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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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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이철 원장 (연세의료원)
 

요즘 TV나 신문에서는 아름답고 따뜻한 좋은 소식보다 범죄나 사고 등 나쁜 소식이 훨씬 많이 보도되고 있다. 대중에게 평범한 이야기보다 좀 더 자극적이고 놀라운 소식들이 이목을 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보도를 자주 접하면 세상에 대해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게 된다. 어떤 때는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언론에 좀 더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발굴해줄 것을 부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모두 귀하다. 그 중 오늘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해진 잘못이나 오해, 상처를 쉽게 잊지 못한다. 심지어 이런 기억을 평생 되씹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뇌가 스트레스에 대해 반응할 때 최근 기억과 오래전 기억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수십년도 더 된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막상 이를 다시 떠올리는 순간 몸에 생기는 스트레스와 불쾌감은 눈앞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런 과거의 나쁜 기억을 되씹으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자가 발전하여 자신의 정신건강을 스스로 망치고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런 미움과 상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용서’라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용서의 기도가 있다. 성경 속에는 ‘용서하라’는 말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운 사람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 용서한다는 것은 상처받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상처를 받았지만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지닌 채로, 또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지닌 채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용서란 사람들과 어그러진 관계를 우리 손에서 놓아버리고 하나님께로 보내는 것이다. 죄에 대한 복수나 심판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인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 일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를 담아두거나 자신이 어떻게 해보려 한다면 이는 오만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가 아니다. 신앙인은 이런 일도 모두 하나님께 내드려야 한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은 산(酸)과 같아 담고 있는 그릇을 상하게 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그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해를 입는 것이다. “내게 있어 용서란 단순히 그 어떤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용서했다는 그 사실까지도 잊어버리는 것이란다”라고 랜드 벅 목사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다’에서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사람들을 욕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다. 원망하기보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용서의 좋은 방법이 기도이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 사과하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사과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용서할 수 없는 원수도 이웃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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