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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평화와 통일의 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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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의 빵을 기대한다    
 
-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지난 8월 27일 개성시내 봉동역 하치장에 우리 5대 종단 9명의 성직자들이 미리 준비한 밀가루 300톤을 하역하여 전해주고 돌아왔다. 

25톤 트럭 13대와 1개의 지게차가 움직이며 9인을 태운 우리 스타렉스 차량이 항상 동행할 수 있었다. 지게차가 한 대만 더 동행할 수 있었더라면 2시간 가량 걸린 하역 작업시간이 단축될 수 있었을 텐데, 지게차는 많으나 일거리가 없어 기사가 쉬고 있다는 말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300톤의 밀가루는 본래 불교 정토회가 법륜 지도법사의 관할 하에 200톤을 모았고, 나머지 100톤은 4대 종단이 나누어 모금하여 담당했고, 그런 뜻을 모아 5개 종단 대표들이 실무자 동행 없이 직접 북쪽에 전달키로 했던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이 일시 중단된 상황에서 5대 종단 종교인들은 528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6월 17일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며’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었다. 그일 이후 두 달 여 만에 정부당국의 승인을 받아 밀가루와 함께 인도적 지원에 나설 수 있었다. 

밀가루 자체 지원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교류의 차원에 속하는 사람의 방문과 만남에 관하여 정부당국과 밀고 당기는 과정이 복잡했었다. 우리 종교인들은 물량만이 아니라 직접 북측을 방문하여 만나 대화하고 싶었고, 현장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막혔던 담을 헐고 인도주의의 물길이 터지기를 기대했고, 그것이 종국에는 남북간의 화해협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불교(법륜스님), 원불교(김대선 교무), 천도교(박남수 선도사), 천주교(김훈일 신부), 기독교(김명혁 목사, 박경조 주교, 이정익 목사, 인명진 목사, 박종화 목사)의 9인이 방문했고, 북측에서는 민화협 이름의 대표자들이 나와 주었다. 

밀가루는 개성시(개풍군 포함), 황해북도 장풍군, 금천군과 황해남도 배천군, 청담군, 연안군 등 6개 지역의 유치원 및 탁아소 어린이와 취약계층에 전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중 한 곳이라도 직접 들러 보겠다고 미리부터 요청하고 교섭했었다. 하지만 방문은 하지 못했다. 북측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주고받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방문지역은 북한 어느 곳을 막론하고 지정된 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점이다.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체면정책의 일환일 것이다. 취약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단지 북쪽에만 있지도 않는데 상대적으로 취약한 측의 심정은 아마 더 자기체면에 신경을 쓰기 마련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지역 방문 건으로 논란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입으로 나온 남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튀어나오기도 했고, 취약계층이라는 용어에 체통을 상했다는 분노도 섞여 나왔다. 항상 그렇지만, 밀가루를 받으면서도 명시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는 받지 못했다. 마음 속으로야 고맙겠지만….

충청도 시골에 살 때 경험이다. 교인 하나가 농사지은 과일과 생선 등을 선물로 가져왔다. 저의 어머니 하시는 말씀은 “얼라, 뭘 이런 것 가져오신다야!”이다. 상대방이 응수한다. “미안혀요. 쬐끔 밖에 안되는데 뭘 그런디야!” 마음만은 달랐겠지만, 독일에서 살 때 배운 토속적 표현도 생각났다. 감사하다는 말 대신 “아이고, 이런 거 안 가져와도 되는데 그랬어요!”라고. 

남북의 불신과 체제대결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분단체제 때문에 그리고 북의 빈곤억압체제 때문에 희생양이 되어 사는 우리 취약계층 동포는 일용할 양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먹고 마시며 숨쉬고 싶어 한다. 밀가루 속에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함께 담아주고 왔다고 믿는다. 먼 훗날 아니 가까운 장래에라도 그 사랑의 밀가루가 반죽이 되어 평화와 통일의 빵을 구워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소망을 확인하며 돌아왔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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