았고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이방인의 사도라는 엄청난 직분을 받았습니다.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면 당연히 사명이 주어집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에게 사명이 없을 수 없습니다. 참된 사명과 구원받는 도리는 이처럼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님 주신 거룩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사의 사명을 부여받았는데, 그는 자기 몸에 지닌 그리스도의 흔적을 대사의 신임장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에 대사를 파송할 때 신임장을 발급하는데, 주한 미대사는 한국대통령에게 이 신임장을 반드시 제시해야 합니다. 신임장에는 ‘이 사람은 내가 신임하는 나의 사자입니다. 잘 대접해주십시오’ 라는 내용의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흔적’은 그리스도의 대사의 신임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가진 예수님의 흔적은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택하셔서 주님의 대사로 삼으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으로 삼으셨다는 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는 일생동안 주님이 부여하신 거룩한 사명을 목숨처럼 아꼈습니다. 그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사명의 내용에 대하여도 많은 연구를 한 사람입니다. 

사도가 기록한 많은 서신서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가 단순히 일만 열심히 한 일꾼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한 사람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인 로마서에는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게 되는가를 상세하게, 논리 정연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에 보면 그리스도론을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고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보십시오. 거기에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에 보면 세상의 종말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음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사도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삶을 훌륭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사명감에 투철했을 뿐 아니라 사명의 내용에도 정통한 참일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참일꾼이십니까?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자신이 맡고 있는 사명에 대해 전문가적인 지식과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반대자에 대한 바울의 답변 

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 사도가 ‘예수의 흔적’을 들고 나온 것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반대자들에 대하여 대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시 그를 천사처럼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이 떠난 후에 그들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떠나서 율법주의로 다시 돌아갔고,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반대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즉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갈라디아서)에는 이신득의의 진리를 강조하고 있고, 자신의 사도권을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여,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내가 전한 복음이 진짜니 가짜니 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바울이 사도냐 아니냐 떠들지 마십시오. 그런 말도 되지 않은 것으로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확고한 예수님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는 자신의 반대자들에 대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흔적’을 제시하며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 흔적은 이제 고난과 박해에 대항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이 많고 인내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사명 수행을 위해서는 용감하게 박해에 맞서는 용기 있는 일꾼이었습니다.

박해 세력을 만날 때 성도가 취하는 태도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핍박에 굴복해서 믿음을 버리고 배교하는 태도입니다. 둘째는 비겁하게 도망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굴복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대항해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태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핍박과 고난 앞에서도 결코 자신의 사명을 약화시키지 않고 담대히 십자가로 나아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요 확신입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에 한 때 북군이 매우 위기에 처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북군이 승리를 거두고 노예 해방의 찬란한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역사가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이 승리의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 관저에서 밤을 새워 곧잘 기도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기도 중에 부하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각하, 우리 북군이 이번 전투에 대패했습니다.” 

그때 링컨이 말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반드시 정의가 승리할 것이네.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이 정의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네의 사명을 다하게,” 라고 하며 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잠시 후에 그 부하가 다시 왔습니다. “각하, 방금 말씀드렸던 대패했다는 보고는 오보였습니다. 잘못 들어온 정보였습니다. 우리 북군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때도 링컨은 “자네는 자네의 사명을 다하라. 우리는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확고한 신념이 있는 곳에 승리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복음 전선에 나아갔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소유된 표요 예수님이 직접 부여하신 거룩한 사명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위협이나 박해 앞에서도 움추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당한 그리스도의 군사였습니다. 

여러분은 기독교가 우리 나라에 정착할 당시 받았던 박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일례로 고려신학교 학장이었던 한상동 목사님이 경남 고성군에서 개척 교회를 세웠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그 마을에 있던 유지들은 한목사님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예배 중 설교를 하고 있는데 담 너머에서 돌이 날아왔습니다. 돌은 마루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여기 저기에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매주일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한상동 목사님은 교인들을 방 안쪽에 앉히고 자신은 마루에 앉아 날아오는 돌을 등으로 막았습니다. 돌들이 날아와 목사님을 때렸으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끝까지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이 믿음으로 한 목사님은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에 반대하였고, 후일 한국교회의 사표가 되셨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손양원 목사님, 그가 여수에서 순교를 당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면서도 목사님은 군인들에게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인민군은 전도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면서 목사님의 입을 찢었습니다. 말을 못하게 해도 손 목사님은 고통가운데서도 계속 전도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총을 쏘았고, 목사님은 피를 흘리며 순교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총에 맞아 순교하신 터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손양원 목사님은 반대자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흔적은 증표(證票)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는 헤어질 때 자신의 사랑과 마음의 증표로 작은 거울과 가락지를 교환합니다. 그것들이 참으로 귀중한 것이 된 것은 거울이나 가락지가 비싼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증표가 상대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몸에 지니고 있던 예수님의 흔적은 예수님이 주신 증표였습니다. 그것이 눈병인지 매맞은 상처인지 혹은 돌에 맞은 것인 지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 흔적을 예수님의 증표라고 생각했고, 그로인해 그에게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 길에 자신의 동료들에게 그의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행 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람마다 다소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이 흔적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소유된 표이고, 그리스도의 일꾼된 증표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증표는 우리가 모든 어려움과 난관과 핍박에 의연히 맞설 수 있는 무기가 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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