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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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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 이철 연세의료원장
 

지난해 말 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에는 청중의 평균 연령이 아주 높은 좀 특별한 세미나가 있었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과 연세대학교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가 주최한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세미나였다. 사회 및 의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 밖에서 죽는 것은 객사라 하였다. 객사를 피하려고 임종 무렵이 되면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그 반대이다. 대부분 병원에서 임종을 맞고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임종의 장소와 죽음의 과정 모두가 달라졌다. 의학의 발전과 발달된 의료장비들은 임종의 과정을 종종 길고 지난(至難)하게 만들고 있다.

‘식물인간’이란 인공호흡기 등의 생명보조장치에 의해서 심장이 뛰고 혈압이 유지되지만 의식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 기간이 지속되면 가족이나 의료진 모두가 지치게 마련이다. 환자의 이런 기약 없는 상태는 가족 간의 관계나 정서적인 면에서, 나아가 경제적인 면에서 부담을 주게 된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어른들이 이런 내용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었다. 

본인에게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대비하자는 ‘사전의료의향서’에 1000명이 넘는 분이 공감하고 동참하였다. 사전의료의향서란 회복될 가능성이 없고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표현이 불가능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생명보조장치의 사용이나 심폐소생술과 같은 연명치료에 대한 자신의 요청사항을 밝히는 내용이 사전의료의향서의 핵심 내용이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일부 선진국에서는 법률로 정하고 있으나 국내에는 아직 관련 법규가 없다.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려는 분들을 보면서 문득 연로한 어머니가 자신을 산에 버리러 업고 가는 자식이 길을 잃을까 봐, 가는 길가의 나뭇가지를 꺾었다던 고려장 설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전의료의향서에 동참하신 분들은 분명히 자신의 고통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자녀와 가족들의 고통까지도 헤아렸을 것이다. 잘산다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뿐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을 잘 갈무리하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잘살 때 비로소 두려움 없이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바울 사도의 유서와도 같은 디모데후서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얼마나 흠모할 만한 인생의 회고인가.

우리가 인생을 마무리하게 될 때 우리 모두가 다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잘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고백처럼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갈 2:20). 나는 기도한다. 내가 이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그래서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읽은 모든 이들이 이 믿음을 소유하고 또 지키며 살기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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