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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슈퍼맨 닥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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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닥터 리 
 
- 정충영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전미 체조올림픽 국가대표상비군으로 선발되어 훈련 중 부상으로 사지마비 장애자가 된 슈퍼맨 닥터 리(이승복 40; 미국명 로버트 리)는 불굴의 의지로 인간의 한계를 온몸으로 극복하고 존스홉킨스 병원의 수석 전공의가 되었습니다.

8세일 때 약국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이 씨는 고달픈 이민생활을 하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미국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겠다는 일념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체조에 몰두했고 마침내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전미 올림픽 예비 군단 최고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체조팀을 운영하는 각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쇄도했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손만 뻗으면 곧 현실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정상의 문턱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찬란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혼자 마루를 향해 뛰어올랐다가 목을 쭉 늘인 상태에서 턱으로 땅에 박히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 경추 아래로 끊어진 신경들이 다시 붙어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평생 휠체어에 앉아서 손가락마저 움직이기 힘든 사지마비 상태로 험난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것입니다.

그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앞에 놓여진 “다시는 체조를 할 수 없게 됐다”는 현실에서 오는 분노를 그는 재활훈련에 쏟았습니다. 희망이 에너지이듯 그의 분노 또한 에너지였습니다. 물리치료 4개월 만에 그는 의사들도 놀랄 정도로 가능한 근육을 모두 쓰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다시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하기 힘든데 포기하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는 불편한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글씨를 쓰고 휠체어 바퀴를 돌리면서 시련과 전면 전쟁을 벌였습니다.

5개월의 피나는 준비 끝에 그는 뉴욕대학에 입학했고 이어 컬럼비아대학에서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인간한계를 극복한 그에게 더 이상 장애물은 없었습니다. 다트머스대학 의대와 하버드대학 의대에서 인턴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전공의사가 되어 같은 처지에 놓인 재활환자들에게 온몸으로 희망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간 승리 드라마는 <뉴욕 타임스> <볼티모어 선> AP통신 폭스TV 등을 통해 미국 전역에 소개됐고, 감동을 받은 수많은 장애인들은 그에게 '슈퍼맨 닥터 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의 인간승리는 그 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처럼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를 보고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절망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그 절망을 발판으로 새롭게 도전한 것, 그리고 그 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모든 일들이 낙망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새롭게 결심하고 일어서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는 것을 우리는 ‘슈퍼맨 닥터 리’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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