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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기도하노라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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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도하노라 (빌 1:3-11)

지금 우리나라는 대선의 들뜬 분위기와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영합하는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하는 기회, 감사하는 기회, 복음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시간을 선용하기 위하여 애쓴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자신의 처지가 오죽했겠습니까! 

교인을 떠나있을 때 교인이 생각나고 보고 싶은 것은 목회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픈 행복입니다. 
저는 외국여행을 할 때마다 이 사실을 예외 없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멀리 떠나갈 때와 외국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보고 싶은 마음은 비례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빌립보에 있는 모든 교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편지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1:3).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옥중에서 생각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누었던 친밀한 교제 때문이었습니다. 간구할 때마다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이유도 복음을 위한 교제 때문이었습니다(1:5). 

이를테면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행했던 기도와 헌금이 복음 전파에 상당한 위로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전파의 격전지에서 애쓰는 사도 바울에게 빌립보 교인들은 구체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그들이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보낸 선물이라든지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한 것(롬 15:26; 고후 8:1-5; 9:13)은 복음 전파를 위한 거룩한 교제였습니다. 

목회자는 언제나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생각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들은 목회자의 면류관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해서 처음 사역이 시작될 때 루디아는 그의 집을 개방했던 잊을 수 없는 신앙의 동지였습니다(행 16:14, 15). 

사도행전 16장 14-15절에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감옥의 간수는 바울의 일행을 친절하게 영접했습니다(행 16:19-34). 그들은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시에 데살로니가(빌 4:16)와 고린도(고후 11:9)에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 편에 헌금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자신의 증인이라고까지 했습니다(빌 1:8).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이 같은 바울의 표현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자신도 빌립보 교인들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면 그리스도 예수께 받은 그 사랑으로 그들을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 사랑을 하나님을 두고 맹세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한 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롬 1:9, 고후 1:23, 살전 5:10). 
로마서 1장 9절에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3절에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0절에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선언했습니다. 

Ⅰ. 사랑의 진보를 위한 기도입니다. 

본문 1장 9절에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지금의 처지는 옥중에 있기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기도가 바로 사랑의 진보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1) 지식이 더한 사랑입니다. 
본문 1장 9절에 {…너희 사랑을 지식과…}라고 했습니다. 
여기 {지식}(에피그노세이, )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인본주의적이고 측은지심에서 나온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난 후에 나오는 사랑입니다. 

바울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한 그 사랑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입니다. 따라서 그들도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변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구속에 감격하는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2) 총명이 더한 사랑입니다. 
본문 1장 9절에 {…너희 사랑을…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총명}(아이스데세이, )은 '지혜로운 통찰력'이란 뜻입니다. 총명은 지각적인 통찰력과 도덕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바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총명한 것입니다. 총명한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의 지식을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안다는 것은 총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아는 체하지 않는 것은 더 귀한 총명입니다. 총명한 사람은 그 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점점 더 풍성하게 합니다. 


Ⅱ.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기도했습니다. 

본문 1장 10절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라고 했습니다. 
{선한 것}(디아페론타, )은 '탁월하다' 혹은 '최선의 것'을 의미합니다. {분별하며}(도키마제인, )라는 말은 '시험하여 증명하다'(고전 3:13; 벧전 1:7)는 의미합니다. 

따라서 {선한 것을 분별한다}는 말은 '중요한 것을 조심스럽게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것이 무엇인가, 뛰어나고 탁월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선한 행동을 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앞에서 보면 "선한 행동을 하라", "열심히 선을 행하라" 하고 나중에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은 추상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선과 반대되는 것이 악인데 그러한 사전적이고 개념적인 것보다는 '위선'僞善이라는 말이 더 합당합니다. 
'위선'이란 양심은 실제로 선하지 않으면서 행동은 선하게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좀 거칠게 말하면 선한 척하면서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오염되지 아니한 처음 마음입니다. 

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관련해서 창조된 모든 피조 세계를 가리킵니다(딤전 14:4). 하나님의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롬 7:12,13; 딤전 1:8). 
주의 규례는 바로 선입니다(시 119:39).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것을 선이라고 했습니다(롬 8:28). 선은 자기보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15:2). 

선한 일은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모든 것을 총칭합니다(딤전 3:1). 선한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딤전 4:6; 히 6:5). 
여호와 하나님은 선이십니다(시 135:3; 시 118:1; 시 100:5; 마 19:17; 막 10:18).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이라고 했습니다(눅 18:18; 요 1:4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선입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선입니다. 성도로서 그것에 합당한 일을 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분별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Ⅲ.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이 없기를 기도했습 니다. 

본문 1장 10절에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라고 했습니다
{허물 없이}(아프로스코포이, )란 말은 '손상되지 아니한' 혹은 '흠이 없는'이란 뜻입니다. 본래의 것이란 의미입니다. 

죄는 우리의 허물입니다. 불신앙은 허물입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받고 따르는 것은 허물입니다. 연약은 허물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허물입니다. 믿다가 떨어지는 것은 허물입니다. 환경에 굴복하는 신앙은 허물입니다. 믿음의 인내가 없는 것은 허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불신법정에 송사하는 것은 허물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7절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을 없이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7절에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욥기 14장 17절에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남을 용서할 때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사하여 주십니다(막 11:25). 허물은 죄입니다. 허물은 없이함을 받아야 합니다(창 50:17; 왕상 8:50; 스 9:6; 느 9:2; 욥 7:21; 13:23; 14:17; 시 1:4; 25:7; 32:1; 잠 10:12; 17:9; 사 43:25; 44:22; 겔 33:10; 미 6:7).
회개할 때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받습니다(마 3:11; 눅 5:32; 행 11:18; 욥 42:6; 시 7:12; 겔 18:30; 행 2:38; 계 2:5,16; 3:19).


Ⅳ.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위해서 기도했습 니다. 

본문 1장 11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했습니다(요 9:24; 롬 4:20; 고전 10:31; 고후 4:15; 딤후 4:18; 계 11:13; 14:7; 마 9:8; 15:31; 눅 2:20; 5:25; 7:16; 13:13; 17:15; 18:43; 23:47; 행 4:21; 11:18; 21:20; 고전 6:20; 고후 9:13).

의의 열매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의의 열매는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의의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 열매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고 그에게 찬송을 돌리는 것입니다(롬 11:36; 고전 10:31; 시 73:24-28; 요 17:22-24; 마 5:16; 요 15:8; 17:4)(대요리문답 제1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은 그 기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교회의 2012년은 교회설립 23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금년 우리교회 제일 큰 추수감사는 등록교인 164명과 입교 10명, 세례 11명, 학습 10명과 세 분의 장로와 세 분의 안수집사와 네 분의 권사를 주신데 대한 감사입니다. 

영감 받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한 뜨거운 감사는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도 쉬지 않고 모든 성도들의 사랑의 진보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선한 것을 분별하여 그것을 이루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이 없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도 주님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여러분, 새로 임직을 받은 여러분, 우리 모두 이 기도에 힘입어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한 평생 기도하는 복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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