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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2월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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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편지 

- 김형오 전 국회의장·(신일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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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최근 전국 54개 교도소 및 구치소(교정청 4곳 포함)에 자신의 책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3권씩을 기증하며 본보에 재소자들에게 쓰는 글 ‘12월의 편지’를 보내왔다. 김 전 국회의장이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 기간을 이용해 국토를 순례하며 정리한 이 답사기는 12쇄를 거듭하며 현재까지 2만부 남짓 판매돼 그 수익금이 우리사회 그늘진 곳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쓰여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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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안에 있는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그대 얼굴도, 이름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득 편지와 함께 지난봄에 펴낸 내 책을 그대에게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땅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만난 벅찬 감동과 길 위에서의 사색을 러브레터를 쓰듯이 편지 형식으로 옮긴 책입니다. 내가 이 책을 전국의 교도소에 보내기로 마음먹은 건 지난해 4월 받은 한 통의 편지 때문입니다. 발신인은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인 서른세 살 재소자. 그해 봄에 출간한 내 책(‘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한 권을 보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교도소 담장 밑에서 주워 말렸다는 들꽃 한 잎이 편지지에 붙어 있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면서…. 나는 그 노란 꽃잎이 마치 노란 나비 날개처럼 가슴 뭉클한 사연을 싣고 팔랑팔랑 교도소 담장을 넘어 내게로 날아온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잠시나마 담장 너머로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내 책에 사인을 했습니다.

감옥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집필의 시간을 갖기에는 안성맞춤인 공간입니다. ‘김대중 옥중 서신’(김대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야생초 편지’(황대권) 등이 감옥을 모태로 태어났습니다. 인도 독립운동가 네루의 ‘세계사 편력’,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등도 감옥에서 잉태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감옥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닙니다. 비좁은 방 안이 광대무변한 우주로 탈바꿈합니다. 무의미하고 건조했던 하루하루가 가치 있고 뜻 깊은 시간으로 거듭납니다. 적어도 휴식과 충전의 기회로는 삼을 수 있습니다.

그대도 칠레 광부들 이야기를 알고 있겠지요? 지난 가을 칠레에서 생중계된 한 편의 휴먼 드라마가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감옥보다 더 깊고 어두운 절망 속에서 33인의 광부들이 69일 동안 캐 올린 것은 사랑과 신뢰, 용기와 도전,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었습니다. 까마득한 지하, 캄캄한 갱도 안에 환한 등불을 밝혀 준 것은 다름 아닌 기도와 찬송이었습니다. 살아나온 광부들의 티셔츠에는 CCC(칠레대학생선교회) 로고와 함께 ‘주님, 감사합니다’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도 충분히 그런 기적이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만든 구조용 캡슐 ‘피닉스’를 타고 ‘불사조’가 되어 더욱 강하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교도소 담장 너머 밝은 햇살 아래로 귀환하게 될 그대를 소망하고 응원하며 기도하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용서를 먹고 사는 죄인들입니다. 그대가 어떤 사연으로 거기에 갇혀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 바라건대 이 한 권의 책이 참회와 성찰과 성장의 시간을 살고 있는 그대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다면 더 큰 보람과 기쁨이 없겠습니다.

곧 한 해가 저물고 새 달력이 벽에 걸립니다.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시기를…. 아울러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대를 더욱 그리워하고 안쓰러워할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도 기도와 함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동봉한 책 마지막 장에 실린 이 한 줄의 글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희망은 담을 문으로, 벽을 창으로 만듭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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