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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쫄리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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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리 신부님 
 
- 정충영 교수(경북대 명예교수) 


아프리카 수단에서 병자들을 고치고 아이들을 가르쳐온 이태석 신부가 지난 1월 14일(2010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과대학을 나와 사제의 길로 들어선 이 신부는 로마 교황청에 유학하다 수단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을 보는 순간 몸에 전기에 감전된 듯’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마을 파견을 자청했습니다. 어린 시절 슈바이처 전기를 읽고서 의사 신부가 되겠다던 꿈을 펼친 것입니다.

그는 남부 수단의 외진 톤즈마을에서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와 싸우며 하루 200~300명의 주민을 진료하고 1700여명의 학생을 가르쳐왔습니다. 톤즈마을 사람들은 20년 넘게 수단 내전에 시달리면서 몸과 영혼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었습니다. 그는 폐허가 된 학교 건물을 다시 쌓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통해 전쟁과 가난으로 상처받은 어린이들을 치유해야 했습니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원주민들은 잘 해야 하루에 수수 죽 한 끼로 끼니를 때우는 수단에서 그는 사제의 역할보다는 의사로서 활동을 더 많이 했습니다. 내전으로 불안한 나날 가운데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날마다 방문하는 100여명의 환자들과 결핵, 나병 등 장기 입원환자를 돌보고,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과 일주일에 한 번씩 여러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를 8년 동안 해 왔습니다.

그가 진료를 나가는 날은 마을의 모든 주민이 모이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신부님이 오시면 ‘쫄리, 쫄리’라고 연호하며 몰려들었습니다. 이 신부가 쏟은 땀은 헛되지 않아 10년도 안 돼 이 절망의 황무지에 희망의 푸른 싹이 돋았습니다. 이 신부가 몸소 벽돌을 나르며 학교와 병원을 지었고 태양열을 전기로 바꿔 위성 TV를 보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곳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 발견한 암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사랑하셔서 ‘고통의 특은(特恩)’을 주시는 것”이라며 “하루 빨리 톤즈마을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기어이 일어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소리 나는 선교보다 소리 없는 봉사에 몸을 바쳤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그의 활동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를 ‘수단에 인술(仁術) 기적을 일으킨 사랑과 희망의 전령사’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원자들이 모여 ‘수단어린이 장학회’를 일으킨 것도 ‘쫄리’ 신부의 교리(敎理)가 아니라 실천 덕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그가 하신 일들을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너무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하신 것은 예수님의 심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쫄리 신부는 이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었다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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