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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방언, 신학계서 공식적으로 다룰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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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방언, 신학계서 공식적으로 다룰 때 됐다
 
-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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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교회에 방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에 대한 활발한 신학적 토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방언에 대해 시급한 교리적 정리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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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방언의 실행이 한국교회 내에 매우 보편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매우 까다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적으로 볼 때 방언에 대한 각 교단의 입장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방언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회가 있었다면 2007년 11월 CBS TV ‘크리스천 Q’ 프로그램에서 ‘방언, 하늘의 언어인가 인간의 언어인가’라는 제목으로 2회에 걸쳐 방언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당시 토론자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시흥성전 담임 김삼환 목사, 전 수원한길교회 담임이자 수원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 대표였던 정병선 목사, 예장 통합 측 칠레 파송 선교사인 홍인식 목사가 출연하였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토론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방언에 대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나름대로 선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토론자들은 최근 한국교회 내에 방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많은 이들이 방언을 사모하는 이유는 ‘방언이라는 신적인 언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기 원하는 열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병선 목사는 ‘방언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은사로서 쉽고 편한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심성에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홍인식 목사도 역시 ‘방언이 누구에게나 쉽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방언의 정의에 대한 부분은 토론자 간에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방언을 ‘사단도 엿들을 수 없는 신비로운 언어’라고 그 가치성을 높였고, 정병선 목사는 방언이 ‘성령의 은사중의 하나로서 가장 중요한 은사는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인식 목사는 ‘방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비밀스런 언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인간과 소통하는 방안의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너무 방언에만 치중하는 이른바 방언주의(方言主義)에 대해서는 모두들 우려감을 표했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지성과 영성을 고르게 아우르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방언도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 것이지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다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정병선 목사는 ‘방언을 하나 못 하나의 차원보다는 방언을 통해 예수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방언으로 만 마디 하는 것보다 깨달은 말로 다섯 마디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홍인식 목사는 ‘신학적 지성으로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면서, ‘방언을 받기 위한 집회는 은사를 대중화, 일반화, 상품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방언의 유익성 여부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말이 달라진다는 것은 삶이 달라지는 것이기에, 방언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다’고 긍정했으며, 

정병선 목사는 ‘방언을 받은 자와 못 받은 자의 신앙의 깊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신앙은 끊임없는 훈련과 자기개발, 자기혁신을 통해 성장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홍인식 목사는 ‘신앙의 깊이를 방언이나 성령의 체험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너무 치중할수록 신앙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 토론은 꽤 뜨거운 논제인 방언에 대해 다각적인 목소리를 담아보려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고 봅니다. 한두 가지 아쉬운 점은 방언 자체가 매우 대중적인 논제인 만큼, 대중들 특히 평신도들의 목소리를 담아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이 논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찬반 양 측 신학자들의 토론을 마련했어도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세 토론자 모두 방언의 실재를 긍정하고 있는 이들인 만큼, 방언 자체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토론자도 함께 참여했으면 좀 더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오랜 동안 ‘방언’이라는 주제는 한국의 교계에서는 뜨거운 감자요 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금기 목록에 들어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30년대의 한국교회가 신비주의를 배격하면서 방언에 대한 거부가 일었던 것과, 1970년대와 80년대의 방언과 관계된 성령론 논쟁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방언에 대한 보편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신학적 비평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방언이라는 논제가 교계와 신학계의 공식 테이블 위에 새롭게 다루어져야만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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