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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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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빌 1:3-11)
    
오늘은 만국성서주일입니다. 성경을 영어로 부를 때는 ‘Bible’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작하는 글자를 대문자를 사용하여 Bible이라고 합니다. 이 바이블이란 말은 ‘책들’이라는 그리스어 비블리아(biblia)에서 나왔습니다. 유대교의 경전(經典)을 가리키는 말인데, 성경전체를 바이블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와 종이가 있다는 것은 인류문명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종이를 만들면서 인류 문명은 획기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나무판(목판)이나 토기, 또는 양가죽이나 명주비단 같은 옷감위에 글을 썼습니다. 

종이의 어원은 파피루스(papyrus)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약5000년 전부터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유역에서 자라는 갈대 종류인 파피루스의 풀의 줄기 안쪽을 얇게 벗겨 가로로 펼쳐놓고 그 위에 다시 세로로 겹쳐놓고 이런 식으로 몇 겹을 펼쳐놓고 위에서 압력을 가하여 섬유질을 남작하게 맞붙여 종이를 생산하였습니다. 

종이를 영어로 페이퍼(paper) 독일어로 파피에르(papier), 스페인어로는 파펠(papel)이라고 하는데, 이 말들은 라틴어의 파피로스(papyrus)와 그리스어의 파푸로스(papuros)에서 온 말입니다. 성경을 바이블(Bible)이라고 하는 것도 그리스어의 비블로스, 비블리아가 변한 말입니다. 옛날 그리스인들이 갈대의 속대를 부블로이(bubloi)라고 불렀는데, 파피루스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책들 중에 그 책이요, 책들의 왕입니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전수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1885년 4월 5일에 한국에 프로테스탄트 개신교회 선교사가 첫발을 내디딘 날입니다. 인천 제물포항으로 장로교회의 언더우드목사와 감리교회의 아펜셀러목사님 부부 세 사람의 선교사가 내한하였습니다. 언더우드는 영국계 미국인으로 뉴욕 대학과 네델란드계 신학교인 뉴부룬스위크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그가 미국 북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오기 전에 1885년 1월 일본 동경에 도착하여 2개월간 체류하였습니다. 그 때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언더우드목사님은 이수정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들고 언더우드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의 손에 한국인이 번역한 성경이 들려 있었다는 것은 선교 역사에 드문 일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선교사가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고 그 후에 성경을 번역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한국 사람이 성경을 번역하고 선교사가 그 성경을 들고 들어와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수정대감은 12신사유람단으로 일본 가서 일본농업의 가장 훌륭한 학자인 쯔다박사를 통하여 예수님 믿는 복음을 전해들었고, 한국 사람들이 살 길은 성경을 갖는 길이요, 성경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경을 번역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으시는데, 성경은 참으로 특이한 책입니다. 20여개의 직업을 가진 40명의 기자들이 1600년 어간에 걸쳐 각기 서로 다른 10개 국가에 흩어져 살면서 3가지의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로, 2930명의 인물과 1551개의 지명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총 66권으로 1,189장과 31,173절로 되어 있습니다. 이 방대한 히브리 문학의 결정판인 성경은 문화양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산문, 시, 연애편지, 지혜문학, 전기, 과학, 역사 등으로 다양한 장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하나님이, 당신의 명령에 분순종하고 범죄하여 심판과 멸망에 처하게 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한 가지 계획 곧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구세주로 보내기로 약속하시고, 그것을 실행하여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교회가 가지고 있는 12신조의 1조에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리문답의 제1문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제2문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할 것인가를 지시하시기 위해 주신 법칙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신구약 성경에 간직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지시해주는 유일한 법칙입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제3문에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성경은 주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믿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칩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의 법칙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말씀을 강론하실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하였습니다. 

눅24:32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성서주일을 보내면서 우리에게 성경을 선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깨닫고, 생명을 주시는 말씀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 구원받은 감격으로 말씀대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라고 정해보았습니다. 

6절 말씀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하셨고, 10절 말씀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습니다. 처음 믿은 날, 5절 말씀처럼 첫날부터 이제까지, 그리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나아가야 하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였습니다. 이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가장 먼저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드로아 항구에서 아시아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아시아라고 하면, 그 아시아는 에배소를 중심도시로 하는 터키의 서부지방이었습니다. 아시아의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도 성령님이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보고는 마게도냐로 가기를 힘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유럽의 백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였고, 다음날 네압볼리로 갔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렀는데,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이 성에 머물면서 두아디라 성의 자색옷감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고 하는 한 여자를 만나서 그 집에 유하면서 복음을 전하여 빌립보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유대인의 회당이 없는 것을 알고, 안식일에 강가에 나가보았더니 앉아 있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거기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16: 15에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겨우 한 사람에게 전도했는데, 그가 자기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고 싶거든 자기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처음부터 이렇게 봉사하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래서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교회는 처음부터 자립하려는 교회였고, 바울의 선교에 여러 번 도움을 주었던 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의 선교에 큰 힘이 되도록 물질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4:15-16)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는 신앙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예수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이제까지도 잘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으며,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였고 분별력이 있고, 허물이 없이 진실하게 살아가며 의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날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5-6)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하고 협력하면서 우리에 복음이 들어온 날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가장 착한 일, 복음을 위한 일에 협력하면서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참여한다는 말은 ‘코이노니아’라고 하여 이 말은 참여한다. 교제한다, 협력한다는 말입니다. 빌립보교회와 성도들은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하고, 또 복음전파하는 사도바울을 도와서 재정적으로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것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믿어두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한 집안의 자식이라고 하면 우리 집안 식구라는 것으로 충분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재산을 받는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집안일에 앞장서서 일하고, 좋은 가문을 이루고, 입신양명하기 위하여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교인이 되었는데, 일생 구경이나 하고, 앞장서서 일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하면, 그는 우리 교회의 교인이 아닙니다. 협력하고 참여하고, 동참해야 교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천국의 확장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어야 그가 진정한 교인이요, 천국시민이 됩니다. 

빌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에 동참하라고 하십니다. 

골1:24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체에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내 육체라고 하면 몸 바쳐 헌신할 수 있어야 하고, 물질적으로도 한 짐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나와 상관이 있느냐, 목회자의 책임이고, 장로의 책임이라고 하시면 직무를 유기하시는 일입니다. 초신자 보다도 못한 중직이 있을 수 있고, 중직 못지않게 자기의 책임이라고 하시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다시 지으신 사람,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마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열려져 있습니다. 들어가 차지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에는 직분을 가지고 서지 않습니다. 오래 믿었다는 연조 가지고 서지 않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들이 들어가고 차지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모하고 있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은 다시 오시는 주님의 날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서야 하는 날입니다. 


2. 그리스도의 날까지 사도의 협력자로 살아야 합니다. 

7-8절입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갑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옥에 갇히면 위하여 기도합니다. 음식을 넣어드립니다. 바울이 선교합니다. 그러면 바울을 협력하여 재정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바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성도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주의 종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 가르침에 순종하면서 살았습니다. 

히13:17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3. 그리스도의 날까지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9-10절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지식과 모든 총명 그것은 지혜입니다. 이런 것으로 더 풍성하게 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야 하고,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흠 없는 정결한 처녀와 같이 주님을 사모하며,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내가 좋은 것은 취미생활이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면 그것은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 서시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우리는 순결하고 흠이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그래도 너의 길을 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북미대륙에 살던 많은 인디언들이 남기고 간 삶의 메시지요, 지혜였습니다. 저자인 조셉 부루착이라는 분은 1942년 뉴욕에서 태어났는데, 아베나키 인디언의 혈통을 지닌 북미 인디언 후손이었습니다. 현재 작가로 편집자로 활동하는데, 인디언을 소재로 하는 소설과 그림책을 60여권을 집필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숙한 지혜, 해가 지는 쪽은 성숙한 지혜의 방향이다. 일몰의 시간은 책임과 반성의 시간이며, 배우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다.”라고 합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이 12월, 하루의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일몰의 시간, 책임과 반성의 시간, 배우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인디언들도 하루를 마치는 시간, 한 해를 마감하면서 서쪽에 서서 성숙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4. 그리스도의 날까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흠없이 깨끗하게 살고, 의의 열매를 맺으려고 힘쓰고, 그러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찬송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시베리아 한 마리의 흑 곰이 순백의 남극 곰에게 검은 털이 더 따뜻하니 검정색으로 염색을 해보라고 했답니다. 남극의 곰은 아름다운 흰털을 검정색으로 염색을 하고 나니 좀 더 따뜻해보이고 좋았습니다. 얼마 후 사냥꾼이 남극 곰을 향해 달려오자 남극 곰은 평소에 하던 것처럼 잽싸게 눈과 얼음 사이에 숨었습니다. 전에는 그러면 사냥꾼이 눈과 얼음과 곰의 몸을 구별하지 못하고 순백의 흰곰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극 곰은 흰 눈과 얼음 사이에 검게 드러나고 있었고 결국 사냥꾼에게 붙잡히는 불행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드러내놓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를 악한 유혹으로부터 지켜주고 하나님 앞에 세워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의의 열매 맺는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제대로 믿고, 확실히 믿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들이요, 시대를 역행하여 거슬러 올라가는 살아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사도의 협력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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