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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눈 먼 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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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도시 

-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장편소설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쓴 작품이다.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한 남자가 갑자기 장님이 되는데 그를 치료해주던 안과 의사도, 그를 도와주던 사람도 눈 먼 남자를 쳐다본 순간 모두 장님이 된다. 마침내 이런 장님 현상은 콜레라나 페스트처럼 온 도시를 휩쓸게 되고 끝내 이 장님들은 격리된다.

‘맹목’이란 말이 있다. 마치 눈 먼 장님처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도 장님이 된 자들이 하는 행위를 그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에서처럼 장님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쉽게 장님이 되는 현상이 있다. 주변의 생각에 쉽게 전염되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한번도 표출하지 못하는 장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눈’뿐만 아니라 갑자기 ‘벙어리’가 되는 전염병도 있다. ‘벙어리’를 바라보는 순간 모두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벙어리 도시도 있다.

가끔 중요한 회의에 참가할 때도 있고 회의를 주재할 때도 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입을 꼭 다문 사람이 있다. 자신이 보고 듣고 판단한 내용을 입으로 주장하지 못하는 맹목병과 벙어리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

“말 안 하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이 있다. 중간이 최상의 목표가 아니라면 분명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무분별한 말로 대화를 독점하는 사람도 있다.

책 한 권 읽고 아주 확신에 찬 말을 혼자 떠들어대는 교수도 있고, 회의하는 동안 혼자 떠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끽소리 한번 내지 않고 벙어리병에 걸리는 교수도 있다. 또 이를 바라보는 교수마다 같은 병에 걸리는 예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눈 먼 도시나 벙어리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토론이나 대화가 언제나 가능한 사람들이 모이는 회의나, 쟁점이 되는 사안에 화내지 않고 다양한 견해를 내는 회의는 언제나 결실이 있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서나 일상 대화에서 이루어지는 그 많은 말들 중에는 장님이 쓴 말들이 있다. 이 장님이 쓴 글을 읽어낸 자마다 눈을 감고 같은 내용의 리플을 단다.

눈 먼 도시는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가.

일본의 젊은이 3분의 1이 귀차니즘에 전염되어 있다고 한다. 보는 것도 귀찮고 말하는 것도 귀찮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스트레스 받는 것이 싫어서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들이 모이는 침묵, 맹목 단체도 있다고 한다.

사회적 합의나 단편적 지식이 아닌 종합적 지식의 확대, 다양한 의견, 토론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매우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전에 회의를 마치고 ‘풀’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오전 9시, 교수회의가 있었다.

풀죽은 풀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빳빳했던 유년의 풀빛이 무더기로 스러지는 곳./ 걸으면 허벅지 안쪽이 쓰라렸던/ 무명 속바지의 서걱대던 풀 때가/ 풀 죽어 보드라워진 것/ 아, 참을 수 없다./ 지금쯤 누구의 무릎에서 억센 사상으로 자라나고 있는가.”

눈 먼 회의를 마치고 쓴 시였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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