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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작은 예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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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섭이라는 판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도 법관’ 
‘법의 속에 성의를 입은 법관’ 
‘절망에 빠진 생명을 어루만지던 사형수의 대부’ 등으로 평가 받는 분입니다. 

그분은 1915년 김제 원평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읽고 감동을 받은 후에, 
고생고생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25살이던 1940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을 무료로 변론하던 김병로 전 대법원장과 함께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해방을 맞음과 함께 그는 서울지방검찰청에 검사로 임명이 되고, 
1948년부터 판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장, 대법원판사, 광주지방법원장 등을 지낸 
그의 이력보다, 
그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든 것은 청렴하고 남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죄수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신앙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특히 사형수 선교에 큰 힘을 쏟았습니다. 
법정에서는 부득이하게 법에 따라 사형 선고를 내리고서, 
며칠 뒤 교도소를 찾아가서 ‘직책상 사형을 선고했지만 심히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부디 영혼을 구원하라’고 권하면서 신앙을 가질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의 사랑과 관심에 많은 사형수들이 감동을 받고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월급의 절반을 사형수들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직에서 물러난 후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1965년 불과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법관으로 일평생 살았지만, 
그의 청렴함 때문에 가족들은 무척이나 힘들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죄수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 때문에 그들을 위한 선교적 삶을 살았습니다. 
특별히 사형수들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가득하여 
작은 예수처럼 산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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