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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히 어렵도다! (욥 23:1-9, 16-17; 막 10:17-31; 히 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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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어렵도다! (욥 23:1-9, 16-17; 막 10:17-31; 히 4:12-16) 

<돈에 관한 예수님의 삼단계 대화>

오늘 제 설교의 주제는 돈에 관한 것입니다. 아니, 제 관심이 돈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읽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머니 머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는 말이 있지요. 돈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묘한 힘이 있지요. 그래서 수전노(守錢奴)라는 말이 다 있습니다.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도무지 쓰지 않는,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아셨기에 마 6: 24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신앙에 가장 무서운 도전이 맘모니즘(mammonism), 돈을 섬기는 배금주의 혹은 물질만능주의이지요.

오늘 봉독한 마가복음에는 세 단계의 대화가 나옵니다. 먼저 17-22절에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23-27절을 보면 이 부자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런 뒤 28-31절을 보면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인 베드로와 예수님이 나눈 결론적인 대화가 나옵니다.

대화 1: 부자청년과 예수님의 대화 

먼저 첫 번째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떠나실 때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태와 누가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건대 이 청년은 부자일 뿐 아니라 관원이었습니다(마 19: 20; 눅 18:18). 이 청년은 그야말로 젊은 나이에 돈으로나 권세로나 크게 성공한 엘리트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엘리트 청년에게도 영적인 허기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누리는 돈과 권세와 명성을 넘어서 영생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달려와 무엇을 해야지만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서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계명들을 지켰는지 물어보십니다. 질문을 받자마자 청년은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자기는 어려서부터 이 모든 계명을 다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유대인 가정에서 반듯하게 잘 자라난 청년이었지요. 사실 본문의 전후문맥으로 볼 때 이 청년은 부자가 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했기 때문에 젊은 날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하고 남들도 다 부러워하는 그런 청년상입니다.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괜찮아서 윤리 도덕적으로도 책잡힐 것이 없는 좋은 사람이지요. 

십계명을 다 지켜왔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청년에게 예수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2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계명을 잘 지켜오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청년을 예수님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셨습니다. 꾸짖거나 훈계를 하신 것이 아니라 그윽한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셨다는 것이지요.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누군가를 사랑의 눈길로 보셨다는 유일한 기록이 바로 여기 막 10: 21절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사랑하셨습니다. 반듯하고 모범적으로 자라나 누구나 부러워하는 엘리트 청년의 눈부신 성취를 예수님도 인정하셨다는 말이지요. 

인간성도 괜찮고 능력도 꽤 있고 모범적인 신앙 가정에서 자라나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는 이 청년을 그윽한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는 주님은 갑자기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이 말씀 한 마디는 돈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가 열심히 유능하게 일해서 벌어들인 돈은 당연히 나와 내 가족이 누리는데 써야 옳다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 청년 역시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고 남에게 해도 끼치지 않았으며, 부지런하고 뛰어나게 열심히 일해서 내가 번 돈은 당연히 내 것이고 나와 내 가족들이 누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볼 때 내가 벌어들인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것이요, 그 다음에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할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청년이 정말 영생을 얻기 원한다면 가장 먼저 재물에 대한 태도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만일 이 청년이 이런 자세로 자신의 재물을 다룰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금은보화보다 훨씬 더 찬란한 하늘의 보화를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아, 그런데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이 청년은 이 한 가지 부족한 것 바로 그것에 걸려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차마 예수님의 이 말씀만큼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하늘의 보화가 좋기로서니 그것 때문에 땅의 보화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 청년의 난감한 표정을 22절은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영생을 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직 그 많은 재산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 나중에 늙어서 기력이 떨어지면 몰라도 아직 앞날이 창창한 이 젊은 때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대화 2: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

이렇게 해서 대화의 장면은 다시 바뀝니다. 영생을 얻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아직 땅에 있는 자신의 보화 때문에 하늘의 보화를 얻을 준비가 안 되었기에 슬픈 표정으로 떠나가는 청년의 모습을 보신 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23-25절을 보세요.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우리가 재물을 포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재산이 많은 부자가 그 재산을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최지원장로님의 경우에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철원 땅 문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차례로 분배를 해줄까, 장로님이 장남이니까 장손인 당신의 자식들에게 물려줄까, 이리저리 궁리를 하시다가 앞뒤 재지 않고 우리교회에 기증하셨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낙타”와 “바늘구멍”을 말씀하실 때에는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짐승과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구멍을 대조시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구멍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영영 불가능하다는 말이겠지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연히 과장법이 섞인 표현이겠지만 우리가 세상의 재물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제자들이 이 엄청난 말씀을 들었을 때 너나없이 놀란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26절에 보면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27절을 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부자의 구원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가 됩니다. 부자가 자신의 재물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기에, 적어도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보다 물질이 더 큰 위력을 끼치는 우상이 될 소지가 있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으로 보건대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가 구원받는 기적은 가장 힘든 기적들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것, 나를 사랑하시는 것,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 다 내가 잘나서 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부자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 덕분뿐입니다! 


대화 3: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

이와 같이 부자의 구원 가능성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말씀하신 뒤 이제 대화는 마지막 결론부로 치달립니다. 언제나 충동적인 베드로가 나섭니다. 적어도 자기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자청년을 비롯한 그 어떤 부자와도 달리 세상의 모든 재물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웁니다. 

이 때 예수님 역시 베드로의 자화자찬에 긍정적인 대답을 주십니다. 29-30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여기에서 버릴 때 더욱 더 풍성히 얻게 되는 역설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재산뿐만 아니라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그것으로 끝나 아주 가난해지고 결핍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현세와 장차 오는 내세에 비길 데 없는 보상을 얻게 된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가장 귀한 것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포기한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보상을 받는데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습니다. 물론 “박해를 겸하여 받고”라는 조건도 붙지만 예수님 때문에 재산을 포기했다고 해서 영영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풍부해진다는 약속입니다. 

최지원장로님의 경우 그 금싸라기 같은 철원평야의 농지를 우리 교회에 기증하심으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육신의 혈육을 떠나 우리 교인들이라는 더 많은 형제와 자매를 얻었고 철원평야 수천 평의 땅과 비길 데 없는 하나님 나라 전체를 선물로 얻게 된 줄로 믿습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부자, 그 차이는?>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바로 앞에는 예수님이 어린 아이들을 영접하시고 어린 아이와 같아야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쉽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재물이 많은 부자는 들어가기 어렵고,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부자는 믿고 의지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쉽게 의지하지요. 어린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과 약점을 알기에 언제나 겸손히 의지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더 가깝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스키를 더 쉽게 배운답니다. 아이들은 스키를 배우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도무지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배우지만 어른들은 체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실수를 두려워해서 쉽게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돈이 많은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겠지만, 언제나 그 돈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해서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서 아내와 남편을, 심지어 부모와 자식들까지도 죽이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심히 어렵도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얼마나 어려울까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그만큼 돈의 위력이 무섭다는 이야기이고, 그만큼 우리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세 동의 건물을 지은 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야, 교회가 참 부자구나!”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지금부터 우리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난하고 쪼들리는 처지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건축을 하면서 생긴 부채를 빠른 시간 안에 갚아나가야 합니다. 그런데다가 비전센터와 십자가형예배당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예산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해야 합니다. 내핍과 근검절약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교회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남들은 화려한 건물만 보고서는 부자라 그럴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의 속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교회가 모든 부채를 청산할 때까지 저부터 근검절약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더욱더 매달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부자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소유가 내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께 바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데 있습니다. 다음 주일에 우리는 북녘동포를 돕는 NGO단체인 “함께 나누는 세상”과 협약식을 하면서 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1천만 원을 헌금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더욱더 많이 베푸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는데 오늘 저의 설교말씀을 듣는 분들 가운데에는 그런 분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세월이 갈수록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이제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기를 즐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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