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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는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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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골 3:15-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아침, 여기에 함께 하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기쁨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평화를 기원합니다. 

얼마 전, 제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 거울에 ‘행복해 지는 법’이란 제목의 글이 붙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나 자신을 위해서 꽃을 산다. / 2. 날씨가 좋은 날엔 석양을 보러 나간다. / 3. 제일 좋아하는 향수를 집안 곳곳에 뿌려 둔다. / 4. 하루에 세 번 씩 사진을 찍을 때처럼 환하게 웃어본다. / 5. 하고 싶은 일을 적고 하나씩 시도해본다. / 6. 시간 날 때마다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 만든다. / 7. 음악을 크게 틀고 내 맘대로 춤을 춘다. / 8. 매일 나만을 위 한 시간을 10분이라도 확보한다.

아파트 주민이 행복하기를 바람에서 이런 글을 붙여놓았을 것입니다. 누가 쓴 글인가 궁금하여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보았습니다. 같은 내용의 글이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위의 내용을 포함하여 13 가지를 적은 글을 발견하였습니다. 13 가지에는 위의 8 가지 내용 외에 5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8. 고맙고 감사한 것을 하루 한 가지씩 적어 본다. / 9. 우울할 때 찾아갈 수 있는 비밀장소를 만들어둔다. / 10. 나의 장점을 헤아려 본다. / 11. 멋진 여행을 계획해 본다. / 12. 내일은 오늘보다 무엇이 나아질지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13번째가 ‘나 자신을 위해서 꽃을 산다.

좀 번호가 이상합니다. 13 가지를 기록한 ‘나를 위해서’라는 글에서 마지막 13번째 ‘나 자신을 위해서 꽃을 산다.’를, 8 가지를 기록한 ‘행복해 지는 법’에서는 첫 번째로 올려놓았습니다. 사람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하나를 꼽으라면 우선적으로 무엇을 하시고 싶으십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골로새 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먼저, 15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5a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골로새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강[eijrhvnh/에이레네]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샬롬’입니다. 샬롬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히브리어입니다. 샬롬은 평화 또는 평강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을 사회적으로 사용할 때는 ‘평화’로,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는 ‘평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국가적이거나 사회적인 평화라기보다는 한 개인이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화이기에 평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샬롬’은 국가적으로 평온한 상태, 전쟁이 없는 상태, 개인 사이의 평화, 화합, 일치, 안전, 번영, 행복 등등으로 아주 폭 넓게 사용하는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인사할 때 ‘안녕!’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지금도 ‘샬롬’이라고 인사합니다. 물론 아랍 사람들도 발음만 조금 다르게 ‘쌀람’이라고 합니다. 서로 싸우고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모두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로 가득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장하게 하라[brabeuvw/브라뷰오]’는 말씀은 ‘지배하다’, ‘다스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다스리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마음이 미움과 원망과 다툼과 같은 것으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지배하도록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I. 평화를 누리십시오.  

‘평화를 누리라’는 말은 ‘행복하라’는 말로 바꾸어도 틀림없습니다. 평화를 누리는 백성은 행복한 나라입니다. 전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서로 싸우며 전쟁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바로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행복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음에 평화로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이는 행복해 지기 위하여 ‘날씨가 좋은 날엔 산책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적고 하나씩 시도해 보고, 시간 날 때마다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고, 우울할 때 찾아갈 수 있는 비밀 장소를 만들어 둘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행복해지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심리학자들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행복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마틴 셀리그먼 교수팀이 실시하는 ‘매일 세 가지 좋은 일 생각하기’ 실험은 그 한 예입니다. 실험에 참여한 동기부여 강사 캐럴라인 애덤스 밀러(44)는 매일 밤 그날 일어난 좋은 일 세 가지를 생각하며 왜 그것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실험에 참여하면서 그는 스스로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실제 행복감이 증진되는 효과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매일 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10∼20가지의 좋은 일을 생각하게 됐었다는 것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해지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자기 개발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일을 함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평화로 가득 차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무엇으로 말미암은 평화인가, 어떤 것으로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는가를 늘 점검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가득하기를 빕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평화로 가득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행복한 사람 되도록 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15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5b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오늘 말씀은 먼저 평화로 가득 찬 마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감사하는[eujcavristo"/유카리스토스]’이라는 말은 ‘호의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베푼 은혜를 잊지 않고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이 마음에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화와 감사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있는 평화도 사라지고 전쟁터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분명합니다. 마음에 평화를 누리는 길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II. 감사를 하십시오.  

감사, 은혜를 잊지 않는 감사가 우리의 마음에 가득할 때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이미 받은 사랑과 은혜를 자주 잊고 지냅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결국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일곱 금단지’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임금님의 이발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사단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게 황금이 일곱 단지 있는데 갖고 싶지 않니?”

이발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안 보이자 얼른 사단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갖고 싶고말고요. 주시기만 한다면야!”

“그럼 얼른 집으로 가봐. 광 속에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이발사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서 광을 열어보았습니다. 과연 자신의 광 속에 황금 일곱 단지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나씩 뚜껑을 열어보았습니다. 여섯 번째 단지까지 황금이 가득가득 차있었습니다. 이발사는 단번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단지가 반밖에 차 있지 않았습니다. 이발사는 반만 찬 일곱 번째 단지를 황금으로 마저 채울 궁리를 했습니다. 반밖에 차지 않은 단지가 불만이었습니다. 이발사는 자기 집에서 값이 나갈 만한 물건을 모두 내다 팔았습니다. 그 돈을 금으로 바꾸어서 반밖에 차지 않은 단지에다 쏟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반단지는 매양 반단지였습니다. 

이발사는 허리띠를 졸라 매었습니다. 먹을 것을 적게, 그것도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습니다. 쓸 것도 쓰지 않는 구두쇠 중에서도 왕 구두쇠가 되었습니다. 물론 반단지를 마저 채우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반밖에 차지 않은 단지는 매양 그대로였습니다. 이발사는 임금님께 봉급을 올려 주십사 하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봉급이 배로 올랐습니다. 봉급을 몽땅 털어 금을 사서 단지 속에다 넣었습니다. 그러나 반단지는 그대로 반단지일 뿐이었습니다. 이발사는 동냥질까지 나섰습니다. 오직 반단지를 마저 채울 욕심으로 비럭질까지 하였습니다. 이발사의 여위고 궁상맞은 꼴이 임금님의 눈에도 역력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느 날 임금께서 이발사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전에는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흡족해 하더니 요즘은 걸신들린 사람 같구나. 혹시 너 일곱 금 단지를 가진 게 아니냐?”

이발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하였습니다.

“제가 황금 일곱 단지를 가졌다는 걸 누구한테서 들으셨습니까? 폐하!”

임금님은 껄껄 웃으시면 말씀하셨습니다. 

“일찍이 나도 그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 허나 그때 난 그 황금을 내가 써도 좋다거나 아니면 그냥 그대로만 저장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지. 그랬더니 사단은 두말없이 사라져 버리더구나. 너도 지금 당장 가서 그걸 되돌려 주도록 하라. 그러면 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것이니라.”

사람들은 황금으로 가득 찬 여섯 개의 단지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반 밖에 차지 않은 일곱 번째 단지를 불평하며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욕심 많은 사람의 특징은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을 채우려고 애쓰느라고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평화도 없습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감사할 일이 없어서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헤아려 본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사’라는 제목으로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는 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반항을 한다는 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저녁을 먹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건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내야 할 세금이 많다는 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다는 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옷이 몸에 좀 낀다는 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는 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입니다.

고쳐야 할 하수구, 닦아야 할 유리창이 있다는 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는 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는 건 내 차가 있다는 것이고, 지나가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거슬린다는 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는 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이렇게 글을 쓰고 읽고 느낀다는 건 나도 세상을 지탱하는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일궈진 불평과 불만들, 바꾸어 생각해보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평하고, 무엇인가를 소원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역시 감사하여야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런데 얻기 위하여 앞으로 달려가기만 한다면 얻은 것은 언제 누린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앞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복을 헤아리는 것도 역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사람보다 감사하는 사람이 일의 능률도 높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달려가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없는 것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여 마음을 폭탄 맞은 집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그래서 마음을 평화가 다스리게 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지만 가진 것보다는 없는 것을 헤아리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본성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감사함으로 평화를 누리는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16절 말씀입니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오늘 말씀은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III. 말씀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말씀이 그 마음속에 있는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행복해지기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꽃을 삽니다. 꽃을 사는 마음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들어진 꽃을 치우면서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시들지 않는 영원한 말씀의 꽃을 펴야 합니다. 어떤 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날씨가 좋은 날에 석양을 보러 나갑니다. 붉게 물든 노을에 자신도 함께 물들이는 것은 황홀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인생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잠겨 영원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어떤 이는 행복하기위하여 제일 좋아하는 향수를 집안 곳곳에 뿌려두기도 한답니다. 악취가 나는 것보다는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에다가 집안 곳곳에서 말씀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어떤 이는 행복을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적고 하나씩 시도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성경을 읽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이 된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단편적인 처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꾸준히 실천한다면 정말로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좋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이 우리를 감사하게 하는 사람으로, 평화를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7절 말씀입니다.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오늘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다시 한 번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분명한 것은 감사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감사할 것이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마음이 행복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말씀과 감사와 평화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사람은 행복합니다.
  

IV.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책입니다. 성경의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의 사람은 자신이 이 세상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의 사람은 자신이 왕 같은 제사장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의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감사를 해야 합니까? 풍년 주신 것, 장사 잘되는 것, 합격된 것, 취직된 것, 진급된 것, 물론 다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감사할 일도 여러분의 삶에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감사는 세상 사람들도 드릴 줄 아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구원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행복에 대하여 설교하는 사람입니까? 행복에 대하여 연구하는 사람입니까? 마음에 평화가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은혜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다시 기억하십시오. 자신을 찾아와 따스하게 안아주시고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십시오.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예수님을 믿음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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