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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절망중에 핀 희망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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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휴스톤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미국인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셨는데 
흑인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후 어머니에게도 버림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의지할 때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변변한 직장하나 구할 수 없어서 
병원 청소부로 취직을 했습니다. 
인생이 고달프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병원에서 청소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청소를 하니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 중병으로 오랫동안 입원해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청소부 일을 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청년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늘 청년을 지켜 봤습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지만 청년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6개월을 지켜보시다가 청년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청년은 뭐가 그리 행복하냐?” 

청년이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고달픈 일도 많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할머니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소원이 무엇인가?” 

청년의 대답입니다. 
“미국에 유학가서 비록 나를 버렸으나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를 만나고 싶습니다”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자기의 전 재산을 청년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 청년이 그 돈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서 
미국 휴스톤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의지할 것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극단적인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승리한 인생을 살았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영우 박사의 간증입니다. 

강영우 박사는 열네 살에 아버지를 잃고 열다섯 살에 축구를 하다 
축구공에 맞아 두 눈을 잃었습니다. 
장남인 그가 두 눈을 잃자 그의 어머니가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여섯 살 먹은 누나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16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살길이 없어 아홉 살 먹은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가고 
열세 살 먹은 남동생은 학교를 그만두고 철물점에 점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강영우 박사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해쳐나갔습니다. 
그는 주변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었지만 기도하며 인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열심히 살아서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고 
예쁘고 신앙심이 좋은 여대생과 사귀어 결혼했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인디애나 주의 교육국장이 되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또 UN의 세계 장애인협회 부위원장이 되어 봉사를 잘했습니다. 
2000년도에는 미국의 저명인사 사전에, 
2001년도에는 세계 저명인사 사전에 이름이 등재되고 
마침내 백악관의 정책차관보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장애물들을 극복한 것입니다. 
그는 부모를 잃고 시력마저 잃고 홀로 남겨졌지만 하나님을 붙들므로 승리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다고 생각될 때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때가 하나님을 찾을 때이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며 기도에 응답하셔서 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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