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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존의 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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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의 허기 

-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 
 

얼마 전 문예지에서 ‘거리의 식사’라는 시를 읽고 오래 그 의미가 지워지지 않았었다. 그 시를 소개해 본다. 

‘하나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우산을 가진 사람도/ 펼 때는 마찬가지/ 굶은 적 없는 사람도 며칠을 굶은 사람도/ 먹는 건 마찬가지…(중략) 하나의 방을 가진 사람도 세 개의 방을 가진 사람도/ 잠들 땐 마찬가지/ 냅킨처럼 놓인 침대 한 장’(이민하의 ‘거리의 식사’ 중 일부). 

비가 오는 거리에 나서면 누구나 젖게 되어 있다. 하나의 우산을 가졌거나, 열개의 우산을 가졌거나 예외 없이 우산을 펴야 하고, 내리는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또 굶은 적 없는 사람도 오래 굶은 사람도 먹는 것은 마찬가지다. 식사가 끝나고 그릇이 비면 조용히 먹는 일도 끝난다. 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거리의 식사’로 표상되는 이 시는 허기의 실존을 말해주고 있다. 우산 한 개를 가진 사람이나 열 개를 가진 사람이나 모두 허기진 사람들이다. 좀 더 비를 완벽하게 막아줄 수 있는 우산에 허기를 느끼고 있다. 허기를 느끼는 것에 대하여는 공감한다. 

배고파본 적 있는 사람이나, 굶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식사가 끝나고, 허기가 채워지면, 잠시나마 같은 포만감에 젖어 조용해진다는 의미가 된다. 

원룸에 사는 사람이나 저택에 사는 사람이나 달랑 냅킨 한 장처럼 작은 공간을 가진 사람이나 모두 잠들 때, 중층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영면할 때는 그 공간이 생과 사의 길에서 어떤 일에도 작용할 수 없다. 이 시가 생사와 연결된다면 보다 심각한 의미를 파생시킬 수 있다. 

인간은 끝없는 목마름에 못견뎌한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때문에 문제와 죄악에 빠지게 된다. 목마름이 불러일으키는 죄, 인간은 여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어떻게 보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실존의 허기에 시달린다고 볼 수 있다. 

끊임없이 현현되는 이러한 허기는 잘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기 때문에 들추어내지 않으면 발견되지 않는다. 

이 시인은 ‘거리의 식사’라는 시를 통해 이 허기를 발견해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좀 더 다른 허기가 있다. 시인처럼 자신의 허기를 끊임없이 발견해내는 일을 우선 해야 됨은 물론이지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샘물을 찾아 떠나야 한다. 조금만 마셔도 허기가 싹 사라지는 영생의 샘물은 크리스천만이 찾아낼 수 있는 귀한 우물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목마름의 한 형태이다. 목마름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물질, 명예, 권세와 재능, 미모…. 모두 다른 모습으로 허기져 있다. 

우물가에 서서 샘물만 바라봐도 목마름이 그치는 그런 우물을 찾아야 한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거기서 우리의 무모한 허기를 그쳐야 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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