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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교사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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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나 해볼까?

-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요즘 한국에 목사가 더욱 넘쳐 홍수란다. 그도 그럴 것이 각 교단 신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목사들이 일년에 수천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한 집 건너, 한 건물에 서너 개씩 있는 곳도 이제는 놀랄 일이 아닌 평범한 종교풍습이 되어가고 있다.

명심할 것이 있다. 한 나라에 종교가 부흥하고 성직자가 많아지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세계 어느 곳이나 성직자가 많아지면 자연 부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하여 나라는 망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직자가 많아지면 더욱 더 사회가 정화되고 질서와 정의가 회복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불성설(語不成說)인가?

한국에 하도 노는 목사들이 많다 보니, 이제는 부목사들도 큰 교회 교육부 한 파트 맡아서 아르바이트 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는 것도 일주일에 두 번 이면 되고 자기 돈벌이를 찾아서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도 무임목사 천지라고 하는 것은 이제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서울에는 택(taxi) 목회 모임도 있다는 사실을 말했었다.

어느 교단은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정년이 40세에서 45세로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로 인하여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고 염려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요즘 목회자들 사이에 이래 저래 할 일이 없고 교회 부흥도 안되니 “선교사나 해볼까” 하는 농담 비슷하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 놓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선교사가 소명으로 나가던 시대가 이제는 지나가고 있다는 증표일까? 아니면 타락의 한 표상일까? 할 일 없는 백수 목사들이 생계형 밥줄 만들려고 친지나 인맥, 교회 후원을 만들어 선교사로 나가려는 발상인 것이다. 개척하자니 돈이 없고, 설령 개척해도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고, 다른 교회 부목회자로 들어가자니 체면과 나이도 문제이고, 큰 교회는 경쟁이 심하여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이래 저래 세월만 보내다 기발한 생각을 해낸 것이 바로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다.

명분도 있고, 후원도 여기저기 인맥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선교사라는 명분이 매우 중요하다. 대접이나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필자는 “선교사나 해볼까” 이런 생각이나 말을 하는 자들을 향하여 호통을 친다. 선교사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하는 일로 아는가? 그런 자들이 지금까지 선교지에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가? 그래서 돈 되는 선교지, 영어권 선교지, 각광을 받는 선교지, 많은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신분의 혜택을 누리며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선교지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는가? 필자의 교단에서는 한때 어느 지역으로 나가는 선교사를 금지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곳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 말이다.

“선교사나 해볼까?” 이런 정신 빠진 생각을 제발 멈추기 바란다. 혹자는 이러한 필자의 생각에 대하여, 그것도 성령께서 하실 일인데 왜 염려 하느냐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생각이라고 시비를 걸면 필자는 믿음 없는 사람이 되겠지만, 극단적 편협주의 혹은 광신도가 아닌 한에는 아모스의 정신으로 외치는 이러한 교훈과 책망이 필요한 것을 이해할 것이다.

사명이 이제는 직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상은 갈수록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백수들이 나가는 곳이 선교지가 된다면 한국교회는 날개 없는 추락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날은 한없이 슬플 것이다. 사명을 가지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는 수습 선교사들에게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정 할 일이 없고 사명이 없으면 목사직을 속히 반납하여야 한다. 그리고 평신도로 직장을 찾고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신앙인다운 모습이 아닐까? 양심 앞에 정직한 일이 아닐까?

왜, 이렇게 한국교회가 변질되어 가는가? 작금에 이르러 유명 목사의 섹스 스캔들로 세상이 떠들썩하고, 여의도 어느 대형 교회는 교회 재정과 연관된 왕자의 난으로 인하여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 잘 살아보세 외치던 60-70년대의 시대정신에 휘말려 교회가 앞장서서 따라가던 일의 결과가 아닌가? 바르게 살아 보세, 정직함으로 살아 보세가 아니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경제적 성공만을 기도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심어놓았던 결과를 이제야 맛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라도, 각 교단 선교부나 선교단체 훈련의 파송 규칙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이론적인 훈련에서 실제적인 훈련으로 대폭적인 개혁과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본질적인 교육의 목표부터 다시 확인하여야 한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 선교훈련원의 교육이나 훈련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다. 변화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더 많은 서비스와 좋은 시설, 잘 먹이는 것이라고 할까? 하드웨어나 외적인 것은 많은 변화를 이루고, 여러 가지 행사를 보면 아주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데 옆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실제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무엇에 방향을 두고서 교육을 하고 훈련을 하여야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훈련원들이 지금까지 수십 년 훈련원 운영을 해오면서 축적된 노하우를 자랑하고, 거기에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더욱 더 추가하고 보완한다. 그러나 항상 느끼는 것은 프로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로 적격이다.

마지막 10%에 대한 목표나 철학이나 훈련의 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좋다고 하는 프로그램과 훈련과정이 결국에는 지나가는 과정으로 멈추고 말아 현장에 들어오면 이전의 행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인내하면서 과정만 지나려고 애를 쓰며 통과하는 일들이 많다.

훈련원은 한국선교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이다. 이러한 한국선교의 현실과 현장을 인식하고 엎드려 기도하며 울면서 사역자들을 훈련시켜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훈련되고 담금질된 사람들을 통하여, 정직하게 헌신된 비전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할 일 없어 선교사나 해보자는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의 타락한 세속 정신을 가진 자들은 걸림돌만 될 뿐이니…….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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