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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할 원수를 찾는 믿음 (삼하 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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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다. 성령 충만한 삶은 성령의 열매로 알 수 있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인 것이다. 그 성령의 열매의 첫 번째는 사랑이다. 즉 우리는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권력을 잡으면 당장 자기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보복을 하는 것을 본다. 권력을 잡기 전에는 자기는 절대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막상 권력을 잡으면 생각이 달라지는지 약속대로 하지 않는다.

다윗은 오랜 기간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고통을 당하다가 왕이 된 사람이다. 다윗에게는 정치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도 있었고 대상도 있었고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다른 쪽을 택했다.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한 므비보셋
사울왕의 아들인 요나단의 아들로 태어난 므비보셋은 어릴 때부터 불운한 인생이었다. 므비보셋이 다섯 살 때에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했다. 그러자 왕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 떨면서 모두 도망쳐야 했다. 블레셋 족속이 왕궁으로 쳐들어올 수도 있었고 또 사울이 그렇게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왕궁으로 쳐들어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므비모셋의 유모는 어린 므비보셋을 업고 허겁지겁 도망을 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어린 왕자는 두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급히 도망치는상황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서 뼈가 붙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평생을 두 발이 불구가 되어서 살아야 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왕족인 줄도 모르고 유모의 품에서 자라다가 장성해서야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어릴 때에 자신의 인생에 일어났던 일들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다윗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윗만 아니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왕궁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다윗은 두려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다.

사랑할 원수를 찾은 다윗
오늘 본문은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고 므비보셋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그가 살고 있는 로드발에 왔다. 그리고 그에게 다윗왕이 예루살렘에서 그를 찾는다고 전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므비보셋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가지 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다윗이 사울 집안의 남은 자손들을 찾아내어 죽이려고 한다고 말이다. 다윗이 전에 사울에게서 하도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장차 반란의 불씨가 될지도 모를 요소를 찾아내어 없애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래서 그가 다윗 앞에 섰을 때에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맞이하는 다윗의 태도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다윗은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었다. “므비보셋.” 그리고 그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그에게 모두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다윗왕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6,7절) 그를 철저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왕족으로 대우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므비모셋으로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과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언제나 원망과 불평과 절망과 좌절 속에 살아왔다. 그의 인생에는 아무런 희망과 기대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다윗왕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 다윗왕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불려온 것이었다. 그로서는 전혀 꿈조차 꿀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이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다윗은 어느 날 그가 생명처럼 사랑했던 요나단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요나단을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와 약속했던 일들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사울의 공격에서 그를 지켜주고 또 피하게 해준 것이 요나단이었다. 이 때 다윗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요나단과의 의리를 지킬 것이며 그의 자손들에게도 같은 사랑을 베풀 것을 엄숙하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 둘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 그들의 우정이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지게 하자고 굳게 약속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사울의 후손 중에 남은 사람이 있는가를 찾았고,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를 통해서 요나단의 아들 중 하나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다윗은 즉시 사람을 보내서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게 하였고 이제 그가 지금 다윗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므비보셋은 자기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과의 깊은 우정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맺었던 약속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런 다윗의 행동과 대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전에 요나단에게서 받았던 아름다운 사랑을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 그 사랑을 그의 아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사랑받는 사람으로 서 있는 것이다.

사무엘하 8:15에 보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했다”고 했다. 모든 나라 일을 공평하고 의롭게 즉 공평정대하게 했다는 것이다. 사울왕 때에 아무 기준도 없이 마음대로 정치를 해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었으나 이제 다윗이 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바로잡고 제대로 세워 놓았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만으로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공평과 정의만 가지고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사랑이다. 그래서 다윗은 공평과 의로 다스리는 왕인 동시에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므비보셋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헤세드(chesed)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무한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완성과 조화가 이루어졌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과 불의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죄인을 사랑하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기 원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에 선지자들을 보내서 그들의 죄악을 날카롭게 지적하시고 심판을 경고하시면서 동시에 회개를 촉구하시면서 구원과 회복을 약속해 주시곤 했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권력과 힘을 한 손에 쥐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주시면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물으신다.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움직여 나가는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물으신다. 그리고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신다. 내게 주신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힘과 권력과 물질로 사람들을 누르고 살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며 살 것인가?

다윗이 왜 사울의 자손이 남아있는가를 찾았는가? 1절에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을 정확하게 해석해서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 “내가 사랑하려고 하는데 원수의 집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가? 내가 사랑할 원수가 남아 있는가?” 그는 자기가 사랑해야 할 원수를 찾고 있었다. 그는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해졌을 때에 자신의 삶을 즐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할 방법을 찾았고 사랑할 대상을 찾았다. 그는 요나단에게서 받았던 사랑과 그와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원수의 집안 중에서 사랑할 대상을 찾았던 것이다. 만약에 요나단의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남아 있었더라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다윗은 두려워 떨고 있는 므비보셋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 내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자주 나온다. 하나님께서 또 예수님께서 자주 그렇게 말씀하셨다. 왜인가? 우리는 자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보다 힘이 세고 가진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떨고 걱정하게 된다. 그들에게서 무시를 당하고 공격을 받고 비난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방어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다윗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므비보셋처럼 하나님 앞에서도 두려워 떨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를 감시하시고 책망하시고 훈계하시고 벌주시는 무서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윗이 므비보셋을 무조건 받아주고 그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을 무조건 받아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증거로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고 했다. 우리는 므비보셋처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다윗이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므비보셋을 사랑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므비보셋의 아버지인 요나단에게서 크고 깊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 사랑을 갚을 기회도 없이 요나단을 그만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받은 큰 사랑을 갚기 위해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사랑한 것이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과 4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다. 

다윗이 요나단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갚기 위해 원수의 후손인 므비보셋을 무조건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으면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갚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특히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

다윗은 사랑할 원수를 찾았다. 우리도 막연하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아멘 하고 지나가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내가 사랑할 원수를 찾아야 한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직접 만났고 직접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막연하게 원수의 후손들에게 잘해주라고 하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 사람을 찾아 사랑한 것이다. 그는 므비보셋을 보고 사랑할만한 사람이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사랑했다. 그의 외적인 조건이나 성품이나 반응 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랑했다.

우리도 사랑할 원수를 찾아 나서자. 그를 가서 만나자.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 나를 괴롭히고 해를 끼친 사람이 누구인가? 오늘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 그리고 그를 찾아가자. 그리고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울 집안의 재산을 돌려준 것처럼, 실제적으로 사랑을 실천하자.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이다.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한 다윗
므비보셋은 다윗의 원수였던 집안의 자손이었지만 항상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왕족으로서의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는 다윗으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으며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면 이런 다윗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그 사랑 때문에 사람이 달라졌을까? 아니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윗의 사랑을 위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여전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지는 않았을까?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자신을 감시하려고 묶어둔다고 생각지는 않았을까? 물론 성경에는 므비보셋의 반응이나 변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원수에게 사랑을 베풀 때에 어떤 반응이 올까? 과연 그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에 녹아지고 달라지는가? 아니면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변하지 않아서 실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때에 반드시 감사의 말을 듣거나 어떤 보답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이용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그런 일을 당하셨던 것을 기억하라.

오랜 후에 다윗이 므비보셋의 마음과 생각을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급히 도망갈 때의 일이다. 사울왕의 종이었다가 므비보셋을 섬기게 된 시바라는 종이 다윗과 그 일행에게 떡과 과일과 포도주를 잔뜩 갖다 주었다. 그래서 다윗이 므비보셋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시바는  “그가 이 기회를 타서 이스라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한다”고 반역을 일러바쳤다. 그러자 다윗은 “그러면 므비보셋의 재산을 네가 다 가지라”고 말하고 피신을 했다.

그런데 압살롬의 반란이 평정되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이번에는 므비보셋 자신이 헝클어진 모습으로 다윗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도 다윗을 따라 나서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자기 종 시바가 자기를 배신해서 잘 걷지 못하는 자기를 내버리고 가는 바람에 꼼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분명 다윗 대신 왕이 되려고 모의했던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면 시바의 말과 므비보셋의 말 중에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의 말은 진실이 아니고 거짓말이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대부분 두 사람을 대면시켜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윗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그는 므비보셋에게 그 일을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재산을 시바와 나누어가지라고 하고 다시 그를 받아들인다. 

다윗의 사랑은 배신과 무책임 그리고 거짓말과 위선까지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사랑에 감사하든지 안하든지, 심지어 자신의 사랑을 배신했을 것 같은 의심이 들 때에도 여전히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당했을 때에 분명히 잘잘못을 가려주지 않으면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 분명히 잘못한 사람은 가려내서 벌을 주거나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그냥 양쪽 사람을 다 받아주시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만약에 지금 그가 잘못했다고 그를 버려야 한다면, 다음에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에 나도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참된 사랑은 반응과 보상과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그가 사랑할 만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찾아서 사랑하는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숨이 넘어가시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을 때에 이중적이고 모순된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이대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원수를 사랑하고 죄인을 용서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원수를 사랑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인을 용서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미워하고 정죄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들으라고 주신 것이다.

요한일서 3장에 의하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 중에서 특별히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 즉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기도가 응답된다. 내가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응답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신앙은 관계의 회복이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무너지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들로서 이 사랑을 전하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구하고 그렇게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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