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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산의 부흥회 (눅 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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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의 부흥회 (눅 9:28-36)

우리 교회가 오늘 저녁부터 부흥회를 시작합니다. 오늘 저녁부터 시작되는 부흥회가 이런 부흥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지금까지 부흥회를 하면서 부흥회의 여러가지 형태를 보았습니다. 

첫째로 거품 부흥회입니다. 거품이라고 하는 것은 막 끓어오를 때는 야단이 난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거품 부흥회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죽 쑤는 부흥회입니다. 거품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거품조차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용도 없고 그렇다고 뜨거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완전히 죽을 쑤는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세번째로 나팔 부흥회가 있습니다. 나팔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에 입을 대고 부는 부분은 아주 좁습니다. 그러나 점점 넓어집니다. 부흥회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시작 한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은혜가 깊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진리가 충만합니다. 부흥회가 다 끝난 다음에도 어찌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 부흥회는 두고두고 감사하고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고 말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변화산에서 부흥회를 할 때 예수님이 강사가 되시고 참석한 사람은 모세, 엘리야,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변화산에서의 부흥회의 모델을 생각해 보고 이번 부흥회가 이런 부흥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로는 기도하는 부흥회 (28) 

본문으로 돌아가서 28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신 후에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하신 후에 기도하셨고 또 함께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광이 나타나는 기도였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보면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밝히지 않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변화산에 무엇 때문에 올라갔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간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였다는 겁니다. 말씀하신 후에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또 말씀을 전하시기 전에도 기도하셨습니다.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5절 이하에서 문둥병자를 고치신 때의 기록을 보면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리 좋아도 기도부터 먼저 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상의 두 곳의 말씀을 정리해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기도, 그리고 말씀하신 후에도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 전에 기도, 말씀을 들은 후에 기도하라는 것을 명심하심 바랍니다. 말씀을 한번 들으면서 기도는 두번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을 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함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산으로 기도하러 가실 때 예수님 혼자만 가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세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뜻이 무엇입니까? 함께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께 기도하는 부흥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중에 천국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영광이 나타나는 기도였습니다. 말씀하신 후에 기도,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기도, 기도하는 중에 천국의 영광이 나타나는 기도, 이 세 가지의 기도가 변화산의 부흥회를 부흥회답게 만들었던 요소입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독교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는 기독교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 없는 기독교를 생각할 수 없다면 기도 없는 부흥회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변화산의 부흥회가 성공한 까닭은 기도하는 부흥회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기도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기도하셔서 이번 부흥회가 기도하는 부흥회로 성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제목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걸림돌이 있습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변화되는 부흥회 (29-31) 

부흥회를 하고 난 후에 하나도 변화가 없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부흥회를 하겠습니까?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밖에 몰랐는데 하나를 더 깨달으면 그것도 변화입니다. 부흥회를 하고 난 후에는 깨달음이 있든지 생활의 변화가 있든지 인격의 변화가 있든지 믿음의 변화가 있던지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변화산에서 주님을 중심으로 한 집회 즉 부흥회는 변화가 일어난 성공적인 부흥회였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9절에서 31절을 보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변화되었다는 내용이 분명히 나옵니다.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었습니다. 광채가 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겸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사람됨 즉 인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두가지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신성과 우리와 똑같은 인성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영과 육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변화산에 올라가기 전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사람됨 즉 인성만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변화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의 신성이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신성이 기도하는 중에 가시적으로 나타났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그리고 영광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그 때 당시로부터 1,500년 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죽은지가 1,500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1,000년 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분명히 살아서 변화산에 나타났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부활하여 모세와 엘리야 같이 썩지 아니할 몸, 영생하는 몸으로 다시 산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영광입니다. 

6·25사변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에 빌리그레헴 목사가 영국 런던에서 큰 집회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갔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숙녀 하나가 핸드백을 갖고 성경 찬송을 들고 교회로 열심히 갑니다. 그 숙녀의 뒤를 두명의 사나이가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숙녀가 앞쪽 자리에 앉았는데 그 옆에 사나이 둘이 앉았습니다. 빌리그레헴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숙녀 옆자리에 앉은 사나이 둘이서 왜 그렇게 열심히 비난을 하면서 수근거리는지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그렇지만 뭐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떠들고 열심히 비난하던 사나이들의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조용해졌습니다. 

빌리그레헴 목사가 설교를 마친 다음에 "예수 안 믿다가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 혹은 믿다가 낙심 중에 있었는데 오늘 나오신 분들 중에 다시 예수 믿고 새롭게 출발하겠다 다짐하실 분들이 계시면 일어나 앞으로 나오십시오.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나이 중에 하나가 벌떡 일어납니다. 일어난 사나이를 가만히 두면 앞으로 나갈 것 같으니까 옆에 있던 다른 사나이가 붙잡으면서 "너 왜 이래?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그러자 일어났던 사나이가 "나가려면 너 혼자 나가라. 너는 뒤로 나갈지라도 나는 앞으로 나갈거다"라고 합니다. 나가기는 나가는데 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갑을 하나 꺼내어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줍니다. 옆의 아주머니가 보니 자기 지갑입니다. 이 두 사나이는 숙녀 아주머니가 돈푼이나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쫓아온 것입니다. 부흥회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온 것입니다. 예배당에는 예배드리는 사람만이 오는 곳은 아닙니다. 도둑놈도 이 자리에 왔을런지 모릅니다. 

종종 여자분들이 가방을 도둑맞지 않습니까? 지갑을 내 놓고 앞에 나가서 "저는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예수님 믿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받습니다. 기도를 받은 다음 그 동안의 도둑질을 청산하고 빌리그레헴 목사를 따라 다니면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봉사를 했습니다. 변화가 되어도 완전히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 사람은 왔다가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옛날로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부흥회는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생각의 변화, 생활의 변화, 인격의 변화, 가정의 변화, 신앙의 변화가 있어야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흥회는 변화가 일어나는 부흥회였습니다. 이번 우리의 부흥회도 이렇게 변화가 일어나는 부흥회가 되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번째로 온전히 깨어나는 부흥회 (32) 

온전히 깼다는 말은 완전히 깼다, 혹은 잠이 깨끗이 달아났다는 뜻입니다. 아주 깬 사람은 다시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라는 말이 빠진 사람은 깼다가 다시 잠을 잡니다. 이런 사람은 보면 깬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깨지 않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아주 깨지 못한 사람들은 허튼소리를 하다가 다시 잠이 듭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2절을 보면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셋을 데리고 가신 이유는 함께 기도하자고 데리고 가신 것이지 잠 잘 곳이 없어서 잠자라고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다 함께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십시다. 세 제자가 여기 저기 뿔뿔이 흩어져서 기도했습니까? 함께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이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의 기도가 길어졌는지 졸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서 "졸다"라는 말은 사실상 깊은 잠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번역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그 말의 뜻은 깊은 잠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 중에 주위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을 것을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합니까? 그 이유는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사역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소리에 제자들이 깨어났습니다. 즉 주님의 말씀에 자던 사람이 깨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번 부흥회에 오시는 강사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예비해 두셨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신앙의 졸음을 졸던 성도들, 신앙의 깊은 잠에 빠진 성도들, 신앙이 병든 성도들이 아주 깨어 벌떡 일어나는 부흥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처음 플라스틱이 발명이 되고 그 상품이 개발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시장이 확대되어 나갈 때의 이야기입니다. 스텐리 템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청소년 때에는 아주 교회에 열심이었습니다. 스텐리 템이 장가를 들고 직장에 취직을 해서 돈에 눈을 뜨고 돈맛을 좀 알게되니 '돈을 좀 벌어야 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잘 믿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 돈을 좀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서기를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플라스틱에 손을 대면 돈을 좀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은 공장을 하나 차린 것이 점점 잘되었습니다. 죽을래야 죽을 짬이 없을 정도로 잘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와는 담을 쌓기 시작을 합니다. 사업에 열심을 내다보니 가정을 등한히 하고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못견딜 지경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붙들고 간청을 합니다. "당신이 돈을 적게 벌어도 좋습니다. 

옛날에 월급을 받으면서 가정생활에는 풍요롭지 못했을지라도 교회에 열심을 내고 봉사할 때 또는 가정에 충실할 때 그 때가 우리에게는 참 좋았습니다. 그러니 그때로 돌아갑시다"라고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간청을 듣지 않고 여전히 교회를 멀리하고 가정을 소홀히 합니다. 교회를 멀리하고 가정을 소홀히 할수록 사업은 더 잘되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이런 수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등지고 돈벌러 나가 보십시오. '이런 수도 있구나'라는 행운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가 던져주는 미끼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항상 잘되기만 합니까? 사업이 돌아가다가 한번 두번 어려움을 격기 시작하더니 부도직전에까지 몰렸습니다. 큰 변이 났습니다.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때서야 아내가 붙잡고 권면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기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끌려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날 낮에 본교회 목사님은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고 건너 가다가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주여! 주시어든 나를 걸어오라 하시옵소서" "그래, 걸어오라" 베드로가 걸어 가는 중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바다에 빠져갔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물에 빠졌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만 보입니다.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함께 배에 올랐고 배는 갈 곳 까지 무사히 갔다는 내용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지금 바로 베드로처럼 물에 빠진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때 "주님! 베드로를 붙잡아 주셔서 배에 함께 오르시고 갈 곳까지 함께 가신 주님, 나를 붙잡으시고 이 회사에 주님이 주인이 되셔서 함께 갈 곳까지 가 주십시오"라고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는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우리 회사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주식은 51%, 내 주식은 49%'라는 내용에 싸인을 합니다. 

누구의 주식이 많습니까?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라는 뜻입니다. 수입의 51%를 전부 하나님께 바치고 수입의 49%를 자기가 가졌습니다. 연말에 계산을 해 보았더니 수입이 많아졌습니다. 그 다음에 얼마나 사업이 잘 되는지 돈을 믿고 돈을 따라갔더니 돈이 부도를 냈지만 하나님 믿고 하나님 따라갔더니 하나님께서 불길같이 사업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거기서 신앙의 깊은 잠이 깨어났습니다. 잠자던 믿음이 아주 깨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졸던 믿음, 잠자던 믿음, 병든 믿음이 이번 기회에 아주 깨어나는 부흥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번째로 예수만 남는 부흥회 (33-36) 

본문으로 돌아가서 33절 이하를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혼동을 하여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예수님, 하나는 모세, 하나는 엘리야로 하여금 살게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도 모세도 엘리야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똑같이 보면 절대로 안됩니다. 이것은 잘 못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구름으로 완전히 가리우더니 구름 속에서 "사랑하는 내 아들 예수를 따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구름이 걷히고 나니 모세도 없고 엘리야도 없고 오직 예수만 남았습니다. 

이번 부흥회가 꼭 예수만 남는 부흥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담임목사를 바라다 볼 필요 없습니다. 강사를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강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아서 큰 은혜를 우리에게 배달해 주실 것입니다. 강사가 전해 주는 말씀만 남고 강사가 증거하는 예수님만 남아야 합니다. 이번 부흥회는 오직 예수만 남는 부흥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부흥회가 성공하는 부흥회입니다. 


결론입입니다. 변화산의 부흥회의 모델은 첫째로 기도하는 부흥회였습니다. 말씀하신 후에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영광이 나타나는 기도였습니다. 두번째로 변화되는 부흥회였습니다. 부흥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변화가 없는 부흥회는 아니함만 못합니다. 세번째로 아주 잠에서 깨어나는 부흥회였습니다. 믿음의 깊은 잠에서 아주 깨어나야 합니다. 끝으로 오직 예수만 남는 부흥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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