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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사는 고통까지 음미(吟味)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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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고통까지 음미(吟味)하는 능력이다 

- 강준민 목사(LA새생명비전교회 담임)
 

감사는 삶을 음미하는 능력이다. 맛을 본다고 맛을 아는 것이 아니다. 맛을 음미할 줄 알 때 진정 맛을 알게 된다. 감사하는 과정이란 맛을 보는 과정과 같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대상을 깊이 생각하고, 감사할 내용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깊이 생각하는 과정이 맛보는 과정이다. 맛을 음미하면서 감격할 때 감동하게 된다. 감동(感動)이란 마음이 동(動)하는 것이다. 마음이 동할 때 마음은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마음이 동하면 감격의 눈물이 나오게 된다. 마음이 동하면 사랑이 솟구치게 된다. 마음이 동하면 사랑을 표현하고 감사를 표현하게 된다. 

감동이 없는 시대에 감동을 맛본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감동하는 것도 실력이다. 왜냐하면 감동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감사다. 감사하게 되면 감사를 받는 사람이 감동하게 된다. 그래서 감사는 좋은 것이다. 감동할 때 차가운 마음은 녹아지고, 돌 같은 마음은 부드러워진다. 

감사는 즐길 줄 아는 능력이다. 즐거워할 줄 아는 능력이다. 한 사람의 성숙은 무엇을 즐거워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했다(시 1:2).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을 즐거워했다. 예수님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셨다(사 11:3).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즐거워하셨다(눅 10:21).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셨다(눅 15:7). 다윗은 하나님을 즐거워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기를 소원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맛본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맛보려면 우리는 시간을 내야 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맛이 있다. 인격의 맛, 지성의 맛, 개성의 맛,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맛이 있다. 그 맛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음식을 음미하듯이, 책을 음미하듯이, 시를 음미하듯이, 음악을 음미하듯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안셀름 그린은 《삶의 기술》이란 책에서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즐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진정한 즐거움을 위해서는 영성 훈련이 필요하다. 무조건 삼키기만 하는 사람은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배를 채우는 것과 음식의 맛을 보면서 즐기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맛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야하고, 성급히 삼키는 것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맛보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 조급함은 즐김의 적이다. 깊은 맛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자신이 맛본 것에 대한 감격을 감사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감사란 우리가 맛본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구체적일수록, 생생할수록, 감사를 받는 대상이 그 맛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삶 전체를 선물로 받아들인다. 삶이란 선물 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간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 간다. 환희와 고통이 함께 간다. 고통의 끝자락에서 경험하는 것이 환희다. 고통이 없다면 환희를 모를 수도 있다. 불안을 경험한 사람만이 평안의 중요성을 안다. 우울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밝음의 축복을 안다. 

나물 가운데 쓴 나물이 있다. 쓴 나물의 쓴맛은 없어서는 안 되는 맛이다. 단맛만 좋은 맛이 아니다. 쓴맛도 좋은 맛이다. 쓴 나물은 오래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단 것은 음미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쓴 것은 오래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난다. 인생의 맛을 아는 사람은 쓴나물과 같은 고통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고통은 쓰다. 그런데 고통의 깊은 맛은 달콤한 쾌락의 맛과는 다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 중에 고통을 노래했다. 고통 속에 담긴 깊은 맛을 노래했다. 그것이 시다. 

시인은 고통을 도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음미하고, 고통을 재료삼아 시를 쓴다. 그래서 시인은 성스럽다. 고통까지도 감사할 줄 아는 영혼은 성숙한 영혼이다. 송명희 시인의 시를 묵상해 보라. 고통까지 음미한 고결한 영혼의 노래가 시 속에 담겨 있다. 이지선 자매의 글을 읽어보라. 고통 중에 맛본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글 속에 담겨 있다. 때로 원치 않는 손님처럼 찾아온 고통을 피하지만 말고 깊은 맛을 음미하도록 하라. 고통까지도 감사하도록 하라. 그때 고통까지도 선물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리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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