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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자식에게 보여라 (출 1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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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보여라 (출 13:17-22) 

제가 아주 좋아하는 가곡이 하나 있습니다. <바위고개>라는 노래입니다. 저는 그 노래를 매우 좋아하지만 잘 부르지 않습니다. 그 노래를 하다보면 노래 속에 있는 슬픔과 서러움이 제게 몰려와서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1절 가사는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여기까지는 슬프고 서러움이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데 3절은 서러움이 넘쳐납니다.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짖는다’ 얼마나 서러웠으면 그 예쁜 진달래꽃을 안고 눈물 짖겠습니까? 십년간의 머슴살이입니다. 아마 이 머슴살이 때문에 사랑하는 임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이집트의 학대가 심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하여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릴 정도였습니다. 그 노예 살이 기간이 무려 430년입니다. 얼마나 긴 세월 슬픔과 서러움 속에 살았겠습니까?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이 이스라엘이 드디어 이집트를 빠져나옵니다. 이를 가리켜 ‘출애굽’, ‘엑소더스’ 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감사했고 얼마나 감격이 넘쳐났겠습니까? ‘빠삐용’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빠삐용이 보트를 타고 가면서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까? 그와 같은 감격이 이스라엘 민족에 넘쳤습니다.

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하고 난 후에 두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그건 부탁이 아니라 지시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가게 되거든 첫 번째는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난 것은 전부다 나에게 돌리라고 말씀하셨고, 두 번째는 해마다 일주일 동안은 유교병을 먹지 말고 발효가 안 된 빵인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병은 먹기에 아주 딱딱한 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하시는 일들은 어떤 것이든 간에 항상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 살면서 내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또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나 또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처음 난 모든 것은 내게 돌리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출애굽할 때 이집트 사람들의 처음 난 것은 전부 다 죽었습니다. 사람의 처음 난 장자들도 다 죽었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도 다 죽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가축도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것을 죽지 않게 했고 지켜주고 살려주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발효가 된 빵인 유교병을 먹지 말고 무교병을 일주일 동안 먹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근원은 우리도 압니다. 출애굽할 때 이집트 사람들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므로 그들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탈출해야했습니다. 빨리 한 걸음이라도 더 멀리 가야하기 때문에 빵이 발효될 때까지 지체할 수 없어서 발효 시키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빵인 무교병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지시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그 맛없는 빵, 딱딱한 빵, 먹기 싫은 빵을 먹으면서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 ‘우리가 어떤 존재였던가? 우리는 본래 자유가 없고 내 인생, 내 가족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노예였고 종이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기적으로 해방시켜주셔서 자유하게 해주셨으므로 이제 자유인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 조상들은 그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처럼 그 자식들이 죽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을 따랐기 때문에 살아났고 자유인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도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길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들이 살아가는 길은 이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따라가면서 살아가는 길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맛있게 먹다보면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딱딱한 빵을 먹으면서 왜 이런 빵을 먹는지 생각하게 되고, 옛날 그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이스라엘이라는 존재는, 너희 기독교인이라는 존재는 본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베풀어준 그 구원의 일을 잊지 말고 일마다 때마다 기억하라, 자식을 낳을 때마다 기억하고, 자식이 자식을 낳을 때마다 기억하라, 즉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일을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십니다. ‘내 것이다 즉 아들도 내 것이고 가축들도 처음 난 것은 다 내 것’인데 이것을 바칠 때 짐승은 짐승 그대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께 바칠 수 없기 때문에 아들 하나에 돈 얼마로 계산하여 돈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속전’이라고 합니다. 또 일주일 동안 딱딱한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무교병만 먹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누룩이 든 빵은 일체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함께 주문하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집 문설주 그리고 이마에 또 손목에 붙여놓고 그것을 수시로 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7절 말씀에서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누룩을 일체 없애라고 말씀하셨고 9절에도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13절 말씀에서도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짐승은 짐승으로 대속하고 사람은 돈으로 대신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합니다. 역사적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왜 그런 것을 받으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첫째 짐승을 낳으면 양으로 대신 바치고 첫째 아들을 낳게 되면 돈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렇게나 받으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그러실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풍성하십니다. 전부 다 가지고 계십니다.

또 행사도 왜 그렇게 유별나게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도 추수감사절 예배라고 과일과 야채를 많이 가져다 두었는데 그냥 감사만 하면 되지 이렇게 해야 하는가? 예배드릴 때 어린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예배드리라고 하는가? 여기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념하고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셔야합니다.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냥 대강 한 번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은혜를 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항상 말로만 그치고 은혜를 너무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아픔이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해도 너무 하더라는 것입니다. 노예 살이 하던 사람, 머슴살이 하던 사람, 어디 가서 주인 얼굴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먹을 것도 없고 살 집도 없던 사람들, 할 일이 없어서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 병에 걸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날 것인가 한탄만 하던 사람들, 자식 문제, 경제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이 늘 끊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살게 해주시고 귀하게 해주시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도록 해주셨는데 이 은혜를 너무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들에게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부모들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해주었는데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살만하면 부모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부모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자기들만 생각합니다. 어릴 때 귀엽게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천 년 만년 함께 살 것 같은 아이들이 그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서글프고 가슴이 아픕니까? 

이 하나님의 아픔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이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1장 2절과 3절에서 하나님의 종 이사야를 통해서 탄식하십니다,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의 이 아픔, 하나님의 이 탄식을 들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하늘에게 들어라 땅에게 귀를 기울이라 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부모를 섭섭하게, 하나님을 서럽게 만들어놓고도 아무도 안 듣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시고 강조하시고 또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나의 그 은혜를 정말로 인정하고 기억한다면 기억하고 인정할 것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한 번 보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식들로부터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돈을 받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 내 은혜를 기억하느냐? 내가 여러분을 살게 해 준 것을 인정하고 있는가? 증명하라는 말씀입니다. ‘별것 같지 않은 일이라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에는 무엇이든지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기억하라! 어떻게 하든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알게 하고 거기에 더해 특별히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것을 보고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벽기도를 나가면 자녀들이 혹은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유별나게 교회를 다니는가? 그렇게 새벽에 나가 꼭 기도해야하는가?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가? 새벽에 가야만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는가?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4절에서 16절 말씀에서 말씀하십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 새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가르쳐서 보여서 알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보아야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해 달라’, ‘나를 인정해 달라’ 그렇게 자식들에게 가르쳐라, 바치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일까요? 하나님께서 인사를 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러실까요? 

하나님께서 기억되고 싶으시려고 그럴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땅에 사는 부모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가르치시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복은 아무에게나 주실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그 주머니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몸이, 인생이, 가정이 망가지기 때문에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게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시켜주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해주시고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셨고 주실 것은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받고 끝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받은 것까지 다 잃어버리고 다 날려버립니다. 이미 받은 것 위에다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받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좋고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아들도 좋고 딸도 좋고 손녀, 손자도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아들, 딸의 복입니다. 

교회 집사님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이십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은 유명한 대기업에서 부장을 끝으로 3년 전에 퇴직하신 분입니다. 그 집사님이 보시기에 그 분은 능력이나 성실성으로 보나 충분히 임원 승진을 할 수 있는 분인데 아쉽게 부장을 끝으로 퇴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은 퇴직 후에 자전거 수리 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딴 후 한강 고수부지에서 자전거 수리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부장까지 한 분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생각했지만 그 분은 그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 다니던 회사에서 상무자리를 줄 테니까 준비 되는대로 회사에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회사 다닐 때에도 임원승진을 하지 못한 채 결국 퇴직했고, 지금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임원을 승진하지 못하고 퇴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3년이나 지난 지금, 옛날 직책이 아니라 이사를 뛰어넘어 상무를 하라고 하니 믿기지 않아 꿈인지 생시인지 어안이 벙벙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회사에서 홍보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 회사의 홍보분야가 약해지자 경영진에서 회의 후 구관이 명관이라는 결론을 내려 이 분을 다시 부르기로 했답니다. 그분은 이 나이에 임원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은 정말로 기적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집사님이 보시기에 그 분의 생활태도는 참 인상적이었답니다. 3년 전에 그 회사를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회사가 그 사람을 버렸다고 수군거렸지만 이 분은 한 번도 자기가 다니던 회사에 대해서 원망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서운한 말을 한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늘 마시던 물에 침 뱉는 격으로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분은 30년 동안 나를 회사에 다니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아이들 대학까지 다 잘 다니게 해준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제게 말씀 전하신 집사님은 마지막으로 덧붙였습니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이 3년 만에 승진해서 복직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결국 원망할 일, 불평할 일이 되돌아오게 되고 감사하지 못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돌아온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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